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25.5℃
  • 비25.9℃
  • 흐림철원23.1℃
  • 흐림동두천23.1℃
  • 흐림파주21.8℃
  • 흐림대관령23.3℃
  • 흐림춘천26.1℃
  • 흐림백령도22.2℃
  • 비북강릉26.4℃
  • 흐림강릉27.0℃
  • 흐림동해27.7℃
  • 비서울24.5℃
  • 비인천23.1℃
  • 구름많음원주28.8℃
  • 흐림울릉도27.5℃
  • 흐림수원29.5℃
  • 구름많음영월30.3℃
  • 구름많음충주31.0℃
  • 흐림서산30.3℃
  • 구름많음울진28.5℃
  • 구름많음청주33.0℃
  • 구름많음대전32.8℃
  • 구름많음추풍령29.5℃
  • 흐림안동31.8℃
  • 구름많음상주31.3℃
  • 구름많음포항28.2℃
  • 구름많음군산33.5℃
  • 구름많음대구31.6℃
  • 구름많음전주33.8℃
  • 맑음울산30.5℃
  • 맑음창원32.1℃
  • 맑음광주32.4℃
  • 맑음부산32.9℃
  • 맑음통영33.6℃
  • 맑음목포32.0℃
  • 구름많음여수30.7℃
  • 구름많음흑산도28.4℃
  • 구름많음완도32.5℃
  • 구름많음고창33.1℃
  • 구름많음순천31.0℃
  • 천둥번개홍성(예)27.0℃
  • 구름많음31.6℃
  • 구름많음제주30.4℃
  • 맑음고산30.8℃
  • 맑음성산30.4℃
  • 구름많음서귀포31.2℃
  • 구름많음진주32.7℃
  • 흐림강화21.9℃
  • 흐림양평28.3℃
  • 구름많음이천28.9℃
  • 흐림인제24.5℃
  • 흐림홍천26.2℃
  • 흐림태백28.3℃
  • 흐림정선군
  • 구름많음제천27.9℃
  • 구름많음보은30.4℃
  • 구름많음천안31.1℃
  • 흐림보령32.2℃
  • 구름많음부여32.7℃
  • 구름많음금산32.4℃
  • 구름많음32.4℃
  • 구름많음부안33.1℃
  • 구름많음임실31.7℃
  • 구름많음정읍33.4℃
  • 맑음남원33.8℃
  • 구름많음장수31.1℃
  • 구름많음고창군32.8℃
  • 구름많음영광군32.8℃
  • 구름많음김해시31.0℃
  • 구름많음순창군32.6℃
  • 구름많음북창원33.4℃
  • 구름많음양산시32.9℃
  • 구름많음보성군33.0℃
  • 맑음강진군31.8℃
  • 맑음장흥31.7℃
  • 맑음해남31.9℃
  • 맑음고흥31.9℃
  • 구름많음의령군32.1℃
  • 구름많음함양군32.9℃
  • 구름많음광양시32.1℃
  • 구름많음진도군30.7℃
  • 흐림봉화28.3℃
  • 구름많음영주29.8℃
  • 구름많음문경30.5℃
  • 구름많음청송군33.2℃
  • 구름많음영덕29.0℃
  • 구름많음의성31.6℃
  • 구름많음구미31.4℃
  • 흐림영천30.0℃
  • 구름많음경주시31.0℃
  • 구름많음거창30.9℃
  • 구름많음합천31.2℃
  • 구름많음밀양33.3℃
  • 구름많음산청30.0℃
  • 구름많음거제30.8℃
  • 구름많음남해31.4℃
  • 구름많음32.9℃
기상청 제공

2026년 08월 22일 (토)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8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87)

근현대 중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선도한 丁福保

“中醫學의 現代化를 科學的 解釋으로부터 열자”




kni-web



근현대 中國의 丁福保(1874~1950)는 中醫學의 과학화를 위해 노력한 근현대 학자다. 소년 시절에는 家學을 이어 儒學을 연구해 吳稚暉에게서 私淑하다가 청년 시기에는 江陰南菁書院에서 공부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 귀국한 후 中醫學의 과학화에 앞장서며 日本의 醫書를 번역해 학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日本에서 本草學에 대한 연구 방법 및 성과를 모아 『中藥淺說』을 엮어내 1933년에 출판했다. 그의 本草書는 약물의 산지, 기원, 형태, 성분, 응용 등을 기록해 역대의 本草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약물의 화학성분을 밝힘으로서 중약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했다(이하 趙洪鈞의 『近代中西醫論爭史』, 安徽科學技術出版社, 1983을 참조함).

그가 연구한 분야는 다양해 6類로 분류된다. 첫째가 醫學叢書, 둘째가 文學叢書, 셋째가 進德叢書, 넷째가 佛學叢書, 다섯째가 小學叢書, 여섯째가 古泉叢書였다.

1900년 한권의 통속적 서양의학 상식을 적은 『衛生學問答』을 지었다. 1906년 정식으로 譯書公會를 조직해 1907년 말에 일본어로 돼 있는 서양의학서적을 10종 번역했다. 1909년 일본에 넘어가서 의학을 고찰했는데, 명성이 대단했다고 한다.

1914년에 이르면 일본어로 되어 있는 의학서적을 번역한 책이 68종에 다다르게 된다.



2178-28

이것들은 『丁氏醫學叢書』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출판되기도 했으며, 이 번역서들은 당시 파리와 로마에서 있었던 萬國博覽會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1910년부터 『中西醫學報』의 편집인으로 20여년간 활동했다. 이 시기가 그의 의학적 활동이 활발했던 기간으로 꼽힌다. 그는 수많은 근대의학지식을 중국에 소개해 당시 中醫界의 신학문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 줬다. 1915년 中華醫學會의 발기인이 되는 등 丁福保는 中西醫學의 회통에 대해서 많은 공헌을 했다.

그는 중의학의 비과학적 면을 비판하고 과학적 연구의 과감한 수용을 주장했다는 측면에서 중의학 과학화의 急進派에 속한다. 1939년 『國醫新聲』 創刊號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中西醫藥의 溝通에 대한 구호의 소리가 40년을 넘기고 있다. 우리들이 中西醫가 中醫科學化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40년이다. 돌이켜 보건데 아직 요원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힘이 미치지 못해서인가? …… 40년간 중국인들의 이에 대한 태도는 자주 변화해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지금은 점차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과학화라는 것은 단지 空言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적인 것에서부터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醫說은 반드시 生理, 病理의 정확한 규정을 따라야 하고, 方劑는 모름지기 理化學, 生物學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 中醫界는 理論 方面에서 傳染病學說, 內分泌學說, 비타민說 등을 받아들여야 하고, 치료 방면에서는 각종 특효요법을 채용해야 할 것이다. …… 순서 있게 발전해 나간다면 40년 후 中西醫學은 진실로 회통되는 날이 올 것이니, 우리들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들 虛言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丁福保의 中醫學 科學化에 대한 구호는 中醫學史에서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中西溝通을 위해서는 반드시 근대 서양의학의 학설로 중의학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는 ‘新中醫派’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