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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17일 (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8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87)

근현대 중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선도한 丁福保

“中醫學의 現代化를 科學的 解釋으로부터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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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中國의 丁福保(1874~1950)는 中醫學의 과학화를 위해 노력한 근현대 학자다. 소년 시절에는 家學을 이어 儒學을 연구해 吳稚暉에게서 私淑하다가 청년 시기에는 江陰南菁書院에서 공부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 귀국한 후 中醫學의 과학화에 앞장서며 日本의 醫書를 번역해 학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日本에서 本草學에 대한 연구 방법 및 성과를 모아 『中藥淺說』을 엮어내 1933년에 출판했다. 그의 本草書는 약물의 산지, 기원, 형태, 성분, 응용 등을 기록해 역대의 本草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약물의 화학성분을 밝힘으로서 중약의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했다(이하 趙洪鈞의 『近代中西醫論爭史』, 安徽科學技術出版社, 1983을 참조함).

그가 연구한 분야는 다양해 6類로 분류된다. 첫째가 醫學叢書, 둘째가 文學叢書, 셋째가 進德叢書, 넷째가 佛學叢書, 다섯째가 小學叢書, 여섯째가 古泉叢書였다.

1900년 한권의 통속적 서양의학 상식을 적은 『衛生學問答』을 지었다. 1906년 정식으로 譯書公會를 조직해 1907년 말에 일본어로 돼 있는 서양의학서적을 10종 번역했다. 1909년 일본에 넘어가서 의학을 고찰했는데, 명성이 대단했다고 한다.

1914년에 이르면 일본어로 되어 있는 의학서적을 번역한 책이 68종에 다다르게 된다.



2178-28

이것들은 『丁氏醫學叢書』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출판되기도 했으며, 이 번역서들은 당시 파리와 로마에서 있었던 萬國博覽會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1910년부터 『中西醫學報』의 편집인으로 20여년간 활동했다. 이 시기가 그의 의학적 활동이 활발했던 기간으로 꼽힌다. 그는 수많은 근대의학지식을 중국에 소개해 당시 中醫界의 신학문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 줬다. 1915년 中華醫學會의 발기인이 되는 등 丁福保는 中西醫學의 회통에 대해서 많은 공헌을 했다.

그는 중의학의 비과학적 면을 비판하고 과학적 연구의 과감한 수용을 주장했다는 측면에서 중의학 과학화의 急進派에 속한다. 1939년 『國醫新聲』 創刊號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中西醫藥의 溝通에 대한 구호의 소리가 40년을 넘기고 있다. 우리들이 中西醫가 中醫科學化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40년이다. 돌이켜 보건데 아직 요원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힘이 미치지 못해서인가? …… 40년간 중국인들의 이에 대한 태도는 자주 변화해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지금은 점차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른바 과학화라는 것은 단지 空言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적인 것에서부터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醫說은 반드시 生理, 病理의 정확한 규정을 따라야 하고, 方劑는 모름지기 理化學, 生物學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 中醫界는 理論 方面에서 傳染病學說, 內分泌學說, 비타민說 등을 받아들여야 하고, 치료 방면에서는 각종 특효요법을 채용해야 할 것이다. …… 순서 있게 발전해 나간다면 40년 후 中西醫學은 진실로 회통되는 날이 올 것이니, 우리들이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들 虛言이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丁福保의 中醫學 科學化에 대한 구호는 中醫學史에서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中西溝通을 위해서는 반드시 근대 서양의학의 학설로 중의학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는 ‘新中醫派’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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