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학회명예회장 한 대 희
우리 韓民族한테 유사 이래로 건강을 담당해 왔던 우리의 전통의학이 중국과의 문물거래가 점차로 더욱 빈번해 짐에 따라 의학 분야에서도 長足의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조선조 宣祖 때에 이르러서는 임진왜란의 전란 후유증으로 인해 더욱 의학의 정체성 정립이 필요하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 저술의 동기이라고 사려된다.
동의보감은 의학에 있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이블이 되었고,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의학에도 크게 영향을 미처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들도 여러 번 발행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개인들에 의해 몇 차례 교정과 간행 및 번역이 이루어졌을 뿐 제대로 교열이 되고 교정까지 이루어져서 완전에 가까워진 상태로 완질로 국역된 동의보감을 갖지 못하였다고 여겨진다.
다행스럽게도 1991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동문회(회장 문종화)의 발의로 시작된 허준 선생 기념사업에 필자도 참여하여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서 허준 선생의 서거기록을 문헌적으로 찾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1991년 6월3일 허준 선생의 동상 건립·공원 조성·기념관 건립을 탄원하였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국방부에 DMZ 내에 있는 허준 선생의 失傳墓所 답사 안내를 요청한 끝에 우리들 한의사가 주축이 되어 여러 번 현지를 답사한 끝에, 失傳墓所를 50여년 만에 드디어 황폐된 잡목림 속에서 1991년 9월30일 찾았고, 기념사업의 기본인 묘소의 측량부터 시작한 끝에, 경기도 보물로 지정되어 묘소의 소유자로 ‘허준기념사업회 문종화’라고 기록된 1992년 6월5일 字의 경기도지사의 ‘경기도 문화재 지정서’까지 받고, 묘소를 성역화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선생의 저서인 동의보감 등 6권을 ‘국가의 보물’로 신청하였으나, 이들 7권이 임진왜란 이후의 작품이기에 규정된 국보의 규격에 미치지 못하고, 다만 한 등급 아래인 ‘보물’로 지정됨으로서 동의보감은 1991년 9월30일, ‘허준의 달’ 마지막 날에 ‘보물 제1085호’로 지정되었고, 그 외의 저서인 ‘강疫神方·新纂·瘟方·諺解胎産集要·簒圖方論脈訣集成’도 함께 지정되었다. 다만 ‘諺解救急方’과 ‘諺解痘瘡集要’는 現物이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아 지정이 보류되었다.
필자는 어느 나라의 20차 改訂版 內科學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바로 ‘이거다’라고 마음을 먹고 한의신문(1998.10.12 제904호)에 ‘동의보감을 교정하고 내용의 증보를 제안한다’를 투고하였었다. 동의보감 교정에 대한 필자의 글을 읽고 공감한 끝에 얼마가 지난 후에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내과 원진희 과장 외 8명이 ‘精校 東醫寶鑑’을 교정· 편술하여 보내왔다. 고맙고도 반가운 일이다. 뜻있는 9명의 젊은 한의학인들이 學과 術의 현장에서 시론에 따라 발로 뛰고 있으니, 우리들에게 전망이 밝은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 소장 등이 번역한 ‘東醫寶鑑 內景篇’을 보내 와 검토해 보니 교열과 번역이 되어 있었고, 젊은 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한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전용민 교수가 ‘再編 附翼 東醫寶鑑’ 5권을 보내왔다. 동의보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장을 띄워서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필자에게는 교열과 교정이 되고 만족할 만한 國譯 東醫寶鑑을 발견하지 못하던 차에, 사단법인 의성허준기념사업회가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동상을 세운 이후 그 잔여기금이 있어, 허준기념사업회 산하에 공식적으로 학술모임체인 구암학회(당시회장 한대희)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김 모 주임교수와 김 모교수 등 젊은 학자들과 함께 연차적으로 동의보감을 교정하고 번역하는 사업 추진계획을 세우고, 허준기념사업회의 잔여기금을 불씨로 삼아 기금 사용을 요청하였으나 당시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환영)의 중앙이사회(회의장 최환영) 일부 이사들이 번역사업 후에, 출판으로 생기는 국역본의 판매 이득금 귀속 향배를 거론하여 논란 끝에 할 수 없이 본건의 제안자였던 필자는 그 현장에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었다.
한편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1613년 간행한지 392년 만인 2005년 3월23일, 141억여원을 들여, 한의학의 메카에, 허준 선생 기념박물관을 개관함으로서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스러운 선생의 업적에 대하여 자료를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하는 등 허준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는 우리 민족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의 정체성을 드디어 한의학의 메카로 점차 굳혀가고 있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정립하고, 협회의 단결된 모습을 결집하여 110여억 원의 거금을 모아 성전을 건축하고, 1998년 12월에 ‘사단법인 의성허준기념사업회’를 포용한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아시아 동방의 나라에, 한민족의 의성이신 허준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을 다시 추진하는 등 올 곧은 한의학의 주체자로서, 거듭 맡겨진 임무를 모든 여건에 맞추어 이제부터는 알차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2006년 들어 와서는 10년간의 계획으로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기념사업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사업을 시작하였다. 정말로 반가운 일이다. 우리 민족에게 정부가 있은 이래 과연 이같은 사업이 기획되어 시행되었던 일이 과거에도 있었는지 스스로 물어 본다.
우리 협회는 1989년 12월, 협회의 35년여의 각종 자료를 취합하여 ‘대한한의사협회 40년사’를 편찬한 일이 있었고, 그 때 필자도 일익을 담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도 모든 여건이 쉽지 만은 않았다. 협회 재정상태나 업계의 환경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리하더라도 우리들은 협회 차원에서 “한의학의 역사에 있어서 정체성을 수립하는 것”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협회가 반드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아 왔기에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신체에 발병이 되는 줄도 모르고 강행을 하여 협회 역사상 최초의 정체성 있는 단체로 존재의 기둥을 정립하였다.
중국 정부는 최근 중의학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제는 위와 같은 상황이 눈앞에 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의 한국 한의학적 관점에서 정말로 주목해야 할 일이다.
지난 2006년 6월8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국가중의약관리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중국 정부는 수천년 전통의 중의학의 임상 및 기초 등 모든 구성요소를 한데 묶어 ‘중국전통의약’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기로 확정했다”고 보도한 사실을 한의신문은 2006년 6월15일자에서 전하고 있다.
이에 앞서 6월7일 중의약 세계문화유산 신청위원회의 선즈샹 副主任 겸 중의학관리국 국제협력 비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중의약 문물, 고서적, 도보, 기물, 인물, 기초이론, 중약, 중의처방, 중의양생·보건, 질병, 침구, 료법, 특수표기 등 총 13가지로 나눠 신청키로 했다”며 “이번에 신청하게 되는 중국전통의약에는 중화민족의 전통의약뿐만 아니라 각 소수민족의 전통의약인 몽의학과 장의학까지 모두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