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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09)2005년 경희대 한의대 류기원 교수께서 퇴임하면서 의사학교실에 기증한 자료 가운데 1991년 간행된 『醫林』 200호가 눈에 들어왔다. 『醫林』은 裵元植 先生이 1954년 11월 창간한 한의학 학술잡지로, 2000년대 중반무렵까지 간행되다가 간행을 중단하고 있다. 『醫林』 200호의 卷頭言은 발행인 裵元植이 ‘200호 기념 특집호를 발간하면서’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다. 이 글에서 1954년 『醫林』의 창간목표가 다음과 같았다고 裵元植 先生이 회고하고 있다. “과학화와 현대화를 위하여 硏究練磨하는 학자나 성실한 臨床家들에게 변변치 못하나마 그 연구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고 널리 세상에 공개하여 비평연구의 의욕을 고무하며, 신진학도들의 지도와 일반 한의약 애호대중의 공정친절한 안내자가 됨과 동시에 서의학과 脣齒相補하여 상호이해를 깊이 하고, 激勵竝進함으로써 仁術의 眞價를 발휘케 하여 국민보건과 인류생활에 공헌케 함을 본지의 중요 사명으로 하였다.” 이 잡지가 창간됨으로써 1955년 日本의 『漢方의 臨床』 誌와 국제교류를 시작하게 되었고, 1961년 제12회 東洋醫學學術 京都大會에 裵元植 先生이 처음으로 초청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대만, 동남아시아 각국, 미주 각지, 캐나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영국 등 전통의학계와 학술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1983년부터는 중화인민공화국, 불가리아, 체코, 루마니아, 소련 등 공산진영과 학술적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이 교류의 중심에 『醫林』이 있었다. 200호 기념 특집호에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각국의 축사와 학술논문들로 가득차 있다. 축사를 쓴 인물은 裵元植, 安鶴洙, 矢數道明, 李範成, 室賀昭三, 金東漢, 馬光亞, 松田邦夫, 戶部宗七郞, 徐文敎, 韓昇璉, 車相賢, 吉元昭治, 鄭龍雲, 崔泰燮, 金松哲 등이다. 그 이후로 50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논문의 주제는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 동서의학의 협력방안, 한의학적 진단, 임상증례, 치료법, 과학화의 방법론, 각종 질환에 대한 이해 등이다. 이 논문 가운데 卞廷煥(당시 대구 제한한방병원 병원장)의 ‘한·양방 통합론에 관한 고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한방과 양방은 서로 장단점이 있는 미완성 의학이므로 먼저 진료의 통합이 이뤄져야 국민의 불치병, 난치병을 없애야 하는데, 이런 진료통합은 거절하면서 한의과대학을 양의과대학에 흡수 합병하겠다는 대한의학협회의 통합방안은 꼭 일제가 을사보호조약을 앞세워 한국을 집어삼킨 합방방식과 거의 같은 合邦이다. 말이 한·양방 통합이지, 세계 제일의 민족의학을 송두리째 말살시키려는 서구의학에 영합하는 반민족적 범죄행위와 같은 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유구한 전통과 빛나는 업적의 우리 한의학이 지금 아무리 백인종 세상이라 하지만 그렇게 쉽게 양의학에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고, 또 국민이 좌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겉보기에는 우리 의료계가 양의사 판인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사회 가정마다, 집집마다 한의학의 전통이 내려오고 있으며, 전 민족의 핏속에는 한의학의 맥박이 고동치고 있을 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전통의학, 민속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이 통계조사로도 밝혀지고 있다. ……한방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는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뿌리깊고 광범위하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한·양방 통합방식을 채택해야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의료일원화라는 미명 아래 양방 일변도의 한의 말살책 같은 방식을 추진하게 되면 국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보사부 당국 관계자는 이 점을 유의해 주기 바란다.” -
소아 치과 진료에서 침 치료 국소마취 과정의 통증 감소에 효과[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의 ‘근거중심한의약 데이터베이스’ 논문 중 주목할 만한 임상논문을 소개한다. ◇ KMCRIC 제목 소아 치과 진료에서 침 치료가 국소마취 과정의 통증 및 자율신경 증상을 감소시킴. ◇ 서지사항 Usichenko TI, Wolters P, Anders EF, Splieth C. Acupuncture Reduces Pain and Autonomic Distress During Injection of Local Anesthetic in Children - A Pragmatic Crossover Investigation. Clin J Pain. 2015 Feb 25. Epub ahead of print. ◇ 연구설계 2-armed, randomized, analyst-blinded, crossover. ◇ 연구목적 합곡혈 침 치료가 소아의 치과 진료에서 국소마취 시의 통증과 불편감 감소에 효과적인지를 평가하고자 함. ◇ 질환 및 연구대상 치과 진료가 최소 2회 이상 예정되어 있으며 국소마취가 필요한 어린이. ◇ 시험군중재 국소마취 전 환아의 양측 합곡에 피내침 시술 후 국소마취 동안 부모가 피내침 부위를 마사지해서 자극을 주도록 함. ◇ 대조군중재 침 치료 없이 동일한 국소마취를 시행. ◇ 평가지표 1차 평가변수로 국소마취주사 시 통증 정도를 평가하였으며, 그 외 2차 평가변수로 부모 및 치과의사가 평가한 통증 강도, 정신운동초조(psychomotor agitation), 심박수, 환아와 부모의 만족도 등을 평가했다. ◇ 주요결과 환아가 평가한 국소마취주사 시 통증 정도는 침 치료를 병행한 군에서는 2.3(95% CI: 1.5~3.1), 침 치료 