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6.9℃
  • 맑음21.8℃
  • 맑음철원22.1℃
  • 맑음동두천23.1℃
  • 맑음파주19.1℃
  • 맑음대관령15.4℃
  • 맑음춘천22.5℃
  • 맑음백령도16.1℃
  • 맑음북강릉18.9℃
  • 맑음강릉23.0℃
  • 맑음동해17.3℃
  • 맑음서울23.1℃
  • 맑음인천21.5℃
  • 맑음원주22.3℃
  • 맑음울릉도15.1℃
  • 맑음수원19.3℃
  • 맑음영월20.3℃
  • 맑음충주20.0℃
  • 맑음서산18.4℃
  • 맑음울진15.8℃
  • 맑음청주23.9℃
  • 맑음대전23.5℃
  • 맑음추풍령18.2℃
  • 맑음안동21.3℃
  • 맑음상주20.9℃
  • 맑음포항18.2℃
  • 맑음군산17.7℃
  • 맑음대구22.4℃
  • 맑음전주21.2℃
  • 맑음울산17.6℃
  • 맑음창원16.7℃
  • 맑음광주21.8℃
  • 맑음부산18.2℃
  • 맑음통영17.3℃
  • 맑음목포17.9℃
  • 맑음여수18.3℃
  • 맑음흑산도15.8℃
  • 맑음완도16.2℃
  • 맑음고창18.1℃
  • 맑음순천15.2℃
  • 맑음홍성(예)20.6℃
  • 맑음22.2℃
  • 맑음제주19.3℃
  • 맑음고산18.6℃
  • 맑음성산17.1℃
  • 맑음서귀포18.8℃
  • 맑음진주16.0℃
  • 맑음강화20.6℃
  • 맑음양평24.5℃
  • 맑음이천23.9℃
  • 맑음인제19.3℃
  • 맑음홍천21.7℃
  • 맑음태백16.9℃
  • 맑음정선군18.6℃
  • 맑음제천18.1℃
  • 맑음보은19.5℃
  • 맑음천안20.9℃
  • 맑음보령17.3℃
  • 맑음부여20.5℃
  • 맑음금산22.6℃
  • 맑음21.3℃
  • 맑음부안18.2℃
  • 맑음임실19.9℃
  • 맑음정읍19.3℃
  • 맑음남원20.1℃
  • 맑음장수18.0℃
  • 맑음고창군17.7℃
  • 맑음영광군17.7℃
  • 맑음김해시18.7℃
  • 맑음순창군20.9℃
  • 맑음북창원18.3℃
  • 맑음양산시17.4℃
  • 맑음보성군17.2℃
  • 맑음강진군18.2℃
  • 맑음장흥17.4℃
  • 맑음해남17.2℃
  • 맑음고흥15.2℃
  • 맑음의령군17.8℃
  • 맑음함양군17.2℃
  • 맑음광양시19.0℃
  • 맑음진도군15.9℃
  • 맑음봉화15.8℃
  • 맑음영주18.4℃
  • 맑음문경18.2℃
  • 맑음청송군16.5℃
  • 맑음영덕14.4℃
  • 맑음의성18.0℃
  • 맑음구미21.2℃
  • 맑음영천18.8℃
  • 맑음경주시17.6℃
  • 맑음거창17.9℃
  • 맑음합천21.6℃
  • 맑음밀양20.2℃
  • 맑음산청19.1℃
  • 맑음거제15.9℃
  • 맑음남해18.0℃
  • 맑음17.8℃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15일 (금)

침금동인으로 복원한 내의원 표준경혈2

침금동인으로 복원한 내의원 표준경혈2

18세기 조선의 침구 경혈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에서 일본으로, 동인으로 고증 가능한 근세(近世) 침구의학의 전래

박영환 시중한의원장(서울시 종로구)


의서와 경혈도는 그림과 글자를 그대로 베껴서 옮기면 되기 때문에 필사를 하거나 목판으로 인쇄하는 방법을 통해 의학지식이 없어도 얼마든지 출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인은 복제 할 수 있는 원형이 있어야 만들 수 있으며 경혈을 완전히 숙지한 전문가들의 감수를 거쳐야 정확하게 제작이 가능하다. 따라서 동인은 당시 그 나라의 침구의학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WHO/WPRO 표준경혈위치>나 ‘한국 표준 침구동인’의 경혈과 골도법을 <동의보감 침구편>이나 침금동인과 서로 비교해보면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WHO/WPRO 표준경혈위치>는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전해오던 침구의학의 명맥을 이어받았다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침구의학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침구동인 2회차.jpg
<1은 침금동인, 2~4는 일본의 동인(일본에서는 동인형銅人形이라고 한다). 침금동인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5와 6은 중국에서 제작한 동인으로 조선, 일본의 동인과 형태가 다르다. 크기가 각각 다른 동인들을 같은 크기로 축소하여 서로 비교하였다>

 

과거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에서 수많은 의서를 약탈해 갔다. 1607년 이후 조선에서 통신사를 파견할 때에는 내의원의 양의(良醫)와 의원(醫員)도 동행하였는데 이들을 통해 침구의서가 전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 학계에서는 다케다 쇼케이(竹田昌慶)가 1378년 명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것이 일본 최초의 동인이며 기슈번(紀州藩)의 번의(藩醫) 이와타 치유키(岩田道雪)가 이를 참조하여 1600년 간분동인(寛文銅人)을 제작하였다고 하여 일본의 동인이 조선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명나라에서 직접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일본의 동인들에서는 중국 동인들의 고유한 특징을 찾을 수 없고 경혈의 위치도 중국의 동인과는 다르므로 일본이 중국에서 동인을 전래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현재 남아있는 일본의 동인들은 대부분 침금동인의 고유한 특징(머리를 크게 만들고, 쇄골과 늑골과 척추돌기를 강조하고, 팔다리의 근육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배를 볼록하게 하고, 손바닥을 앞으로 하고, 무릎을 약간 구부린 자세)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조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한다.

 

일본에서 해부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해체신서(解体新書)>가 보급된 1774년 무렵인데, 서양해부학은 일본의 경혈도와 동인형의 제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일본에는 현재와 같이 서양인의 모습에 경혈을 표시한 경혈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혈도들은 당시 서양의학과 결합한 신문물이라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한국과 중국에 빠르게 보급되어 기존의 경혈도들을 점점 사라지게 하였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식 경혈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