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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7일 (월)

有口無言

有口無言

2153-17-1













2013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한국한의학연구원에 대만의 중의계 대표들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원장 접견실에서 한창 환담을 나누던 중에 대만의 시춘췐 박사가 갑자기 울컥하면서 잠시 자리를 벗어나는 바람에 좌중 모두 당황했었다.



그는 현재 대만 중의계에서 정책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야기 가운데 그는 한의학연구원의 성장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한의학연구원이 대만의 국립중의약연구소보다 한참 뒤에 설립되었는데 지금 질적 양적으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한 비결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의 한의학연구원이 있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한국 한의사들의 단합된 투쟁과 특히 전국 한의대 학생들의 집단 유급이라는 희생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는 재차 묻더니만 갑자기 감정이 출렁였던 것이다.



기억을 살리자면, 1996년 가을 국내 한의대학생을 대표하는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연합(전한련)이 교육부에 “한의학의 올바른 발전방안을 요구하며 등록을 거부한 한의대생에 대한 제적조치는 부당하다”며 집단 유급에 돌입했었다. 한의계 역사에 새겨진 전한련의 아픈, 그러나 자랑스러운 한 토막이다.



최근 전한련 의장을 지냈던 학생이 자퇴하면서 남긴 글이 ‘청년의사’에 실리는 등 항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의대 자퇴생이 쓰는 한의대’라는 글을 올리고 자퇴를 한 이유가 한의대에서 가르치는 비상식적이고 사이비적인 교육내용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사이비 교수를 규정하자면 ‘비상식적 내용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인데 한의학의 정수(精髓)인양 가르치고 심지어 외워서 시험 치게 한다”며 “그래서 많은 학생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주고 사이비 의학을 심어주는 의료계 적폐”라 비판하고 계속해서 한의대에서 교육하고 있는 본초학, 형상의학, 방제학, 경혈학 등을 일례로 들었다.



이어 “애초에 한의대가 없었으면 대한민국 유능한 인재들이 이런 고생을 안했을 텐데… 차라리 의료일원화를 하고 기존 한의사는 재교육 및 재시험을 통해 라이선스를 갱신시키고 기존 한의대생들은 TO에 맞춰 인근 의대에 편입시키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니던 한의대를 자퇴하면서 “교수들은 각성하고 정상적인 ‘의료’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한의사도 결국 ‘의료인’이다. 이에 걸맞게 비상식을 걷어내고 ‘상식’적인 내용으로 교육하라”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학교에 붙이기도 했다.



2153-17-2한의대생 자퇴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2006년에도 경희한의대 본3학생이 무려 19페이지의 장문을 남기고 자퇴한 일이 있었다. 당시 WHO 마닐라 사무실에서 인터넷에 실린 그의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허탄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퇴의 글을 쓰는 것은 한의대와의 이혼이 아니라 아예 혼인 원천 무효 선언을 하는 것이라 했었다. 얼마나 실망하고 좌절했으면 그런 참담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을까?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결국 그의 글은 필자가 WHO를 떠나 학교로 다시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끈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다시는 그와 같은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대학을 개혁해야지라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목표하던 국제 전통의학 표준용어, 침구경혈위치 국제 표준, CPG(임상진료지침) 가이드라인, 국제 전통의학 질병사인분류(ICTM) 작업을 5년만에 마무리하고, 계속 근무하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했었다.



귀국 직후 바로 한의대 학장 임명을 받고 한의대 문과 출신 개방, 추천도서 100권 읽기, 학생 인턴제, URP(학부 학생 연구 참여 프로그램), 자가 임상 실습 프로그램, 청년 허준상 등 다양한 시도로 교육 환경을 개선시켰고, 동시에 교수들을 중심으로 교과과정 개편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었다.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서 학생들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나, 막상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작업했던 혁신적 교과과정 개편이 내용은 완성되었으나, 필자가 한의학연구원으로 간 다음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당시 모 교수가 “최 학장, 왜 사람들 힘들게 하느냐? 나 정년해서 학교 나간 뒤에나 하라”고 한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서울의대와 견주던 경희한의대의 입학성적은 서남대가 퇴출된 상황에서 전국 40여 의대 맨 끝 순위에 매겨졌다.



정부, 협회 그리고 대학은 한의계를 향도하고 그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조직과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협회나 대학이 한의계의 불편한 현실을 서로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우리 한의계의 미래는 없다. 진정한 주인 의식이 있으면 결코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정부를 우리가 직접적으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을 위하는 관점에서 올바른 안목으로 정부에 방향을 제시하고 협조하면서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주장을 관철해내야 한다.



한의계의 대표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협회는 주로 밀려드는 각종 현안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고 해결하는 등 다양하게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회장단의 정해진 임기로 말미암아 태생적으로 장기 계획과 중대 사업을 추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한의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책임은 결국 대학의 몫으로 남겨진다. 한의계에서 학문의 최후 보루이고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조직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대학의 교수들은 명예와 함께 직업상 보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단 교수가 되고나면 미래가 보장되어있는데 어찌 한의계의 냉혹한 현실이 자신에게 절실하게 다가오겠는가?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교육은 미래를 결정하고, 그 교육이 주로 대학에서 교수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교수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학 교수들이 그 분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의대 교수들은 변화의 주체로서 한의학 기초와 임상에서 학문 발전을 이루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면서 임상가에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여야 한다.



즉, 한의계 발전을 위한 선순환 구조의 원천 추동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한의대가 한의사 양성에만 급급하지 않았는가?”,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한의학 발전을 위해 실질적으로 얼마나 기여하였는가?”, “임상가에 필요한 임상 기술을 대학이 개발해서 제공해준 것이 얼마나 있는가?”, “수백 수천에 이르는 석사 박사 학위 논문을 통해 거둔 성과는 무엇인가?” 등등 오래 전부터 대학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한의계 전반에 널려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의료환경이 바뀌었는데, 고집스럽고 구태의연한 교수들의 의식 수준이 전한련 의장을 지낸 학생마저 울타리 저 밖으로 몰아낸 것은 아닌가?



지난달 출범한 한의협 최혁용 회장이 한국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와의 간담회에서 “저는 한의사가 사실상의 통합의사로서의 지식과 역량을 갖추고, 의사로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회장이 됐다. 이를 위해 교육이 선봉에 서야 한다”며 “학생들이 1차 의료 영역에서 통합의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학장님들과 제가 이 부분에서 접점이 만들어지면 이를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대해서 전진할 수 있는 팀워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의학의 의료로서의 본질과 역할 그리고 필요조건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성공적 실현을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에서 이제 한의계의 앞날에 한 가닥 희망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일까? 올해를 한의대 교육 혁신 원년의 해로 삼았으면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고 모두 내 탓이라 생각한다면 희망이 보일 것이다.



며칠 후면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국의절(國醫節) 행사 축하차 발표도 할 겸 대만을 방문한다. 또 만나게 될 시춘췐 박사에게 이번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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