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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4일 (월)

“예방접종은 한의사의 전통적인 의료행위”

“예방접종은 한의사의 전통적인 의료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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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지석영 牛痘法 최초 도입

조선시대 한의약으로 ‘예방접종’ 방증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제도의 변혁과 조류의 변화는 진보를 일으켜 역사적 발전을 추동하기도 하지만 인식의 왜곡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의학적 발전과 문명의 진보와 관련해서 ‘예방접종’이라는 단어는 우리들의 삶 속에 개인적 혹은 국가적 차원의 건강담론을 형성하는 키워드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 글은 ‘예방접종’이라는 치료행위가 동·서양의 어떤 한쪽편의 의료의 것인지를 가늠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원과 도입과정을 정리하자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사용된 종두법의 도입과 활용을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牛痘法은 種痘法 가운데 하나이다. 영국의 제너에 의해 개발된 우두법이 도입되기 이전에 동아시아에서는 人痘法이 널리 활용되었다. 人痘法은 16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이후 17세기에 널리 활용되었다. 이 人痘法은 18세기 말에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실시되었다.

인두법은 2가지 방법으로 구별된다.



첫째는 痘衣法으로, 곧 痘疹을 앓았던 아이의 內衣를 아직 痘疹에 걸리지 않은 아이에게 입히어 痘가 나오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鼻苗法인데, 이 法은 또 三種으로 나뉜다. 즉 痘漿을 쓰거나 乾痘痂屑[旱苗]를 鼻中에 불어넣는 것들과 또 하나는 濕痘痂[水苗]를 솜에 싸서 鼻中에 넣어 出痘시키는 것인데, 痘漿은 너무 위험하여 일반적으로 쓰지 않고, 旱苗나 水苗를 상용하였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종두법은 주로 痘痂를 細末하여 물과 함께 丸을 만들어 비강 내에 접종시키는, 즉 종두법 중의 水苗法에 제한되었다. 1800년에 박제가가 경기도 포천에서 향리와 함께 향리의 아들, 관노의 아들, 그리고 박제가의 조카에게 정약용의 종두법 요지에 따라서 인두법을 실시하였다.



이것이 기록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두법 실시이다. 1796년 영국의 의사 제너가 발명한 천연두 예방법인 牛痘法은 발명된 지 10년 후인 1805년에 중국에 전해졌으니,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영국동인도회사의 외과의사 알렉산더 피어손의 『牛痘種法論』을 토마스 스탄톤이 『種痘奇法』이라는 이름으로 한역하여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정다산의 『麻科會通』의 권말에 부기된 「種痘奇法」은 淸 道光 8년(순조 28년, 1828) 戊子 6월에 北京 奎光齋에서 간행된 『新證種痘奇法詳悉』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다산이 우두를 실시했었다는 기록은 이규경의 『五洲衍文長箋散稿』의 「種痘辨證說」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두법의 도입과 활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池錫永(1855〜1935) 先生이다. 牛痘法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池錫永은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이후 한의사로만 활동한 인물이다. 1876년에는 김기수를 따라 일본에 갔던 朴永善으로부터 『種痘龜鑑』을 전수받아서 種痘 硏究에 着手하였다.



1879년 釜山에 가서 濟生醫院에서 두달 동안 種痘法을 實習하였고 오는 길에 처가인 충주 덕산면에서 40여명에게 종두를 시술하였다. 이어 1880년에는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 동경에 가서 牛痘種繼所長인 菊池康庵으로부터 種痘苗의 製造 및 蓄藏法을 습득하여 귀국 후에 전주, 공주 등지에 牛痘局을 設立하여 牛痘法을 교육시켰다.



1885년에는 『牛痘新說』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는 牛痘의 原理, 接種法, 痘苗製造 및 保管法, 種痘器具 등의 내용들이 실려 있다.



1887년에는 개화당의 일원이라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어 전라도 신지도에 유배되었고, 1891년에 풀려나 서울로 돌아와 서울 교동에 牛痘保 堂을 設立하고 많은 小兒들에게 牛痘를 실시하였다.



1899년에는 官立 大韓醫學校의 校長이 되어 西洋醫學을 敎育하였다. 이후 일제가 한국을 점령한 이후로 일체의 공직을 접고 활동하지 않았다.



1914년 醫生規則이 반포되자 醫生으로 登錄하였다. 1915년 全國醫生大會가 열릴 때에는 ‘朝鮮醫學의 由來와 發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고, 이때 조직된 全鮮醫會의 會長으로 추대되었다.



1924년에는 東西醫學硏究會라는 한의사 단체의 회장을 하면서 한의학의 발전에 힘썼다. 만년에는 和平堂大藥房 主 李應善이 세운 朝鮮病院의 원장을 지냈다. 1935年 2月11日 81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인두법과 우두법을 포괄하는 종두법의 도입과 활용의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특정한 치료법이 일부 국한된 특정 의학체계의 전유물이라고 간주하기는, 복잡다단한 역사적 과정이 내재되어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두접종법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구한말 대한제국기에 간행된 ‘제영신편’(1889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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