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의사의 일본탐방기 (하)
◇한방 없는 일본의료의 현실
2015년 일본의 ‘주간현대’라는 잡지가 20명의 일본 의사에게 설문을 해 ‘환자에겐 주지만, 나는 먹지 않는 약’이란 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의사들마저도 자신들의 수술과 투약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순종적인 일본 국민성에 기반한 ‘의사만 믿으면 된다’는 신뢰가 흔들리면서 이제 자기 건강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현실에 직면한 노년층은 혼란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이에 그 대안으로 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한의학 공부 열풍이 불었다 한다.
한의학의 도움 없이 양의에만 의존해야 하는 일본인들은 그들을 스스로 ‘의료난민’이라 칭하며 한의사가 있는 한국을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인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를 알리는 문제, 한의학 기초지식을 일본사람에게 이해시키는 문제 등의 과제를 풀어내야 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조언했다.
◇몰랐던 한국 한의학의 사회적 공헌
개원 이후 10년만에 처음 해외로 가게 된 설렘 가득한 여행 같은 일본행이었지만 필자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한의학이 없는 곳에 간 것만으로도 한의사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됐고, 한의학 팬들의 성원에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한의사 같은 처방 가능한 전문 집단에 의한 수요 창출이 없으면 각 지자체에서 하는 약초산업이 존립할 수 없고, 하더라도 성장이 발목 잡힌다는 것을 일본의 현실을 통해 알게 됐다. 대자본 건기식 회사의 행보에 가슴앓이 하게 되는 것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지만, 한의사는 한약 즉, 천연물 산업의 든든한 소비주체이자 가치를 조명해주는 조언자로써 ‘천연물 산업의 대들보’라는 긍지를 이제는 가져야만 한다.
일본인들의 진심어린 부러움을 받으면서 해방 이후 선배 한의사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한의사면허와 한약 조제 처방권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또 의료난민인 그들이 바라는 것을 보며 늦게라도 희망찬 미래를 구상할 수 있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한의사가 거대 제약사, 보험사의 이익에 치중해가는 자본주의 양방 위주 의료현실을 타개할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중들은 전혀 알 수 없다. 한의사인 필자도 몰랐으니까. 부유한 양의사처럼 되려는 노력에 급급해서 ‘우리 것의 가치를 갈고 닦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나’라고 반성하면서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본연의 소명을 다할 때 우리의 활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미래…일본서 느낀 두 가지 정책

양방 위주의 정책으론 해결되지 않는 의료난민에 대한 해결책을 한국 한의학에서 찾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한의학의 발전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개인적으로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만 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의료제도의 정비가 선행돼야 한의학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하지만 현실에선 한의학 진흥정책은 커녕 의료기기, 의료기사 문제, 심지어 간호조무사도 복지부장관 유권해석에 근거해 의료법적 근거 없이 사용하는 문제 등등 한의사에 대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제도의 중요성을 체감한 일본행을 계기로 두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첫째, ‘한약급여화’를 하게 될 경우 단계적으로 국내산 한약재 사용비중을 높여가는 조건으로 한의사에게 풍족한 수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비급여의 급여화’와 ‘농가소득 증진’이라는 문재인정부의 정책에 부합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외국산 약재 구입으로 유출되는 약재비를 국내 농가소득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정책이 실현돼 한의사가 조금 비싸더라도 국내산을 사용해주고, 우리 농가소득을 진작시키면서 국민건강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좋겠다. 한의사가 국내산 한약재를 소비하지 못할 경우 한약재산업 사양화도 협상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둘째, 일본인뿐 아니라 특히 현대인들의 특성상 ‘한약 처방 내역 공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느꼈다. 이에 제안한다. 한약재 유통에서 식품용(과) 의약품용을 엄격하게 통제한 후 의약품용의 경우 한의원에서만 취급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정체 모를 검은 액체’의 구성 약재 공개를 한의사가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를 정부에 늦기 전에 한발 앞서 요청했으면 좋겠다. 약재를 공개하고 싶어도 유통이 엉망이어서 오남용 가능성이 높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하는 말이다.
이는 정부가 우리에게 당연히 해줘야 하는 행정서비스이자 한의사가 감당해야할 시대적 사명이다. 마침 정권도 바뀌고 계란파동으로 촉발된 각종 제도정비 과정에 편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마저 왔다. 실기하지 말고 공을 빨리 정부에 넘겨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한의계에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한의학법 제정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