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32.3℃
  • 맑음32.2℃
  • 맑음철원30.8℃
  • 맑음동두천30.0℃
  • 맑음파주29.3℃
  • 맑음대관령28.2℃
  • 맑음춘천32.6℃
  • 구름많음백령도28.3℃
  • 맑음북강릉33.3℃
  • 맑음강릉35.5℃
  • 맑음동해30.2℃
  • 맑음서울31.2℃
  • 맑음인천30.2℃
  • 맑음원주32.7℃
  • 맑음울릉도30.3℃
  • 맑음수원31.0℃
  • 맑음영월32.1℃
  • 맑음충주33.1℃
  • 맑음서산31.1℃
  • 맑음울진29.8℃
  • 맑음청주34.0℃
  • 맑음대전33.2℃
  • 맑음추풍령30.4℃
  • 맑음안동33.8℃
  • 맑음상주32.7℃
  • 맑음포항34.6℃
  • 맑음군산30.6℃
  • 맑음대구35.3℃
  • 맑음전주32.7℃
  • 맑음울산31.9℃
  • 맑음창원32.7℃
  • 맑음광주32.8℃
  • 맑음부산32.9℃
  • 맑음통영32.1℃
  • 맑음목포32.9℃
  • 맑음여수31.2℃
  • 맑음흑산도32.7℃
  • 맑음완도30.4℃
  • 맑음고창31.9℃
  • 맑음순천31.5℃
  • 맑음홍성(예)31.9℃
  • 맑음31.5℃
  • 맑음제주33.1℃
  • 맑음고산30.1℃
  • 맑음성산31.0℃
  • 맑음서귀포30.8℃
  • 맑음진주31.8℃
  • 맑음강화27.4℃
  • 맑음양평31.9℃
  • 맑음이천32.6℃
  • 맑음인제31.1℃
  • 맑음홍천32.0℃
  • 맑음태백28.6℃
  • 맑음정선군
  • 맑음제천30.8℃
  • 맑음보은31.7℃
  • 맑음천안30.2℃
  • 맑음보령31.6℃
  • 맑음부여31.9℃
  • 맑음금산32.5℃
  • 맑음32.2℃
  • 맑음부안31.1℃
  • 맑음임실32.3℃
  • 맑음정읍32.4℃
  • 맑음남원33.3℃
  • 맑음장수30.7℃
  • 맑음고창군32.1℃
  • 맑음영광군31.3℃
  • 맑음김해시33.3℃
  • 맑음순창군33.2℃
  • 맑음북창원33.6℃
  • 맑음양산시33.7℃
  • 맑음보성군32.0℃
  • 맑음강진군32.6℃
  • 맑음장흥30.3℃
  • 맑음해남33.0℃
  • 맑음고흥32.8℃
  • 맑음의령군33.5℃
  • 맑음함양군34.0℃
  • 맑음광양시32.9℃
  • 맑음진도군30.9℃
  • 맑음봉화31.3℃
  • 맑음영주31.4℃
  • 맑음문경32.6℃
  • 맑음청송군34.9℃
  • 맑음영덕31.4℃
  • 맑음의성34.3℃
  • 맑음구미33.1℃
  • 맑음영천34.0℃
  • 맑음경주시34.9℃
  • 맑음거창33.4℃
  • 맑음합천33.6℃
  • 맑음밀양34.6℃
  • 맑음산청34.1℃
  • 맑음거제30.4℃
  • 맑음남해31.3℃
  • 맑음32.7℃
기상청 제공

2026년 08월 24일 (월)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87)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87)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보자”



