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송영일 한국국제협력단 우즈베키스탄 글로벌협력의료진으로부터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의 한국 한의학에 대한 인식 등을 소개한다.
KOICA·KOMSTA 후원으로 ‘실크로드 봉사팀’ 운영
현지 고려인 등 지역주민에 한의학 우수성 널리 전해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 전체에는 20만명 정도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은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 전체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을 이르는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멀고먼 우즈벡까지 오게 됐을까?
애초에 그들은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강제이주됐다. 우즈벡으로의 고려인 강제이주는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37년 10월 소련 극동지방에 사는 거의 모든 한민족(17만1781명)이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됐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 소비에트연방은 일본과 적대관계였으며, 한인들은 국경을 넘어 연해주를 비롯한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모여 살고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의 지도자 스탈린은 러시아 극동지방으로의 일본인 첩자들의 침투를 막고자 했다. 때문에 일본인과 외모상으로 구별이 어려운 한국인들이 불안요소였으며, 불안요소 제거의 방편으로 러시아 극동지방의 한국인 전체를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차를 이용한 스탈린의 강제이주는 절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여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기차에 화물처럼 적재됐으며, 음식은 부족했고 화장실 같은 것은 없었다. 기차는 쉬지 않고 달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죽고, 기차 밖으로 던져졌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여정을 따라 나서야 했던 고려인들은 중아아시아로 보내져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고려인들은 기나긴 어려움 속에 던져졌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섰다는 말은 정말이지 고려인들에게 바쳐야할 찬사이다.
한편 지난달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과 대한한방의료봉사단(이하 KOMSTA)의 지원으로 한의학을 통해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됐다. 실크로드 봉사팀은 타슈켄트(15~17일), 사마르칸트(19~20일), 부하라(22~23일), 우르겐치(25~26일), 누쿠스(28~29일)를 순회하며 한의의료봉사를 펼쳤다.
고려인 할머니, 할아버지 중에는 고려말을 잘하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과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한국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타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면 반갑듯이, 이 분들도 우리가 반가우실 것이다. “같은 고려사람끼리 고려말 합소”라고 하면서 대화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스스로를 한국사람, 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로 우리를 소개할 때는 고려사람-코리안(korean)이라고 해야 다들 알아듣는다. 그리고 러시아어로도 고려인들이나 한국사람이나 카레예츠(кореец)이다. 어쩌면 그분들 말처럼 우리는 같은 고려사람인 것이다.
우리에게 조국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분명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반도 대한민국이지만, 고려인들에게 ‘우리나라’라고 여겨지는 곳은 3개로 나뉘어질 수 있다. 우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기 때문에 그들의 조국은 러시아이다. 그러나 여권상으로는 러시아, 우즈벡이나 카자흐스탄 등 자신들이 사는 나라일 수 있다.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현재까지 대한민국이거나 북한이다. 정치가 사람들을 나누고, 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분들과 우리는 같은 고려사람이다.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주요 도시에서 거주하는 고려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가 마치 그 시대의 상인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크로드는 서양과 동양이 만나고 교류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통해 주로 운송된 상품이 비단이었기에 그 길을 실크로드라고 했을 테지만, 분명 비단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건과 문화가 서로 서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사막의 오아시스였을 각각의 도시에서 목을 축이고, 거대한 모스크에서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이야기를 전하며, 비단을 비롯한 물건들을 좋은 가격에 팔고 다음 도시가 어떨지 꿈꾸었을 것이다. 처음 길을 나선 대상들은 새로운 도시를 만나는 희열에 가득차 있었을 것이고, 경험 많은 카라반은 지난번에 왔던 도시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장사 수완을 발휘했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 속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들이 살아서 숨쉬었을 테지만 지금 이곳 사마르칸트에서 카라반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의학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한의사들과 그 일행들의 행렬이 눈에 띌 것이다. 우리에게는 실크로드가 한의학로드이며, 우리의 목표는 보다 많은 도시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의학을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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