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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8일 (목)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完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完

함 정 식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 전공·청솔한의원 원장)







도모노우라는 빈고슈[備後州]에 소속되어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항구도시였다. 촬영차 이번 기행에 참가한 부산일보 최학림 기자는 “이곳 도모노우라의 경치를 보고 옛 통신사가 감탄했던 것처럼 이번 기행단도 감탄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모노우라에는 조선통신사가 11번이나 다녀갔다는 후쿠젠지[福禪寺]라는 절이 있었다. 일행이 후쿠젠지를 방문했을 때 이곳의 책임자와 조상 대대로 이 절을 지키고 있다는 노령의 고승(高僧)에게 혹시 한의학과 관련된 자료에 대하여 물으니 조선통신사 관련한 귀중한 자료라 하면서 약사발과 ‘對症方選’, ‘婦女鑑’, ‘幼學綱要’라는 책 외에 몇 권의 서적을 보여줬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살펴보니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선 약사발은 그것이 옛 조선통신사와 관련이 있다고 증명해줄 만한 자료가 전혀 없으며, ‘對症方選’의 내용은 흘낏 보아도 그것이 근간에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婦女鑑’, ‘幼學綱要’는 의학과는 거리가 먼 서적이었다. 잘못을 지적해 주고 싶었지만 고승(高僧)이 너무나도 고령이었던 까닭에 귀가 어두워 의사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간절히 고대했던 한의학 관련 자료를 찾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8월 일본의 엄청난 무더위 때문이었는지 아이노시마에서의 벅찬 느낌과는 다르게 이 곳 도모노우라에서는 긴장감이 다소 풀리게 되었다.



오카야마현에 있는 우시마도는 연간 평균기온 16.6℃, 강우량 1000㎜ 정도로 지중해의 기후풍토와 흡사하다.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데다, 맑게 갠 하늘 아래 탁 트인 에메랄드빛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는 그 이름이 결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절로 깨닫게 한다.



이곳의 통신사 자료관 이름은 가이유칸[海遊館]으로 1719년 정사 홍치중을 제술관으로 수행했던 신유한이 썼던 기행문 ‘海遊錄’에서 따온 이름이다.



가이유칸[海遊館]에 들어서니 먼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의 초상을 그린 큰 그림과 넓은 정자에서 조선의 학자 4명이 반대편에 공손하게 앉아 있는 10명의 일본인을 상대로 필담창화에 응해주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1719년 제9회 조선통신사 일행이 국서를 교환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술관 신유한, 성여필, 서기 장응두, 강백(姜柏) 등이 오카야마의 유신(儒臣) 마츠이 가라쿠[松井河樂], 와다 사이세이[和田省齋]와 주로 필담창화를 나눴는데 그 일부 중에 의학과 관련된 문답내용이 ‘桑韓唱酬集’ 卷二와 卷三에 실려 있다.



의학문답에 참여한 사람은 양의(良醫) 권도(權道)와 의원 백흥전(白興詮)이고, 이들은 脚氣와 傷寒論과 관련된 의서에 관한 일본인 의사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해 준다.



가이유칸을 돌아보고 영상자료를 볼 수 있었다. 오카야마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가라코 오도리[唐子踊]라는 것이었다. 가라코 오도리는 옛 조선통신사들이 우시마도에 숙박했을 때 조선 소동(小童)들이 추었던 것을 그대로 모방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춤이다.



옛 통신사 사행 때 조선 소동(小童)들의 연행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소동(小童)들의 무표정한 얼굴, 의미를 알 수 없는 춤동작과 유래를 알 수 없는 슬픈 음악이 이어진다.



이번 기행은 이곳을 끝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여정이라 아쉬웠는데 가라코 오도리의 슬픈 음악과 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이웃과의 영원한 이별을 암시하는 듯 했다.



사실 임진왜란 이후 12회에 걸친 조선통신사 왕래가 있었던 260년만큼은 한·일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평화적이었고 일본은 좋은 이웃이었다. 그러나 1811년 제12회 조선통신사의 활동을 끝으로 1868년에 일본에 메이지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한·일간의 불행한 과거는 시작되었고 그것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기행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옆 좌석에서 조선통신사와 관련, 궁금한 사항을 필자에게 설명해 준 ‘한일공통 역사교재’ 『조선통신사』에 한국 집필자 대표 강태원 선생님은 “우리는 조선통신사를 문화사절로 여기지만, 일본의 교과서와 일반은 조공 사절로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그 점을 직시하고 양국이 그 편차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오로지 논문을 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기행에 참가한 필자에게 뜨끔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선통신사에 파견에 선발된 사신들 중에는 11,300여리에 달하는 일본 에도[도쿄]까지의 멀고도 험한 사행(使行)길을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면서 사행(死行)길로 생각했다.

1764년 제11회 조선통신사에 정사로 임명된 자가 명령을 거부하여 귀양을 간 경우도 있었고, 항해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 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사카에서 일본인에 의해 일행 중 한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도 발생했기 때문에 내키지 않은 발걸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섬나라 오랑캐를 우리의 문화로 교화시킨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묵묵히 일본에서 한의학의 우수성을 과시한 양의(良醫)와 의원들의 업적을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을 배양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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