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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7일 (일)

“한 달 간 경북 산불피해 이재민 한의치료를 하며”

“한 달 간 경북 산불피해 이재민 한의치료를 하며”

다른 의료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방문 진료, 이재민들에게 특별한 감동 선사
김도완 총무부회장(경상북도한의사회)

김도완 부회장님 (1).jpg

 

3월 26일 수요일, 안동시내 전체가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다. 오후 6시, 상가의 전깃불 대부분은 꺼진 상태로 마치 좀비의 도시처럼 바뀐 상황에서 경북한의사회 김봉현 회장의 제안을 받았다. 이재민들이 대피하고 있는 안동실내체육관에 방문해보자는 것이었다.

 

대학동기인 김 회장과는 지역에서 늘 함께 소통하고 있던 터라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며 그곳을 방문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였던 그곳은 산불의 공포감보다 대피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과 건강 악화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불 때문에 두려워하고 속상해하고 있을 때 이처럼 많은 500여며의 이재민들은 실내체육관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있었다. 연기 자욱한 체육관에서 기침을 하고 밤잠을 설치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일 몇몇 분들에게 만일에 대비해서 한의원에서 갖고 온 천왕보심단과 우황청심원을 나눠 드리며, 내일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김 회장과 함께 서둘러 한의진료실 설치에 나섰다.

27일, 오전에 급히 진료실 장소를 정한 뒤 바로 이어 한의과진료실을 개소했다. 점심때부터 진료가 시작됐다. 안동분회 권도경 회장과 함께 진료실 시스템도 갖춰 나갔다.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은 한의원에서 갖고 왔으며, 환자에게 필요할만한 보험제제, 파스, 약침, 경옥고, 쌍화탕, 청심원, 천왕보심단 등도 주문했다.

 

김도완 부회장님 (3).jpg

 

주업이 봉사이고, 부업이 한의원 진료

 

초창기에는 한의과진료실에 대한 홍보가 덜되었는지 대피소에 계신 이재민들의 숫자에 비교하면 많은 환자들이 방문하지는 않았다. 곳곳에는 유명 정치인들이 행사장을 방문해주었고, 취재기자들도 수시로 왔다갔다하면서 한의과진료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27일 오후에는 실내체육관 대피소 외에도 안동시의 서부초, 용상초, 길주초등학교 대피소들을 방문했다. 그곳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수백 명의 이재민들이 밀집돼 숙식하고 있는 모습은 재난을 넘은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마음이 매우 아팠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한의원에 침 맞으시러 오던 환자들이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돼 집을 잃고 절망하는 모습에서 큰 도움을 드릴 수 없는 입장이 우울감으로 밀려왔다.

상황이 심각하다보니 한의원 진료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대피소에서 진료를 시작한 후 처음 2주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한의원 진료를 거의 내 팽개친 채 봉사에만 전념했다. 그야말로 주업이 봉사이고, 부업이 한의원 진료였다.

 

진료실 진료를 마친 이후에도 정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줌 회의까지 하게 됐다. 거의 매일 진료를 마친 후 오후 9시가 되면 경북지부 줌 회의가 시작됐다. 현재 진료 현황과 준비해야할 물품, 개선해야 할 것들, 대피소 변동 상황 등을 점검하다보면 2시간을 훌쩍 넘기가 일쑤였다. 입술이 부르텄고, 피로는 몰려왔다. 하지만 이재민들의 심각한 건강 상태를 생각하면 의료봉사의 고삐를 늦출 순 없었다.

 

김도완 부회장님 (4).jpg

 

한의사들, 재난현장에서 막중한 역할 수행


이재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불안한 마음 가시질 않을 때였다.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 한 분이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너무 심심한데, 안동은 지금 파크골프를 못 치니 경주에 차 맞춰서 파크골프나 치러 가자.” 그 환자 분의 히히덕거리는 통화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지금 너무 심심해서 경주까지 파크골프 치러 가실 거라면 대피소에 봉사하러 한번 가보시라고, 심심하기는커녕 눈코 뜰 새 없으실 거라고, 무안을 주고 말았다. 아마도 그 환자는 다시는 필자의 한의원에 오지 않겠지만, 그 당시 상황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의과진료실 개소이후 1주일이 지나면서 대규모 대피소는 환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분위기는 점차 소규모 대피소나 시골마을 경로당, 마을회관 등으로 이동하게 됐다. 이런 상황이 되면서 오후에 시간을 내 그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를 하게 됐다.

 

진료여건은 무척 좋지 않았다. 대부분 장소에는 베드가 없어서 허리를 숙이고 침을 놔 드려야 했고, 곳곳을 옮겨 다니면서 진료를 해야 했기에 진료를 한 환자 수에 비해서 피로도는 훨씬 심하게 느껴졌다.

 

또한 대규모 대피소에 계신 분들에 비해 봉사 대상에서 소외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이 산불 현장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문밖을 나올 때마다 그 화마(火魔)의 상처를 보게 되니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그분들의 건강이 더욱 걱정됐다.

하지만 이재민을 찾아 방문 진료하는 의료진은 우리 한의사들밖에 없었다. 침과 약침, 한약만 지니고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우리들만의 큰 장점이었다. 다른 의료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이기에 이재민들에게는 특별한 감동을 전해줬다. 다시 방문하였을 때는 전보다 증상이 좋아졌다면 반겨주었고, 이제는 잠을 잘 수 있다며 자주 와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재난현장에서 우리 한의사들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김도완 부회장님 (2).jpg

 

지금도 봉사를 계속해야하는 이유는?

 

봉사를 시작한지 1달 반이 지난 지금도 곳곳에서 봉사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열심히 봉사했으니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의 한의치료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쉬고 싶은 마음을 접게 된다.

 

또한 멀리서 봉사를 하러 오시는 많은 동료 한의사들을 바라보며 이재민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우리의 봉사는 멈춰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번 봉사를 통해 우리 한의진료가 이재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어서 자부심과 큰 보람을 느끼지만, 누군가가 힘들 때 도움을 주게 되면 내 심장이 이처럼 뜨겁게 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기도 했다.

 

개원 후 양방에서 치료가 되지 않아 내원한 환자들의 치료가 잘 되었을 때 한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고, 한의사인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 했지만, 최근 산불피해 이재민들을 위한 봉사에서는 더 큰 보람을 느꼈다.

 

매일 아침 깨어나 뉴스를 보면서 산불피해 이재민들이 임시주택에 기거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안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분들 중에서 어느 누군가가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도 바란다.

 

우리의 한의치료가 그분들께서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라도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너무나 큰 다행이라는 본다. 이 마음이 바로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봉사를 계속해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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