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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4일 (월)

염종원 원장

염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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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活人)의 추억, ‘2013’



현재 한의신문사에서 한의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나의 소소한 이야기’ 수기 공모전에 글을 보내주신 염종원 원장의 기고문으로 꾸며졌음을 알려 드립니다. 본사의 수기 공모전에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당부드립니다. <편집자주>



작년(2013)에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은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있는 전북 정읍의 한 요양병원이었습니다. 학부과정 중에 변변한 봉사활동도 못하고 임상경험이 전무한 채로 0.3*40사이즈 침만 쓰는 340병상 규모의 한 요양병원에 고향인 부산을 떠나 교과서적인 지식들로만 무장된 채 그렇게 첫발을 내딛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의욕이 앞섰던 시절이라 좀 무리수를 둔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양의사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리라는 포부만은 대단했지요. 양방과 한방의 힘겨루기라는 최전선에 투입된 전투병이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1년 먼저 졸업해 요양병원에서 일하던 한의사 친구에게 평소 술자리를 통해서 요양병원의 현실을 익히 들어온 터라 큰 병을 고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근골격계 질환을 포함해 다양한 질환들에 대해 일도쾌차의 로망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터였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칼을 갈고 덤비니 환자분들에게서 괜찮은 반응들이 많이 목격되었습니다.



94세 할머님, “제발 눈물만 안 흐르면 살겠다”



94세 되신 할머님은 눈물이 자꾸 흘러서 제발 눈물만 안 흐르면 살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큰 불편을 호소하셨는데 태충 한 번으로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오게 되었습니다. 눈물은 간 이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기본에 매우 충실한(?) 판단으로 오로지 태충 단혈만을 자입했는데 바로 다음날 회진 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아서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침을 여러 개 놓으면 어느 혈자리에서 주효했는지 판단의 근거가 없어서 일부러 처음부터 단혈내지는 많아야 2,3개 혈을 고집했었던 시기였죠. 할머니 눈물이 그치자 이제는 그동안 흐르던 눈물을 참고 지내야 했던 할머니들이 일제히 “나도 눈물 좀 안 나오게 해줘~~~”하는 바람에 졸지에 눈물 닦아주는 한의사로 여기저기 부름(?)을 받고 침을 놔드렸습니다.



그런데 태충 하나만으로는 모든 환자들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지 않아서 ‘泣’자가 들어간 임읍혈을 같이 배속했고 그러자 십중팔구 흐르는 눈물을 멈춰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요양병원에서 양의사들의 무지막지한 진통제 칵테일에 그동안 간이 많이 손상된 것으로 보고 어르신들의 자침혈중에 태충은 기본으로 들어가게 되었지요. 이후에도 혈변을 보시는 할아버님을 공최 단혈로 해결해드리거나 식체로 괴로워하실 때마다 사관과 공손, 내관 복합처방으로 100% 해결해 드린 일 등 자잘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그러나 어르신들 중에는 침 치료에 굉장한 거부반응을 가지고 계셔서 때로는 적대적이라 할만큼 싸늘한 시선으로 치료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는데 평소에 회진 돌 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셔서 꼭 침을 놔드리고 싶었던 할머님 한 분은 매번 매몰차게 “침 안맞아, 됐어, 가!”하시면서 날카롭게 째려보시곤 했습니다. 두 세번 권해도 물리치셔서 저도 그만 마음을 접고 이후로는 회진 때 그냥 지나치게 되었죠.



“침 안맞아, 됐어, 가!”, 매몰찼던 할머님의 쇼크



시간이 좀 흐르면서 침을 4개 이상 놓지 않고, 그것도 굵은 침으로 좀 아프게 놓다보니 초반의 호기는 어디가고 두어달 지나서는 30명 남짓의 매니아층만을 관리하며 매너리즘으로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 남는 가장 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으니 바로 작년 이맘 때 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7월이었습니다.



날이 더워서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고 진료실에서 컴퓨터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벨 소리가 들려오고 이윽고 뒤따르는 간호사의 다급한 호출에 말로만 듣던 응급상황이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호출은 동료 간호사를 부르는 것이었고 3층에 같이 있던 한의사 진료부장과 저는 안타깝게도 응급상황에서 간호사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주역들이 아니었습니다.

하기야 요양병원 인증받는 기간에도 응급상황에서 양방의사를 대동한 심폐소생술만 준비했지 한의사들은 응급구조의료진으로 인식이 안 돼 있던 터였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당시는 자존심 운운할 때가 아닌지라 서둘러 응급현장에 가야했습니다. 가보니 동료 한의사인 진료부장은 병실문에 걸쳐 서서 바라만 볼 뿐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었고 저는 그를 뒤로한 채 사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실안의 화장실까지 들어갔습니다.



그 때 좌변기에 앉아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의식을 잃은 할머님이 계셨는데 다름 아닌 평소에 침 치료를 매몰차게 거절해온 그 할머님이셨습니다. 얼굴은 이미 잿빛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순간 2007년에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오버랩되면서 급히 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호사에게 사혈기를 가져오라 하고 재빨리 열손가락의 첨단부를 하나씩 사혈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손가락은 검은 피가 철철 흐르고, 어느 손가락에서는 맑은 장액성 삼출물이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다급한 순간이었지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참 사혈시키고 있을 즈음 1층에 있던 주치의 양의사가 오더니 침상으로 옮기자고 했고 저는 아직 충분히 사혈하지 않아 좀 더 있어야 한다고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모든 스텝들이 화장실 문 앞에서 저의 처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사혈을 끝내고 침상으로 이동시키니 의식이 없던 할머니는 제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 고비는 넘어갔구나’하는 안도가 생겼고 좀 편해진 마음으로 우왕좌왕하는 간호사들에게 이제 급한 불은 껐으니 차분히 행동하라고 일렀습니다.



할머니는 의식이 돌아와서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였지만 계속 신음소리를 내며 통증을 호소했고 산소통과 연결된 호흡기를 붙이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닐봉지에 토물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는 기진맥진해져서 인근의 연계의료기관인 정읍아산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할머니를 이송시키고 나서 생각해보니 ‘뇌출혈이 아니라 식궐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응급상황에서 냉철하게 십선혈을 운용해 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는 데- 유치하지만- 어깨가 으쓱거렸습니다. 할머니는 나흘정도 아산병원에 계시다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셨구요.



응급상황이 생기는 환경일수록 한의사의 역할이 더 중요



제가 예상했던 해피엔딩은 할머니께서 그 때 고마웠다는 말씀과 함께 이제 뛰어난 한의학의 치료효과를 봤으니 침을 열심히 맞고 싶다는 장면이었는데...현실은 여전히 회진돌 때면 싸늘한 눈으로 외면하시는 일관된 모습을 보이셨다는~^^.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그동안 한의학에 대한 믿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온 보답은 할머니가 위험한 순간을 잘 넘기는데 보탬이 되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그 때 일을 계기로 요양병원처럼 응급상황이 잘 생기는 환경일수록 한의사의 존재와 역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제 자신이 응급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죠. 요양병원 근무 두 달전에 신결석으로 출산의 고통에 버금간다는 극렬한 통증이 있었는데 태계혈에 자입하자마자 사라지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면 응급의학에서 한의학이 좀 더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하여 양방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될 수 있도록 학부교육 과정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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