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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10일 (화)

[시선나누기-10] 날개와 그림자

[시선나누기-10] 날개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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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최근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날개

날개를 꺾은 적 있으신지. 날개를 펼친 적 있으신지. 날아 보았던 적은, 날아가 버린 적은 있으신지. 날개를 더듬어 본 적 있으신지. 날개가……있으신지. 날개를 버린 적이 있으신지.

배우가 앙상한 두 팔을 엇갈려 벗은 제 상반신을 끌어안는다. 끌어안고 손가락을 뻗는다. 1센티만 더 손가락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듯이. 배우의 야윈 어깨 양쪽에서 열 개의 손가락이 버둥거린다. 배우는 다시 오른팔 왼팔을 바꾸어 교차한다. 위로 아래로 견갑을 더듬는다. 더듬어 보려고 한다.

배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의 다급하고 간절한 움직임이 그의 눈썹과, 아마도 감고 있을 두 눈과, 잔뜩 힘주었을 입술과, 찡그렸을 얼굴 주름을 충분히 상상하게 한다.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의 손끝에 더욱 열중한다. 

그는 얼굴을 버리고 우리에게 등과 날갯죽지와 거기 다가가려는 손가락만 보여주기를 택했다. 손가락마다 표정 하나씩. 안간힘이란 게 저럴 것이다. 우리는 왜 닿지 않는 곳, 잡히지 않는 것에 가닿고 싶어 하나? 

그는 안다. 제 등에 날개 뼈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는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날개 뼈를 확인하는 것이 날아 보는 일로 곧장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의 몸짓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는 날지 못한다. 그는 그 사실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몸짓은 안타깝고 순간순간 다급하다. 

안다는 것이 그에게서 평화를 빼앗는다. 안다는 것은 자신을 자각하게 하고 문득 흔들리게 하며 일상의 속도와는 다른 다급한 통증을 선사한다. 통증이 지난 뒤 다른 평화가 마련될 때까지 그는 안간힘을 다해 저를 더듬는다. 저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과, 있다 사라진 것과, 다시 생겨나는 욕망 같은 것과, 욕망이 뿌리내린 현실을 몽땅 더듬는다. 몸에는 그것들이 다 들어있다.

 

문저온2.jpg

사진 유진규 제공.

 

◇그림자

배우가 서 있다. 객석을 등지고 양팔을 벌렸다. 캄캄한 무대에 배우의 발꿈치 뒤쪽 조명이 배우를 비추어 올린다. 양팔을 펼친 거대한 그림자가 벽면에 생겨난다. 천장까지 닿은 그림자에는 뒷모습도 없다. 표정도 물론 없다. 그림자는 다만 있다. 배우가 고개를 들고 말한다. 

“나는 날았다.” 

배우가 양팔을 들어 올린다. 

“나는 날았던 적이 있다.” 

거대한 그림자는 정말 날고 있는 것 같다.

그림자의 오른팔이 툭 꺾인다. 아아, 날개가 꺾였다. 팔꿈치 아래가 수직으로 늘어진다. 힘없이 흔들리는 것도 같다. 

“나는 날아가 버렸다.”

그림자의 왼쪽 팔이 툭 꺾인다. 

“나는 날개를 버렸다.” 

반 남은 날개가 마저 툭 툭 떨어진다. 이제 그림자에는 날개가 없다. 날개라고 부를 만한 팔이 없다. 그림자는 그저 수직의 어떤 물건처럼 서 있다.

날아가 버린 적 있으신지. 날아가 버렸다는 말에는 어떤 의지와, 의지를 넘어선 다른 힘까지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사태의 벌어짐. 벌어진 사태를 껴안음. 그리고 그 벌어짐과 껴안음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검은 그림자는 벽면에 우뚝하고, 배우보다 서너 배는 커다랗고, 흑백의 뚜렷한 대조로 눈을 사로잡다가, 공중에서 (실은 벽면에서) 거대하게 툭 툭 꺾이면서 예상치 못한 상실감을 훅 안긴다. 

‘날개를 버렸다’고 나는 썼다. 날갯죽지라는 어떤 흔적과, 그 아래 묻혀 있을 것도 같은 접힌 날개와, 날아 보았던 기억과, 날아가 버렸던 기억과, 이제는 착지해 있는 종이비행기에 대해 썼다. 썼는데, 배우는 몸을 꺾고 그림자를 꺾어 나에게 다시 날개를 보여준다. 

시공에 날개가 돋고, 사라진다. 가슴이 먹먹하다.


◇날개

날개에 곡을 붙인 가수가 있다. 그는 ‘견갑’이라는 글 몇 줄에 밑줄을 그었다고 했다. 그중에는 ‘손가락 한 마디가 모자라 닿을 수 없는 곳’과 ‘단도를 꽂는다면 거기’라는 구절도 포함되어 있다. 그 구절에는 단조의 선율이 붙었는데, 곡조와 리듬과 단어의 반복이 글과 노래의 다른 맛을 확연히 느끼게 한다. 

견갑이라는 곳도 견갑 사이 정중앙도 손닿기 어려운 곳이라서 ‘단도를 꽂는다면 거기’, ‘태엽을 박아 넣는다면 거기’라고 썼다. 참 무서운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구절에 밑줄을 그은 가수는 그 무지막지함을 애절한 선율을 입혀 새롭게 살려놓았다. 다시 장조로 바뀌는 노래는 ‘나는 날았던 적이 있었지’를 쾌활하게 반복한다. 

글은 읽는 사람에게서 다시 태어나고, 노래는 부르는 사람에게서 새로 태어난다. 날개에 선율이 실린다.  

 

배우가 객석을 향해 돌아선다. 양 날개를 펼쳐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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