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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2일 (토)

열네 살 소녀의 숨기고 싶은 상처를 치유해 준 한의학

열네 살 소녀의 숨기고 싶은 상처를 치유해 준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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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체험수기 공모전-은상

김태연 님(경기도 고양시)



낯선 곳, 캐나다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남동생과 단둘이 떠났던 유학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던 만큼 사소한 오해가 많이 생겼고, 외로움은 커졌다. 나를 향한 사람들의 눈빛엔 항상 답답함이 묻어있었고 나는 점점 작아져갔다. 의지할 곳이 없어 홀로 모든 것을 끌어 앉았던 시간들이 지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모두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1년이라는 시간동안 훌쩍 커버렸다.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 잠시 멈춰있던 나의 시간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여름방학이 끝난 후,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이미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반 아이들에게 나는 새로운 전학생이었고, 낯선 이방인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상처가 생겨난 것은.



내 머리에 있던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



학교의 규정상 짧은 단발머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는 머리카락을 손질하기 위해 내 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이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내 머리에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이 있다고 했다. 저 밑에서 머리끝까지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옴을 느꼈다.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미용실을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거울로 향했다. 머리카락을 뒤집고 여기저기 살폈다. 왼쪽 귀 윗부분, 검은 머리칼 사이로 텅 빈 두피가 보였다. 내 머리에 구멍이 난 것이었다. 눈물이 찔금났다.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열 네 살의 나는 많이 부끄러웠고, 누군가에게 나의 상처가 드러날까 늘 두려웠다. 그 때부터 머리를 묶을 수도 없었다. 행여나 보일까 불안해 늘 머리카락을 얼굴을 가리도록 풀어헤치고 다녔다. 나는 점점 더 작아져갔다.



사춘기 딸의 위축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치료를 하면 나아지지 않겠냐며 위로하였다. 그리고 나의 손을 붙잡고 동네 한의원으로 향했다. 한의원에서 이걸 치료할 수 있겠냐고 반항심 어린 투정도 부렸다. 친절한 인상의 원장님 앞에 앉아, 나는 처음으로 숨기고 싶은 나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보였다. 머리 위에 자리한 작은 구멍에 간호사 언니들과 한의사 선생님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또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한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원형탈모라고 설명하였다. 한약을 함께 먹으며, 약침과 침을 통해 치료하면 금방 나을 수 있다고 붉어진 얼굴의 나를 위로하였다. 그 날부터 나는 매일 한약을 챙겨먹었고, 학교가 끝나면 한의원으로 향했다.



치료는 조금 아팠다. 나의 구멍 위에 날카로운 침이 꽂혔다. 참을 수 없는 따끔함에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원장님과 간호사 언니들은 아파하는 나를 향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었다. 어느 날은 치료가 무서워서 학교에서 집으로 곧장 달려온 적도 있었다.



치료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얻은 ‘탈모’라는 질환 그 자체였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쓸 나이였기에 친구들에게 나의 병은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학교가 끝난 후 놀러가자는 친구의 말에 갖가지 핑계로 둘러댄 후 병원을 향해야 했고, 혹시라도 친구들의 손이 머리 쪽에 스치기만 해도 괜한 과민반응을 보여야 했다. 나만의 비밀을 안고 있어야 했던 열네 살은 나에게 그리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한의치료 후 하얀 두피 위 새로 난 머리카락 빼꼼



그럼에도 부모님의 응원과 한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한의원에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았다.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 한의사 선생님이 늘 그렇듯 치료를 위해 내 머리를 살펴보다 방긋 웃으며 말했다.

탈모 부위에 조금씩 머리카락이 새로 돋아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직접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정말로 하얀 두피 위에 새로 난 머리카락이 빼꼼 올라와 있었다.



그 날 받은 치료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나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생겼고 안도감을 느꼈다. 한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당분간은 전처럼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전보다 더 열심히 한약을 챙겨 마셨고, 한의원도 빼먹지 않고 가서 치료를 받았다.



숨기고 싶은 상처를 갖게 된 열네 살의 사춘기 이후,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항상 노심초사하며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던 열네 살의 소녀는 무더운 여름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다니는 스물 둘의 여대생이 되었다. 나에게 탈모라는 병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머리숱 때문에, 내 머리를 손질하는 미용사들은 언제나 한숨을 쉰다.



머리카락 속에 커다란 구멍을 숨긴 사춘기 소녀가 한 달 만에 기적처럼 새로 난 머리카락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은 웃음 섞인 추억담이 되었다. 한 달을 조금 넘긴 치료를 받으며 머리 위 구멍은 새로 난 머리카락으로 서서히 채워졌다.



빼꼼 올라왔던 머리카락은 한 학년이 올라갈 때쯤 제법 길어 있었다. 나의 상처가 메워지면서 나도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예민했던 사춘기 소녀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새로운 자신감을 심어준 한의학에게 아직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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