없이 기존 마취를 시행한 군에서는 3.9(95% CI: 3.0~4.7)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를 보였다. ◇ 저자결론 합곡의 피내침 치료는 어린이의 치과 진료 시 국소마취 과정에서의 통증과 자율신경 증상의 감소에 효과적이며, 환아와 보호자 모두에서 유의하게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 KMCRIC 비평 치과 진료는 성인도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어린이의 경우에는 특히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되는 통증 등의 경험이 그 증상 자체의 문제 외에도 이후 치과 진료 시의 불안과 기피를 일으키는 기억이 되기도 하며, 이는 부모와 진료의에게도 부담을 주는 일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합곡혈의 피내침 치료가 치과 진료에서 국소마취 시 통증 및 심박수, 정신운동초조, 만족도 등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했다. 본 연구에서는 환아가 직접 평가한 통증 강도에서 침 치료군이 침 치료 없이 마취한 경우에 비해 41%의 감소를 보였으며 심박수도 낮게 유지되었고, 통증 관련 침 치료 만족도도 유의하게 높았다. 다만 환아가 직접 평가한 통증 강도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감소를 보인데 반해, 부모와 진료의가 평가한 통증 강도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통증의 평가에 있어 환자 자신의 평가가 가장 민감도가 높은 평가 방법임을 제시한다고 서술하고 있고, 41%의 통증 감소율은 임상적으로도 유의한 차이이며, 국소마취주사를 시행할 때뿐만 아니라 이후 치료과정에서도 통증 강도가 평균이 모두 3 이하였음을 볼 때 삶의 질의 감소를 초래하지 않는 임상적, 통계적으로 유의한 호전임을 서술했다. 또한, 본 연구의 제한점 중 하나로 플라시보 대조군의 부재를 언급하고 있는데, 디자인에서는 어린이에게 있어 다른 국소마취 상황이나 여러 다양한 진료 및 치료 과정에서의 통증 및 불안 등에 대한 침 치료의 적용성을 좀 더 넓히기 위해 Simple하고 Practical 한 디자인을 적용하였다고 말하면서, 향후 다양한 다른 소아과 진료 과정에서의 통증과 불안 등에 적용 가능성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함을 서술했다. 소아의 임상 연구에 있어 안정성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본 연구에서는 어떤 부작용도 없었음을 보고했다. 저자(Usichenko et al.)들은 기존에 수술과 관련된 통증 및 마취제 사용량 감소 등 관련 증상들에 대한 침 치료의 효과에 대한 임상연구를 진행하여 유의한 효과가 있음을 보고한 바 있다[1-3]. 이미 수술 후 오심, 구토(post-operative nausea and vomiting, PONV)를 포함해 수술 및 다양한 시술에 있어 통증 및 그 외 다양한 수반 증상들에서 침 치료의 효과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수술 전후의 관리에 있어 한의학적 치료의 유기적인 병행에 관한 근거들이 구축된다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참고문헌 [1] Wetzel B, Pavlovic D, Kuse R, Gibb A, Merk H, Lehmann C, Wendt M, Usichenko TI. The effect of auricular acupuncture on fentanyl requirement during hip arthroplasty: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Clin J Pain. 2011;27(3):262-7.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21346689 [2] Usichenko TI, Dinse M, Lysenyuk VP, Wendt M, Pavlovic D, Lehmann C. Auricular acupuncture reduces intraoperative fentanyl requirement during hip arthroplasty--a randomized double-blinded study. Acupunct Electrother Res. 2006;31(3-4):213-21.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17608061 [3] Usichenko TI, Kuchling S, Witstruck T, Pavlovic D, Zach M, Hofer A, Merk H, Lehmann C, Wendt M. Auricular acupuncture for pain relief after ambulatory knee surgery: a randomized trial. CMAJ. 2007;176(2):179-83.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17224599 ◇ KMCRIC 링크 http://www.kmcric.com/database/ebm_result_detail?cat=RCT&access=R201502023 -
KOMSTA 2019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 참가강시영 학생 (우석대 한의대 본과 1학년) 우리는 한민족, 고려인들을 만나다 “드리라자 브래디, 포스리애드이(식후, 하루에 3번 드세요)”, “스바시바(감사합니다)”. 이번 해외의료봉사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말이다. 머리색, 피부색, 눈동자마저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 입에서는 곧장 한국말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러시아어가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약재 팀에서 봉사하며 사용했던 몇몇 러시아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주 떠오르곤 한다. 월드프렌즈코리아-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이하 WFK-KOMSTA) 단원으로 지난 달 11일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그곳에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고려인이 존재한다. 