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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3일 (토)

동의보감의 완전한 국역을 기대하며(下)

동의보감의 완전한 국역을 기대하며(下)

허준학회명예회장 한 대 희







중국이 문화유산으로 지정·요청하고 남는 한국 몫의 한의학 관계 문화유산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자.

東醫寶鑑, 鄕藥集成方, 醫方類聚, 濟衆新編, 百濟新集方, 新羅法師方, 鄕藥古方, 醫門寶鑑, 東醫壽世保元, 方藥合編 등과 四象醫學, 鍼灸의 기원과 石 (석폄) 그리고 그 東邦 傳來說, 산삼과 심마니 그리고 한국인삼, 단군과 쑥·마늘 이야기, 경동한약시장과 조선 효종 이후의 왕조실록에서 흔히 보이고 있는 지역경제를 들먹인 대구약령시의 약전골목 등. 이렇게 제시하다 보면 우리 한의학계에서 시야가 넓은 것 같기도 하지만 협소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닐지?



여기에서 중국의 문물이 일방적으로 우리한테 전달로 그친 것이 아니라, 유사이래로 사람과 문물이 오고 가기를 수천년에 걸쳐 이루어졌기에 우리 것과 중국 것과의 한계가 복잡·미묘해 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다행스럽게도 우리들에게는 한 가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문은 있다. 유럽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유형 유산 분야와는 달리, 무형문화유산 분야야 말로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분야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임돈희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2001년에 종묘제례악을, 2003년에 판소리에서, 올 2006년에는 강릉 단오제까지, 한국 전통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세 번이나 연속하여 등재되는 쾌거를 이룩하는데 임 교수는 한국문화에 있어서 숨은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우리 한의학계에 임 교수의 활약상황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은 한의학이 세계무대에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문화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임 교수는 지난 1999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선정 국제심사위원단이 처음 구성됐을 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우리 문화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데 있어 각국의 경쟁이 점차로 더욱 치열해지기 시작하는 속에서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다. 국제사회의 ‘기준’에 맞추는 문제도 그가 나서서 하나하나 풀어갔다.



2006년에는 64개국이 등재신청을 한다고 북적거리는 상황 속에서도 중국은 단오절이 자기네 민속과 같다고 딴죽을 걸 때 임 교수는 외국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러면 세계의 모든 기독교 축제는 이스라엘과 함께 등재해야 하느냐?”면서 완전히 다른 예술로,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은 바로 우리들이 중국의 중의학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 한의학이 앞으로 현실적이면서 필연적으로 앞으로 닥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 앞으로 문화전쟁이 시작될 것인데 전쟁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둘러 싼 싸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여러 번 곱씹어 봐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임 교수는 지난 두 번의 심사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이번에는 비공식적‘홍보’의 역할을 맡아 우리 문화유산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데 큰 몫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한편 허준 선생이 임진왜란 직후에 동의보감을 어렵게 완성하였으나, 왜란 때의 피해가 워낙 커서 난후 오랫동안 혼란이 지속되고 물자의 결핍으로 세태가 안정되지 못하였다.



이같이 어려운 재정 아래서도 광해군의 독특한 경제정책은 동의보감의 인쇄에 힘을 보탰다. 일본인들에게 전란 중에 금속활자를 빼앗기고, 흩어진 옛 활자를 주워 모으고 부족한 것은 당시 훈련도감에서 자급자족의 방안으로 병사들이 목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팔아 자체적으로 경비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을해년에 글자를 만든 경험이 없는 병사들이 나무활자를 새겨 찍어낸 것이기(乙亥字體) 때문에 글자 모양이 바르지 않고 인쇄도 정교하지 못하여 東醫寶鑑 初刊本은 조잡하게 찍어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들은 앞으로 7년 후인 오는 2013년을 맞게 된다면, 1613년은 의미가 있었으니, 허준 선생이 1596년(선조 29) 5월11일 선조로부터 양예수 등과 같이 의서 찬집 명령을 받았고, 1610년(광해 2) 8월6일, 드디어 갖은 악전고투 끝에 동의보감을 편집 완료하여 완성하였다. 1613년(광해 5) 11월에 목활자본으로 25권 25책을 내의원에서 간행한지 꼭 400주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국책사업으로 이미 1990년에 고광진·남정·갈로 등으로 하여금 동의보감에 대하여 교정작업을 완성하였는데, 그 때에 그들의 맞춤법대로 동의보감에 표점을 찍고, 오자를 교정하고 낙자를 보완하고 주해를 첨부하여, 작업을 한 후의 전서의 자수는 120만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한다해도 중국보다 15년여 기간이나 늦었지만, 발간 400주년이라는 기념제목의 사업으로서 추진하면서 우리도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기필코 등재해야 할 영문 작성의 대본을 만들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문명의 이기를 총 동원하여 그들보다 더 꼼꼼하고도 성실하게 진행함으로써 의의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와 한의계도 제1차 한의약 육성발전 5개년 종합계획에 기술혁신 산업화 의욕이 살아날 수 있도록 중의약 전략보다 좀 더 끊임없는 보완작업을 통해 비교우위의 세밀한 접근전략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우선 단순하고도 눈에 쉽게 뜨이는 가시적이고 급한 작업인 “동의보감의 교열과 교정 및 국역사업은 신속하게 추진하여 진행되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사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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