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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4일 (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4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47)

“타이완에도 일제강점기 醫生制度가 있었다”



타이완(臺灣)의 일제강점기 中醫師制度와 中醫學 敎育



kni-web[한의신문] 타이완의 일제강점기는 청·일전쟁을 일본이 승리하면서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타이완을 할양받으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타이완의 일제강점기는 1895년부터 일본이 패망해 본국으로 돌아간 1945년까지 이어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이어진 타이완의 의학 관련 제도의 변화 과정은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1897년: 최초의 醫學校인 臺北醫院附設醫學講習所가 설립됨.



-1900년: 臺灣總督府衛生課에서 ‘臺灣衛生法規’를 반포함.



-1901년: ‘臺灣醫生免許規則’을 반포해 타이완의 중의사 자격을 검정함. 일본 정부가 타이완의 중의사에게 한 차례의 시험을 거쳐서 허가증을 주었다. 이 때 1097명이 합격함.



-1902년: 臺灣醫學會成立. 『臺灣醫學會雜誌』의 발행.



-1919년: 臺灣敎育令을 시행. 臺灣總督府醫學校를 臺灣總督府醫學專門學校로 개칭. 豫科를 4년으로 연장하고 警務局 소속이었던 것을 內務局 직할로 바꿈.



-1920년: 타이완의 양의사의 숫자가 中醫師의 숫자를 뛰어넘게 됨.



-1922년: 本科와 豫科制度를 폐지하고 일본과 같은 정식 醫專을 성립시키고 臺灣總督府臺北醫學專門學校로 개칭함.

-1930년: 敎會醫院에서 醫生敎育을 금지함. 식민지시대 의학체계를 완성함.





-1936년: 戰時動員令을 발효하여 중국 대륙에 대한 전쟁 상태에 돌입하여 타이완의 의료의 형태도 1938년 이후 軍事動員의 형태로 바뀌게 됨.



위와 같은 역사적 변천 과정 속에서 타이완의 중의학은 변화해 나갔다. 1897년 일본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타이완의 인구는 250만명이었고 中醫師는 2403명이었다. 여기에는 士人醫 1070명, 良醫(儒醫) 91명, 世醫 97명, 時醫 829명, 洋醫 24명이 포함돼 있었다.

역대 의학교의 교장은 山口秀高, 高木友枝, 堀內次雄 등의 순서로 日本人들에 의해 이어졌다.



2098-30-1山口秀高(任期 1897~1901)은 원래 醫學校를 점차 대학으로 승격시키려고 했으나 범죄를 저질러서 본국으로 송환되고 제1기 졸업생을 보지 못했다. 高木友枝(임기 1902~1915)이 그의 뒤를 이어 의학교의 학교장이 됐다. 그는 台北醫院長과 總督府警務局衛生課長을 겸임하면서 당시 타이완 醫藥衛生의 사무를 관장해 ‘衛生總督’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는 赤十字病院을 전문적 실습장소로 확보했다.



점차 타이완의 의학교육과 의료제도는 서양의학이 되면서 중의학의 교육은 침체를 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타이완의 의료가 점차로 서양의학 중심으로 변모해 나갔고, 醫生들의 사회적 지위는 열등한 상태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게 됐다.



이러한 醫生制度는 식민지 시기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돼 醫生規則이라는 법안이 만들어져 한의학의 사회적 명맥을 이어가는 형태로 흘러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전통의학 제도의 모델은 이미 타이완에서 적용시켜 경험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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