어렸을 적부터 역사에 관심 많았다고 자부한 나조차도 생각해보니 고려인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없었고, 잘 몰랐다. 봉사를 다녀온 지금 시점에서 그렇다할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고려인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고, 그들의 삶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해외의료봉사가 단순히 의료 지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시간들이었다. 우리 팀은 처음 우즈베키스탄으로 파견을 나간 후, 더 많은 환자를 돌보길 원했다. 그렇게 국립병원과 고려인마을 진료소로 팀을 나눴고 나는 후자에 속해 고려인들을 만나게 됐다. 진료실은 굉장히 덥고 열악했으며, 10명 남짓의 인원이 하루 150명 정도의 환자를 받아야했다. 환자들의 대부분이 한국인과 같은 머리색, 피부색은 물론 눈동자마저도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처럼 보였던 그들은 내가 처음 만난 고려인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했지만 이질감보다 내 머릿속에는 친근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짧은 러시아어로 소통하려 노력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약재 팀을 담당하며 간단한 러시아어를 사용했더니, 어르신들은 “스바시바”가 아닌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줬다. 우린 같은 피가 흐르는 한민족이다. 고려인은 조선인도 한국인도 될 수 없었던 그들에게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단어였다. 머릿속에 띵한 울림이 생겼고, 가슴속에는 부끄러움이 치솟았다. 내가 그들을 외국인으로 혹은 타지 사람으로 국한시킨 것 같아 매우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심껏 그들의 아픔을 알아주고, 필요한 약을 전달해 드리는 일이었다. 그들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줬고, 나 역시 다른 도움이 필요한지 세심하게 그들을 살폈다. “신성한 영혼으로 살아가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어찌 보면 아등바등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어서 아닐까 싶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오며 욕심에 대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먼 타국에 가서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주고 돌아오고 싶었다. 점심시간이 돼 밥을 먹기 위해 피가 묻은 진료 베드를 닦았다. 원장님들과 봉사자들도 모두 지쳐 차가운 바닥 가리지 않고 쪽잠을 자기도 했다. 진료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고요함을 유지했다. 이처럼 열악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누구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감사, 존중 그리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영근 원장님은 출근을 하자마자 직접 손수건으로 베드를 닦으며 환자 맞을 준비를 했고, 이용규 원장님도 진료 후, 모든 환자들을 꼬옥 안아주며 괜찮을 거라고, 와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주영 원장님은 환자 모두를 가족을 대하듯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2019년 여름 5000km 떨어진 타국에서 대한민국의 한 청년은 어떤 醫者(의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신성한 영혼으로 살아가자…’ 못내 아쉬웠던 해외의료봉사, 다음 무대 기약하며… 죄송스러웠다. 어리숙한 한의대생 대신 유능한 한의사가 왔다면 더 많은 환자가 충분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의욕만 앞섰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파견단장님께서 공연기획팀장을 권유했고, <아리랑, 한의랑>이라는 주제로 플래시몹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 흥겨우면서도 소소한 재미를 줬지만 한의학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해 아쉬웠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족하고, 아쉬웠던 점들이 많이 생각난다. 동시에 마음 깊숙이 다음 무대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았다. 나 스스로 부족한 마음은 갖고 있지만 하고 싶고,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된다. 이번 해외의료 봉사를 통해 나열하지 못할 만큼의 배움, 형용하지 못할 만큼 느낀 감정이 많다. ‘이런 기회가 감히 나에게 주어진 것일까?’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어깨가 무겁다. 이를 견뎌내겠다. 다음 기회에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나의 에너지를 더 쏟아 부을 것이다. -