康命吉의 濟衆新編論



kni-web[한의신문]康命吉(1737〜1801)은 조선 문화의 황금기인 영조와 정조년간에 御醫로 활동하면서 뛰어난 의술로 당대 최고의 의사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영조 44년인 1768년에 의과고시에 합격해 내의원에 들어온 후 정조대까지 의술과 학식으로 이름을 떨쳤고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1794년에는 首醫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1799년 왕명에 따라 『濟衆新編』이라는 의서를 간행하는데, 이 책은 『東醫寶鑑』의 단점을 극복하고 활용도가 높은 의서를 만들고자 하는 정조대왕의 의지의 반영으로서 康命吉은 이를 잘 수행해 냈다. 康命吉 자신이 지은 발문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에 선왕 시절의 기축년(1769년)에 臣 강명길이 처음으로 태의원에 들어갔다. 지금의 주상전하의 때에 春邸에 납시어서 臣에게 오셔서 굽어보시고 의학의 이치를 물어보셨다. 素問과 難經으로부터 歷代諸方에 이르기까지 깊은 내용까지 갈고리질해서 숨어있는 것들까지 적출해내셔서 나로 하여금 그 보고 들은 것들을 다하게 하시고는 이윽고 다음과 같이 하교하셨다. ‘내가 우리 大朝께서 오랫동안 섭정하시는 가운데 탕약으로 모시는 겨를에 의서들을 이리저리 거칠게 보아 의술을 알게 되었다. 의학만큼 어진 것이 없으니 백성들의 목숨을 관장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뜻을 극진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조선에 의서가 허준의 『동의보감』이 있는데, 비록 상세하고 빠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장이 혹 번잡하면서 군더더기가 있고, 말이 혹 중첩되고, 증상이 혹 빠진 것이 있어서 응용하는 처방들이 또한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경에서 그 요체를 아는 자는 한마디로 끝내고, 그 요체를 알지 못하는 자는 흘러 흩어짐이 다함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그대는 모든 처방들을 널리 취하여 그 번잡한 것을 잘라내고 그 요체가 되는 것들을 취하여 별도로 하나의 방서를 지어서 가지고 오라.’ 臣의 性이 본래 용렬하고 우매하여 학문이 근원을 궁구하지 못하였으니 명령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워하여 이른 밤에도 쓰러질 만큼 허둥댔다. 삼가 모든 방서들을 모아 한결같이 성인의 가르침을 좇아서 번잡한 것을 깎아내고 요체가 되는 것만 취하여 8권으로 편성하였는데, 매 편을 완성하면 임금께 보여드리니 보아주시고 지적하여주시며 붓으로 교정해주셔서 수십년이 지나 책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에 內閣에 명령하여 인쇄해 中外에 반포하여 天下萬世로 하여금 모두 우리 聖上의 백성들을 널리 구제하는 德에 살도록 하였다. 생각건대 臣이 더불어 듣고 책을 편집하는 일이 진실로 영광스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요행스럽게도 삼가 몇 마디 말을 지어서 그 일의 전말을 쓴다. 己未(1799년) 4월 崇祿大夫行 知中樞府事 臣 康命吉가 拜手稽首하면서 삼가 씀.”(필자의 번역)



2067-30-1즉 이 책은 『동의보감』의 ‘중첩되고, 증상이 혹 빠진 것’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濟衆新編凡例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이하 필자의 번역).



一. 古方이 비록 많지만 症論이 浩繁하니 後學들이 要領을 알지 못한다. 지금에 널리 모든 처방들을 취하여 번잡한 것을 깎아내고 요체가 되는 것을 취하였다. 症과 脈을 각각 分類를 세워서 마땅히 사용할 처방을 그 아래에 나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을 열면 밝게 눈에 들어오게 하였다.

一. 俗方의 가히 쓸만한 것들은 취하여 기록하였다.

一. 脈症治의 三條는 모두 모든 방서들 중에서 가장 긴요한 말들을 합하여 문장을 만들었다.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다. 인용서의 이름은 단지 약처방의 아래에 각각 보이는 서적을 표시해 놓았다.

一. 老人의 病은 少壯들과 다르므로 별도로 增補하였다.

一. 瘟疫의 治法은 古方들이 지금에는 효험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뼈대가 될만한 것들만 간략히 남겼다.

一. 藥性을 註解한 것이 方書에 비록 많지만 모두 浩繁함을 면치 못한다. 단지 萬病回春과 壽世保元의 歌括을 베껴 놓았고, 또한 新增한 八十三首를 덧붙였다.

一. 일찍이 製方한 經驗 및 간간히 나의 뜻으로 논증하여 첨가하여 보충한 것은 참람되이 주제를 넘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또한 실어 기록하였는데, 모두 ‘新增’이라는 말을 써서 구별하였다.

一. 內醫院에 進上된 藥들은 모두 ‘內局’이라고 써서 구별하였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