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최근 ‘알기 쉬운 임상연구 입문 가이드’를 발간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김태훈 경희대한방병원 한의약임상시험센터 교수로부터 출판 계기 등을 들어봤다.
Q. 책을 저술하게 된 계기는?
“전공의였던 200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근거중심의학’이라는 단어를 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임상의학을 실천하기 위해 의료기술의 근거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단어가 주는 뉘앙스만을 가지고 ‘근거중심의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분야에 관한 지식을 쌓고 연구를 수행하면서,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는 ‘근거’라는 것이 임상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대 임상의학의 주류로 자리잡은 근거중심의학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임상연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계획되고 수행되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근거중심의학과 임상연구에 대해서는 학부교육과정에서 다루고는 있지만, 중재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연구결과 위주로 언급하고 있어, 근거중심의학의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사고체계와 비뚤림, 임상연구의 구조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또한 근거중심의학을 한의 임상에서 적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내용, 곧 임상에서 필요한 근거(연구)의 검색과 찾은 근거를 임상에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평가하고 임상에 적용하는 능력을 다루는 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지난 2019년부터 경희한의대에서 ‘의학연구입문’을 개설하고 강의하고 있다. 이 책은 이 강의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정리한 임상연구 관련 개론서라고 생각하면 되며, 임상연구와 근거중심의학에 대해 기초적인 부분을 알고 싶은 한의사와 학부생을 대상으로 집필했다.”
Q. 독자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몇년 전부터 학계와 정부 주도로 한의학 분야의 임상진료지침들이 양산되고 있으며, 이것들이 향후 수가체계나 보험 등 한의계의 의료정책에 반영돼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상황에서, ‘근거’와 임상연구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은 임상의라고 할지라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한의 임상에서도 내가 필요로 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임상을 실천하는 능력을 갖춘 한의사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Q. 한의학에서 근거중심의학과 임상연구가 갖는 의미는?
“한의학은 임상에서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축적된 지식을 근간으로 발전돼 왔다. 근거중심의학을 구성하는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명제는 “근거에는 위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상에서는 다양한 근거자료를 활용해 진료하고, 문제들을 해결한다. 그런데 이들 근거는 출처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
즉 임상의들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동물실험 연구결과보다 논문으로 발표된 환자에 대한 증례보고가 더 신뢰할 만하며,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들 자료를 정리해 발표한 단면연구보다는 잘 설계돼 충분한 연구대상자를 모집하여 수행된 무작위대조군연구의 결과가 임상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더 믿을 만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사한 무작위대조군연구들의 결과를 통합해 중재의 효과에 대한 보다 정밀한 추정치를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이기 때문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거중심의학에서 주장하는 ‘근거의 위계’다. 근거중심의학이 주류로 자리잡은 지금, 한의계에서도 기존에 활용되고 있던 중재들의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익적 성격의 임상연구가 적극적으로 수행되고, 이것들이 임상진료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 임상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존에 보험으로 등재되지 않은 중재들의 활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정부나 의료소비자들이 한의치료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한의시장을 확대하는 데도 임상연구와 근거중심의학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Q. 개원의들이 실제 임상연구에 접근하기는 어렵다.
“모든 임상의가 직접 임상연구를 수행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임상연구와 근거중심의학의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이해하고, 적절하게 임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또한 간접적으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 요즘에는 최종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연구의 트랜드인 만큼 임상연구의 기획 단계부터 연구결과를 보고하고, 유통하는 과정에 임상의들이 참여해 연구를 진행하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담아내게 된다면, 활용도가 높은 살아있는 연구가 될 것이다.
특히 임상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 중재가 있으면, 임상연구를 수행하는 전문연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의사를 전달, 잘 설계된 임상연구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향후 한의학에서의 임상연구·근거중심의학을 전망한다면?
“근거중심의학이 주류가 된 현대사회에서, 한의계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임상연구를 활성화하고, 한의계 내부에서 근거중심의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한의계에는 유효한 효과를 보이면서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는 다양한 중재들이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근거를 사회에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불 임상연구는 활성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방증하듯 현재 한의계 연구과제의 큰 부분을 임상연구가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신약 개발과정 중 수행되는 제약회사가 비용을 대는 임상시험과 비교했을 때 한의계 임상연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출연의 공익적 임상연구는 재원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의학 임상연구의 활성화에 더 큰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임상연구와 체계적문헌고찰을 수행하는 전문연구자다.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이 완치된 사람들 중 피로와 건망을 오랫동안 호소하는 후유증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보중익기탕제제 등 한약제제를 이용한 임상연구를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의계에 양질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며, 더불어 근거중심의학과 임상연구를 임상의와 학생들에게 알리는 데에도 노력을 경주할 생각이다. 이미 한의계 내부의 전문연구자들의 역량은 지난 10여년간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고 자평한다. 이제는 임상의 차원에서 근거중심의학의 실천을 위한 지식을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임상의들이 해볼 수 있는 증례보고논문작성법 같은 강의도 지속적으로 진행해볼 예정이다.”
Q. 남기고 싶은 말은?
“이 책은 근거중심의학이 무엇인지, 임상연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첫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개론서다. 한의계에서 많이 알려져 책을 발간한 당초의 목표대로 많이 활용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