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임의 고통에서 희망을 찾다… 한의원에서 만난 희망
한의학 체험수기 공모전-은상
임신테스트기를 보는 순간 가슴은 또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소리없는 눈물이 두 눈을 적시고, 이제는 차고 넘친 나머지 마음을 아프게 적십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말자’라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속삭임이 귓전을 맴돌지만 이제는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 단념하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한 줄, 한 줄, 그리도 또 한 줄도 모자라 이번에도 임신테스트기는 선명한 한 줄로 임신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믿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 슬픕니다. 더는 흘릴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데도 말입니다.
결혼 4년차, 남들에겐 그리 쉬워 보이는 일이 우리 부부에겐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더 힘이 듭니다. 임신, 그것은 결혼과 함께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축복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1년, 2년 그리고 4년이 다 되어가도 우리 부부에게 있어 임신은 깜깜 무소식입니다. 급기야는 2009년 8월, 양가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우리 부부는 산부인과를 찾았고, 진단 결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불임 진단…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궁내막증, 말 그대로 자궁내막의 선조직과 기질이 자궁이 아닌 다른 부위의 조직에 부착해 임신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남편은 남성불임의 원인 중 하나인 희소정자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이 오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직은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며 우리 부부를 다독거렸습니다. 그래도 한 번 무너진 희망은 다시 세우기엔 우리 부부는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편 또한 두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음이 역력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연임신도 어렵고 인공수정도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시험관 시술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만 같았던 시험관 시술, 우리 부부는 길고도 슬픈 고민 끝에 마침내 2009년 10월 시험관 시술에 참여했습니다.
시험관 시술은 말 그대로 힘듦의 연속이었습니다. 호르몬제를 먹고 난 후에는 좀처럼 잠도 오질 않고, 배란이 될 즈음엔 극심한 통증으로 날을 새는 날이 많았습니다. 특히, 약을 먹은 후에는 억지로 배란이 많이 되도록 해야하니 배는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난소에서 난자를 꺼내는 시술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습니다.
지속됐던 시험관 시술… “실패했습니다”
몸 밖에서 이뤄지는 수정은 정말이지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고도 3~5일 뒤에 다시 병원에 찾아가 수정된 ‘아기씨’를 자궁에 다시 집어넣는 시술을 받고, 온갖 주사를 다 맞은 후에는 종일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고통을 지난 후에 비로소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 부부에겐 웬일인지 성공 보다는 실패가 익숙한 듯 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남편과 나는 무언의 약속처럼 북받치는 슬픔에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2012년 5월, 더는 시험관 시술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질리는 법인데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 ‘실패했습니다’ 는 우리 부부의 가슴을 둘로 가르는 것처럼 너무 아픈 말이었습니다. 아이는 너무 갖고 싶은데...정말이지 우리를 꼭 빼닮은 아이를 낳고 싶은데...아무래도 이 세상에는 모두에게 그 흔한 축복인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가장 큰 슬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혀끝을 깨물며 결국엔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아이가 없다는 것은 곧 가정에 깃든 행복이 더 이상은 자라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시험관 시술 이전에는 ‘(아이)언젠가는 생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우리에겐 있었지만, 병원 진단 결과와 시험관 시술, 그리고 아이에 대한 희망을 접은 후부터는 대화 보단 침묵이 늘고, 사랑은 갈수록 줄기만 했습니다. 그런 어색한 환경에 대해 나도, 남편도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익숙해질 무렵, 남편은 무겁고 나지막한 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한의학으로 한 번만 더 해 보자, 이번에도 안되면 우리 깨끗이 포기하자” 남편의 말은 양해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나 보다 더 힘들었을텐데도 용기내 입을 연 남편이 나는 한없이 미안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지막이라는 심정과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안고, 한의학을 통한 임신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한의사는 두 눈을 감고, 나와 남편을 번갈아 가며 맥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내 몸에 대해 나 조차도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들려줄 때에는 귀신에 홀린 듯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궁 문제와 수족 냉증,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등을 모두 현미경 들여다 보듯 척척 맞히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채소를 싫어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과 고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 남편은 두 눈을 토끼눈처럼 커다랗게 떴습니다. 한의사에 대한 믿음이 갔고, 한의학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2012년 8월, 남편과 나는 벼랑 끝에서 희망을 품는 심정으로 임신을 위한 체질 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한의원 착상 치료… 태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험관 시술 만큼 고통스러울까? 라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것은 지나친 나의 불안감이었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습니다. 한의사는 아기가 들어설 수 있는 최적의 자궁 상태를 만들어 주기 위한 조경치료와 가벼운 산책, 그리고 유산소 운동을 적극 권유했습니다. 물론, 내 체질 개선을 위한 한약도 정성스럽게 다려 주었습니다.
한의사는 또 “자궁의 문제는 모든 것이 불규칙한 식습관에서 나오고, 이는 곧 호르몬의 균형을 망가뜨린다”며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풍부한 식단을 따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남편도 한의사가 일러준대로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오직 희소정자증 치료에만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무렵(7월), 한의사는 전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달라진 내게 착상탕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양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 중에 하나인 착상률을 높이는 치료법 중 하나인 착상탕. 복용을 할 때에는 너무 쓰고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지만, 시험관 시술에 비하면 착상탕은 몇 년이고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의사가 정성껏 다려준 착상탕을 나 또한 임신에 대한 간절함을 담아 마셨습니다. 이런 나의 간절함이 정말 하늘에 닿았을까요?
2014년 2월 10일, 한의사는 내게 태동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태동이...눈물이 흘렀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임신 소식. 결혼 만 8년 만에 찾아온 희소식은 남편과 가족, 그리고 양가 친지를 향해 빛 보다 빨리 퍼졌습니다.
그 날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이제 엄마가 되고, 우리 부부를 닮은 아이가 내 배속에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로또 1등에 맞은 것 보다 더 큰 기쁨을 안긴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나는 오늘 내일 죽어도 이 날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임신 이후에도 한의원에 가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너무 어렵게 얻은 임신은 입덧 또한 여느 사람과 달리 너무 심했습니다. 도무지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메스꺼울 뿐만 아니라 물이라도 먹는 날에는 구토하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입덧의 기쁨 또한 내겐 아름다운 축복이었지만, 참을 수 없을 때에는 한의원에 가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 때 마다 한의사는 생강차와 매실차 등을 다려 주었습니다. 입덧은 소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소화를 돕는 차가 좋다고 한의사는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입덧은 거짓말처럼 진정됐습니다.
감기에 걸려 양약을 복용할 수 없을 때에도, 요통으로 고생할 때에도 한의원은 내게 통증의 아픔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11월 10일이면 희망이(태명)를 출산할 예정입니다. 하늘에 별을 따는 것 보다 더 힘들게 얻은 내 아이, 그 시작에는 한의학이 있었고, 친절한 한의사가 곁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볼을 꼬집어 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리고 이내 행복한 웃음을 짓습니다.
불임의 고통에서 희망의 불씨를 보고, 그 불씨를 한의원에서 키운 지금, 나도 이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흐릅니다. 누군가는 내게 그랬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신이 여자에게 부여한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하지만 내게 있어 출산의 고통은 분명 불임의 고통 보다 더 아픈 것이었습니다.
출산의 고통, 엄마가 될 수 있다면 한 번 아니 열 번이고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한의학이 허락하고, 친절한 한의사가 그 때에도 곁에 있어준다면 말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내게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안겨준 한의학, 진심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