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신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장)
1980년 제정된 ‘인민보건법’서 고려의학 유용성 인정
고려의학은 처음에는 서양의학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동의학’(東醫學)이라 부르다가 1993년부터 기존의 동의사는 ‘고려의사’로, 동의요법은 ‘고려치료법’으로, 동약은 ‘고려약’으로, 동의병원은 ‘고려병원’으로, 대학의 동의학부는 ‘고려의학부’로, 동의과는 ‘고려치료과’로 개칭했다.
최근 북한 보건행정조직 개편
보건행정조직은 내각내에 보건성이 있고 각 도 및 직할시, 시 및 도에 보건국 및 보건처와 군에는 보건부가 있다. 북측은 최근 보건부를 보건성으로 개칭하고 ‘처’ 중심의 행정체계를 ‘국’ 중심으로 바꾸었다. 고려의학 행정체계는 귀순의사인 김만철씨의 증언을 정리한 김종렬씨(북한의 전통한의학, 의협신보 1989.3.27)가 처음 언급하기를 동의학 총국(도약초 관리국), 동의학 지도실(시·군·리 인민병원 동의과), 동의학 아카데미(도 동의병원)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후에 다른 귀순의사의 증언이나 자료를 종합하여 보면 보건성 내에 고려의학을 담당하는 행정조직은 고려의학 지도국과 고려약 생산관리국이 있고 치료예방국도 관련되어 있다.
고려의학지도국은 고려의학 종합병원과 도(시)고려병원을 관리하고 고려약 생산관리국에는 약초농장과 약초수집을 관리하며 치료예방국에서 도(시)·군(구역)·리(동) 인민병원의 고려치료과와 진료소를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보건행정조직에서는 도(직할시)의 경우 노동·교육 보건담당부 위원장 산하에 13개국 중 보건국이 소속되어 있다. 고려치료과는 보건국 내에 있는 의료담당책임지도원이, 고려약은 약무담당책임지도원이 담당하고 있다. 시(군)에서는 보건과장 산하에 의료지도원과 약무지도원이 있어 고려의학에 관한 행정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북측에서는 고려의학을 장려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을 법에 명시했다. 현재 1980년에 제정되고 2001년 2월1일로 수정보충된 ‘인민보건법’ 제16조에서 ‘국가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치료방법인 고려치료방법을 발전시키며 고려의료망을 늘리고 의료기관들에서 현대의학적 진단에 기초한 고려치료방법을 널리 받아들이도록 한다’고 되어 있으며, 제30조에서도 ‘보건기관과 의학과학연구기관은 동의학을 과학화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강화하여 고려의학과 민간요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제37조에서도 ‘중앙보건지도기관과 해당기관, 기업소, 단체는 고려약 생산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고려약 생산을 늘려야 한다. 해당기관, 기업소, 단체는 약초자원을 보호 증식하며 그 재배와 채취를 계획적으로 하여야 한다. 약초를 다른 나라에 내가려 할 경우에는 중앙고려약생산지도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조문들은 고려의학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국가제도적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공급해야 하며 진단은 현대의학, 치료는 고려의학이라는 진료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고려의학의 현대화와 고려약의 원활한 공급을 강조하고 있다.
북측은 1998년 1월 ‘인민보건법’을 보완하기 위하여 ‘의료법’을 제정하였는데 2000년 8월10일에 수정 보충된 법률 제7조에서도 ‘고려의학을 적극 받아들이는 것은 의료사업을 높은 단계에 올려 세우기 위한 중용방도이다.
국가는 고려의학과 신의학을 옳게 배합하여 발전시키고 치료사업에 고려치료방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하도록 한다’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제31조에서는 ‘해당 의료기관은 고려약료법, 침료법, 뜸료법, 부항료법 같은 고려의학적 방법과 약수, 온천, 감탕 같은 자연인자를 환자치료에 널리 받아들여야 한다’며 다양한 고려의학적 치료방법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북측은 1950년대부터 김일성 교시를 통하여 고려의학의 발전을 역설하였다. 1954년 6월4일 ‘인민보건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라는 내각결정 제76호를 통해 동의사에 대한 자격시험을 실시했다. 1956년 4월에는 내각명령 제37호인 ‘동의학을 발전시켜 동의치료를 개선·강화할데 대하여’를 채택하였는데 이때부터 과학원 의학연구소에 동방의학 연구실을 개설하고 중요 치료예방기관 내에 동의치료과를 개설하는 등 고려의학이 국가 보건사업의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1968년 김일성은 ‘동의학을 과학화할 데 대하여 간단히 말하려 합니다’라고 하여 고려의학의 과학화를 강조하였으며, 1978년 ‘처방을 정확히 하려면 신의학과 동의학을 배합해야 합니다’라고 고려의학과 서양의학의 적절한 배합을 강조했다. 1979년 2월27일 보건부문 책임일꾼협의회에서 ‘동의학을 발전시킬 데 대하여’ 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고려의학 발전, 법에 의해 명시
김정일도 1971년 당중앙위원회와 전국보건일꾼대회에서 ‘동의치료방법을 널리 받아들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였고, 1980년 전국동의부문일꾼회의에서 ‘동의학을 발전시킬 데 대하여’에서 제시된 과업을 총화하기도 했다.
로동신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올해에 동의학을 적극 발전시킬 데 대한 당의 방침을 높이 받들고 병원들에서는 물론 온 나라가 떨쳐나서 동의학을 높은 단계에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물질기술적 토대를 더욱 튼튼히 다짐으로서 동의학과 신의학의 배합이 원만하게 실현되어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적극 이바지하였다’라고 하는 등 끊임없이 고려의학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인 1997~1999년까지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에 실린 고려의학 관련 내용은 18.4%, 고려의학과 양의학의 결합에 대한 것은 10.1%로 분석되었다.
북측이 고려의학의 발전을 강조하게 원인은 또한 ‘주체의학’에서 찾을 수 있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며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보건사업도 마땅히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을 위하여 복무할 것을 요구하는 주체사상을 구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건문제를 외국의 힘이 아닌 북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해결해야 하며 이는 국민의 체질적 특성에 맞는 주체적인 민속의학과 고려의학을 육성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체적 이념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낸 것이 고려의학과 서양의학을 결합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고양하는 길로 보았다. 또 다른 이유는 서양의학보다 고려의학의 치료방침이 사회주의 의료의 특징인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더욱 확실하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주체의학은 ‘북한의 사상적 독자성과 통합성을 의학영역에서 적용하여 기존의 고려의학의 전통을 강조하고 거기에 신의학적 지식과 개념을 수용하여 새롭게 통합된 북한적 의학사상과 체계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북측이 고려의학을 지원하고 육성한 것은 단순히 경제적 상황이 나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의약품을 조달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주체의학이라는 정치 사상적 목적에서 출발하여 인민의 질병을 관리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