회비 완납자에게 아콤몰 구매 마일리지 ‘2배’ 제공최근 개최된 대한한의사협회 회원복지위원회(위원장 방대건)에서는 회비완납자가 한의협 회원 전용 복지몰인 아콤몰(www.akommall.com)에서 물품 구매시 기존 제공 마일리지(1%)에 1%보너스 마일리지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론칭 이래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회원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는 아콤몰이 이번 마일리지 확대로 인해 회비완납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혜택을 주는 동시에 아콤몰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지에서는 한의협으로부터 아콤몰 홈페이지의 개발과 운영을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는 ㈜와이드라인 우주범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우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Q. ㈜와이드라인은? A. ㈜와이드라인은 2015년도 개인정보보호 솔루션 업무협약을 통하여 대한한의사협회와 인연이 시작되어 매년 한의원 개인정보자율점검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대한한의사협회 복지몰(아콤몰)을 위탁받아 쇼핑몰 개발과 운영관리 등을 맡고 있다. Q. 아콤몰에 대해 소개한다면? A. 아콤몰은 대한한의사협회 회원 복지를 위한 회원전용몰로서 한의원관련 소모품과 의료기기등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트 개편으로 회원들을 위한 금융몰과 회원참여광장, 정책쇼핑몰을 신설하여 회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와이드라인에서도 우수한 제품과 개발업체를 발굴하여 아콤몰에 소개하고 있다. Q. 협회에서 직접 복지몰을 운영하는 것의 장·단점은? A. 어려운 점을 꼽자면, 협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이기 때문에 타 사이트 대비 가격이 싸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유통질서를 최대한 지켜주면서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판매자와 구매자의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긍정적인 면은 기술력이 좋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판매하지만, 홍보 부족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회사들을 직접 발굴하여 회원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Q. 아콤몰은 어떻게 성장해왔나? A. 아콤몰 초기에는 오픈마켓 형식으로 운영되어 오다 보니 입점업체들의 자사 사이트보다 아콤몰에 비싸게 판매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입점 업체들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꾸준한 개선이 이뤄졌으며, 판매가격에 대한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와이드라인에서 일부 상품에 대해 직접 매입하여 판매를 하면서 전체가격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또한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 회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록 마케팅 역시 꾸준히 해왔다. 초창기에 비하면 현재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말씀드릴 수 있다. Q. 최근 회비완납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혜택이 주어진다고 들었다. A. 대한한의사협회의 복지위원회에서 협회비 완납회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 이에 회비완납 회원들에게는 구매시 기존 1% 적립에서 그 두 배인 2% 적립을 해주자는 결론에 도달함에 따라 현재 회비완납 회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아콤몰 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를 통하여 적게나마 회원들의 한의원 운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아콤몰 역시 회비완납회원들의 구매력 증가로 매출이 증대를 예상하고 있다. Q. 아콤몰의 발전을 위한 향후 계획은? A. 회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상품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협회의 정책과 동반된 제품들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운영한다면 보다 많은 회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Q. 현재 준비 중인 이벤트는? A. 양방쪽에는 잘 알려진 회사의 물리치료 의료기기 회사를 아콤몰에 런칭하여 해당 업체의 제품들을 매달 하나의 제품씩 특가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Q. 한의사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 우리의 자랑스런 한의학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시는 회원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아콤몰 역시 일선 회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더욱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
“자유는 통제를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최근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상세하게 다룬 책이 출간돼 화제다.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은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행복에너지)’은 북한을 벗어났다 잡히기를 반복한 故한원채(1943~2000) 씨가 중국과 북한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직접 겪었던 일과 지옥 속에 갇혀 사는 북한 주민들의 결핍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낡고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원본 종이에 수놓은 그의 글씨가 북한의 부조리를 말하려는 듯 곧게 뻗쳐 있었다. 