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개항 이전에도 서양의학을 접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李瀷, 丁若鏞, 朴趾源, 李圭景, 崔漢綺 같은 인물들이 그들이다.
李瀷(1681~1763)은 ‘星湖僿說’에서 “西國醫”라는 제목 아래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의학의 생리학설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인용하였다. 또한 “本草”라는 題下에서는 서양의사 아담 샬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丁若鏞(1762~1836)은 ‘醫零’과 ‘麻科會通’에서 서양의학의 입장에서 한의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는 ‘醫零’의 “近視論”에서 陰氣, 陽氣의 盛衰에 따라 近視와 遠視를 나누는 기존의 학설들을 서양의학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있다. 朴趾源(1737~1805)은 ‘熱河日記’ “金蓼小抄”에서 荷蘭陀小兒方과 西洋收露方 등 서양 처방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李圭景(1788~?)은 자신의 저술인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人體內外總象辨證說”이라는 조문에서 서양의학의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崔漢綺(1803~1879)는 조선말에 서양의학의 입장에서 한의학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 한의학자이다. 그는 서양의 曆算과 氣學을 크게 중요시하여 서양의 과학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그의 서양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은 여러 가지 서적에 배어 있다.
서양과학적 학문방법에 대해 ‘推測錄’, ‘神氣通’ 등에서 여러 가지 논지로 설명하였고, ‘星氣運化’에서는 영국의 천문학자 허셸의 저술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地球典要’에서는 세계각국의 지리, 역사, 학문 등을 상세히 소개하여 쇄국적인 정책을 고집한 당시의 풍조에 경종을 울렸다.
이러한 그의 서양학문에 대한 이해는 의학에까지 이어져 서양의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의 저술 ‘身機踐驗’은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인체를 설명한 것이다. 영국의 선교의사인 홉슨의 의서를 편저하여 만든 이 서적에서, 그는 서양의학이 동양의학에 비해서 해부학이 크게 앞서 있고 병리학도 뛰어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문집인 ‘明南樓文集’ 1000권에는 서양의학관련 서적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문집에 포함되어 있는 서양의학서적들 가운데 특히 영국의사 홉슨의 의서 5종(‘全體新論’, ‘西醫略論’, ‘內科新論’, ‘婦 新說’, ‘博物新編’)은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것이었다. 그의 저술 ‘身機踐驗’은 홉슨의 5종 의서를 참고로 자신의 한의학비판 이론을 전개한 서적이다.
당시 중국의 의학계는 서양의학의 도입으로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어떤 형태로 절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인 中西醫匯通論爭이 한창이었으며 그는 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책은 그러한 영향 속에서 저술되었다. 최한기는 당시 중국 의학계에서 진행되던 동서양의학의 논쟁과정을 관찰하고 아울러 중국 의학계에 소개된 서양의학에 관한 서적을 연구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神氣, 稟氣形質, 運化 등 이론을 운용하여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최한기는 서양의학에 대한 단순한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근거로 동서의학을 절충을 시도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