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약 해외진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1> 러시아
“비화학적 치료 선호… 러시아와 한의학 잘 어울려”
Q. 러시아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원주에서 평범한 개원의로 일하던 중 올해 초부터 대한한의사협회의 국제이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한의사 공급과잉으로 인한 한의계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정책 중 하나로 ‘한의사 해외진출’ 준비가 지난해부터 진행되었다. 그 대상국에는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도 포함돼 있었는데, 중·고등학교를 러시아에서 다닌 경험이 있어 이 일을 맡게 됐다.
Q. 러시아의 의료서비스 및 전통의학 현황은?
러시아는 현재 낡은 의료시스템 개혁을 위해 천문학적인 국비를 투자해 의료혁신 국가사업이 진행 중으로 작년까지 모든 국·공립 의료기관을 수리·신설하고 최신 의료기기를 도입하고 있고, 사립 병·의원도 빠르게 개설되는 등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또 비의료인의 병·의원 개설 및 의료인 고용이 가능하고, 의사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일반 노동자의 2~3배 이상 급여가 되도록 하겠다는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실현해 나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전통의학이라고 하면 보통 양의학을 말하며, 동양의학 등은 (非)전통의학이라고 부른다. 특히 침구치료에 관해서는 의료법에 상세히 정리돼 있는데, 합법적으로 침구치료를 하려면 ‘레플렉소테라피(직역-혈위반응요법·이후 침구학)’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전에 우선 신경학전문의 자격이 돼야 레플렉소테라피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즉 의사 중 소수만이 합법적으로 침을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999년 개정된 러시아 침구학발전법에는 △침구치료실 설치 및 운영 △인력(간호사) 운영 및 배치 △필수로 갖춰야 하는 기구들은 물론 최소 구비돼 있어야 하는 침의 개수까지도 정해져 있고, 각 혈위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까지 기술돼 있어 관련법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의학의 종주국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Q. 한의약에 대한 수강생들의 반응은?
우선 한의학 종주국의 의사로부터 직접 강의를 듣게 해준다는 것에 대한 대학측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침구학 전공은 신경학을 우선 전공해야 하는 과정이라 보통 학과 커리큘럼에서는 매우 짧은 시간만 하고 넘어가는 내용이었지만, 올해부터 보강된 내용을 들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다. 학생들이나 관련 교수 모두 지금까지는 전적으로 중국에서만 정보를 얻어 왔고, 그마저도 일부 사람들이 중국에 직접 가서 강의를 듣는 상황이었다. 한국인이 직접 와서 강의를 하는 것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이며, 혈명 등을 한국어로 발음토록 유도하는데, 발음을 받아쓰는 진지한 태도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와 함께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비화학적 약물치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정골요법·동종요법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으며, 비화학적 치료의 정점이 한의학(동양의학)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어졌다는 느낌은 든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대체로 흥미롭게 생각하는 정도이고, 기존에 중의학을 배웠던 교수 및 임상의들의 반응은 뜨겁다.
Q. 한의학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비화학적 치료를 선호하는 러시아 환자들과 한의학은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현재 러시아에서 정식으로 침구치료를 하는 의원들의 진료비용을 보면 초년생 의사의 경우 보통 1회당 최소 3-4만원, 보통은 5-6만원 정도다. 무면허로 진료하는 중의사들의 치료비는 더 높은 경우도 있다. 한국 한의사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러시아에는 한인 교포들이 밀집해 거주하는 지역이 사할린, 연해주, 로스토브 등 여러 곳이 있어 기본적인 한의학에 우호적인 수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Q. 한의사의 해외진출에 대한 견해는?
한의학의 세계화는 단순히 한의사가 해외로 나가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의사가 해외에서 강의를 하고 진료를 하며 현지 의사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 결과로 한국의 팬이 생기고 한의학을 배우고자 한국을 방문하는 유학생들이 생기며, 종주국의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의료기구들을 사용하고자 하는 새로운 소비자들이 생기는 것 등 다양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중국 중의학 세계화 정책의 결과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으로, 아직까지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 등에는 중의사들이 뿌리내리지 못한 만큼 앞으로 한국이 이 지역에 대한 진출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레플렉소테라피 전문의들의 지역 모임에 참석해 관심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한 의사가 ‘상한론’을 읽고 계지탕의 구성에 대한 내용을 질문해 토론한 일이 있었다. 실제 이미 몇몇 의사들은 중국에서 엑기스제 또는 환제를 가져와 임상에 활용하고 있으며, 효과 또한 매우 탁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 지식에 목말라함을 느낄 수 있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한의사의 해외진출을 위해 국내에서 해결돼야 할 과제로는 한의과대학 교육과정의 개선과 영문증명서의 표준화 작업일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한의사도 의사다’라고 말하려면 최소한 그 교육과정이 해외 의과대학들과 비교했을 때 모자라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대학마다 영문교과목 명칭이 다르고, 맞지 않은 표기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필요하다. 다행히 러시아 교육부에서는 한국 한의학과 교육과정에 대해 ‘러시아 의과대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라고 판단, 러시아 의료법 등 몇 과목에 대한 추가학점 이수를 통해 면허를 부여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Q. 해외진출, 무엇을 준비 해야 하는가?
앞으로 대한한의사협회와 러시아의 의료·연구 기관들이 전문 세부 분야별로 공동연구들을 기획해 접촉점을 점차 늘여갈 계획이다. 이러한 기회들을 활용해 여러분들이 경험을 쌓아간다면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타지에서 생활하는데 현지어가 필수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유창한 말보다는 제대로 된 치료 실력과 충분한 이론적 설명이다. 언어는 통역을 세우면 되지만 치료효과와 학술적 내용은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외진출을 계획하고 있다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준비하면 된다. 진료를 기반으로 한 진출이면 치료 및 환자와의 소통 능력을 기르면 되고, 강의라면 강의 준비를 하면 될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둘 다 준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밖에도 최근 국내 대학들도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기라도 주요 공략 지역에 한의사를 파견해 진료 및 강의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장기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홍보는 물론 국내 치료 후 피드백이 가능한 시스템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