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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02일 (목)

인류세의 한의학 <14>

인류세의 한의학 <14>

생명의 관계 Ι

김태호01.jpg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핵심적이다. 이것은 생명을 가진 인간에 대한 질문이면서, 또한 살아있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 답을 찾는 여정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DNA 이중나선구조가 발견된 1950년대 이후, 염기 코드화된 생명이 인류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그에 관한 비근한 예다.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이해도,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렸다. 그것은 자연과 세계라는 거처에 생명들을 어디에, 어떻게 위치시키는가의 문제와 연결되어있다. 그 위치성에 따라 생명의 이해도, 생명들이 이루는 자연과 세계도 달라진다.


생명은 무엇인가

 

생명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생명 이해에서 각 존재들이 생명(生命)을 가진 정도는 다르다. 인간이 온전한 생명이라면 비인간들은 덜 온전한 생명들이다. 인간의 온전한 생명을 중심에 두고 덜 온전한 생명을, 혹은 하찮은 생명을 줄 세우곤 한다. 다양한 동식물에 ‘생명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생명의 지위는 다르다. 한 달 만에 도살되는 치킨용 닭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찮은 생명”에 관해 논의할 부분이 적지 않다. 누가 생명의 가치를 측정하는가? 먹을 수 있는 치킨용 닭은 쓸모없는 파리보다 더 가치 있는 생명인가? 우리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인간의 관점과 필요에 의해, 또한 이득에 의해, 생명의 경중을 따지는 경향에 익숙하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자연의 생명들을 방사형으로 배열하는 “생명의 위치도”를 당연시한다. 이것은 중심의 인간 생명으로부터의 거리를 통해 비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생명 줄 세우기는 기후위기에 크게 기여했다. 환경오염으로 다양한 생명이 멸종위기에 처해도 그 생명이 방사형의 중심부에 멀리 위치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검은 하천과, 스모그의 하늘, 플라스틱의 바다도 별문제로 보지 않았다. 하나의 종(種)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식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50년간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동물이 562종이라고 한다. 이들 멸종되었거나, 멸종선고를 받기 직전의 종들의 생명은 어느 정도의 생명을 가진 생명들인가?

 

김태우.jpg


생명에 대한 이해

 

생명에 대한 이해는 생명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인간 아닌 생명들에 대한 이해는 인간과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인간과 치킨용 닭의 관계는 인간의 닭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 인간만 생명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도 각각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 산행에서 마주친 노루가 달아나는 것은 노루의 사람에 대한 이해에 바탕한다. 곰을 마주쳤다면 곰의 행동은 다를 수 있다. 곰의 사람에 대한 이해는 노루의 그것과, 또한 사람의 이해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이해가 상대 몸 크기에 따른 단순 이해에 달려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이 자체에 대해서도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지만), 인간이 자신들의 필요와 이득의 잣대로 비인간의 생명을 줄 세우는 것의 단순함과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인간 자신의 이해에만 익숙하지만 생명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이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들의 이해는 변화한다. 최근 동물권의 대두는 덜 온전한 생명이 항상 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 아닌 생명도 온전한 생명으로 위치지워지고 있는 최근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비인간의 생명들도 재고되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대두되면서, 인간의 동물 생명에 대한 이해도 변화하면서, 또한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변화한다.  

기후위기는 생명들의 위기다. 살아있기 때문에[生],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에[命] “생명(生命)”인데, 존재들이 살아있음을 멈출 수 있는 시대가 기후위기 시대이다. 생명들에 대한 이해가 변화한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에 두고 방사형으로 펼쳐진 생명의 위치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다. 중심을 탈각하고, 흐트러진 중심의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그 그림에서 새로운 생명들의 관계가 드러날 수 있다.

 

생명의 이해는 하나가 아니다

 

생명의 이해는 하나가 아닌 복수다. 각 생명의 다른 생명들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지역과 문화에서 생명에 대한 이해들도 존재해 왔다. 동아시아의 생명 이해는 그 중 하나다. 동아시아의 생명 이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한의학과 같은 의학에서다. 직접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동아시아의 생명 이해는 의미 있는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동아시아의 이해는 차이나는 이해 방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생명 이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별체를 생명으로 보려는 생각의 습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또한 동아시아의 생명은 몸 안에만 있지 않고 몸 밖에서도 존재한다. 

 

번역어 “자연(nature)”에 대한 (<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8> “자연(自然)과 자연(nature)” 참조) 동아시아적 표현으로 가장 가까운 것은 천지(天地)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자연(nature)과 같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동아시아의 이해에서 인간과 천지는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이 천지에 포함된다. 그리고 천지 안에서 인간이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천지도 생명의 일부다. 천(天)과 지(地)의 만남으로 만물이 태어나고 자란다. 천과 지 사이의 다양한 변화가 기후다. 이 기후의 변화를(여기서 “기후의 변화”는 이상 기후를 말할 때의 “기후변화”와 다르다) 말하는 대표적 이름이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사시(四時)다. 하늘과 땅 혹은 태양과 지구 사이의 만남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생명을 생명이게 한다. 볕이 쬐고, 습기가 상승하고, 구름이 만들어지고, 습기가 빠진 건조한 땅을 다시 비가 적시고, 겨울 내내 움추렸던 생명들이 봄볕에 피어나고, 생명의 기운을 마음껏 펼치는 여름이 저물면, 다시 가을이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저장했던 기운이 겨울이 지나면 다시 피어나는... 이 생명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생장수장의 기후다. 

 

생명에 대한 이해가 동아시아 사유의 전부다. 이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지도 생명이고 천지에 꽉 찬 것이 생명이니 생명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양(陽)이나 음(陰), 건(乾)이니 곤(坤)이 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생명은 개미, 쑥, 지렁이, 말미잘, 국화, 거북이, 인간과 같은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는 생물체와는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의 생명은, 생명의 가능성,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기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들은 모두 관계로 연결된다. 사시와 생명들의 관계가 다시 큰 그림에서의 생명을 이룬다. 그 그림 속의 생명들의 관계가 세계를 이루고 우주를 이룬다.

 

 

기후위기가 오고 생명들이 위태롭다. 생장수장 사시의 순조로운 흐름이 끊어지려고 하니, 사시 속에 사는 생명들도 절멸의 위협을 받고 있다. 지금 이집트에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UN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 정식 명칭은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회의(COP27)”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회의 의제들은 사시를 사시답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사시 속의 생명의 관계들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다(다음 연재글 “생명의 관계II”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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