그 올곧은 이야기는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의 둘째 딸 한봉희(백년한의원) 원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한 원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옥과도 같은 곳, 내 머릿속에는 그런 이미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며 “자유는 통제를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통제만이 존재하는 북한에서 벗어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북한의 저질스런 실체를 밝히기 위해 앞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Q. 어린시절, 북한에서의 삶은 어땠는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에서 인텔리에 속했다. 아버지는 큰 펄프회사 기계설계사였고, 어머니는 철도국병원 내과의사셨다. 어렸기 때문에 당국의 ‘통제’를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단지 부모님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었다. 세상을 잘 알지 못 했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Q. 그 당시 꿈이 있었다면? 대학에 진학해 이제껏 교육 받았던 지식을 기반으로 내 능력을 펼쳐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내 주위는 온통 ‘통제’로 가득했다. 다시 한 번 북한에서의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통제’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소름끼친다. 나는 ‘북한이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거짓된 역사를 공부했다. 역사서에는 백년에 한 명 나온다는 세계 위인으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로 가득했다. 그것도 모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대학만 가면 꿈을 이룰 수 있을거야’ 생각했지만 북한 사회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을 졸업한 뒤 졸업장을 들고 실습을 나가려했지만 공장과 기업들은 모두 멈춰있는 상태여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당시 사회주의는 무너지고 있었고, 난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가족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김일성·김정일의 노예로 살지 말자”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은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언젠가는 이런 악행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98년 4월 우리가족은 두만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Q.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98년 4월에 먼저 탈북했고, 나머지 가족은 8월에 두만강을 건넜다. 얼음이 녹아 강물에 빠지기를 수차례, 다행히 강물 바닥에 발이 닿았고 무사히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다. 두만강이 얼어있는 겨울이 탈북하기 가장 수월하지만 어느 누구도 특정 시기에 탈북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진 않는다. 이는 날씨에 대한 정보도 없을뿐더러 두만강 주위에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국경경비대가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던 국경경비대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들은 돈만 받으면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준다. 그 날도 국경경비대에게 돈(집을 팔아 얻은)을 지불하고 약속한 시간에 나타난 그들을 따라서 중국의 연길로 이동할 수 있었다. 주위에서는 “북한을 탈출했으니 안전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화룡(허룽), 연길(옌지), 연변(옌볜) 등 탈북자들이 거쳐가는 이 지역은 조선족들이 탈북자를 돕기도 하지만 반대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걸음걸이만 보고도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금전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공안에게 넘겨버리기 일쑤다. Q. 탈북한 지 3년이 지나서야 한국 땅을 밟았다. 중국에 숨어 지내면서 KBS에 귀순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햇볕정책을 펼치고 있어 탈북자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이 없었다. 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요청도 했지만 허사였다. 북한 보위부에서 현상금을 걸고 추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99년 8월 나 그리고 아버지와 남동생이 공안에게 붙잡혔다. 북송된 아버지와 남동생은 다시 한 번 ‘지옥’에서 탈출했다. 아버지는 그 때 3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겪은 북한 감옥의 실상을 낱낱이 글로 적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북한이 저질러온 악행들에 대해 누구보다 상세하게 쓰는 데 성공했다. 1주일 만에 200자 원고지 1000매 분량을 쓰셨다. 그러나 한국으로 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대련(다롄)에서 다시 체포돼 북송됐고, 고문에 의해 돌아가신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됐다. 책은 아버지가 직접 겪고 느낀 북한의 악랄하고 부끄러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Q. 한국에서의 삶, 시작은 어땠는가? ‘지옥’에서 탈출하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천공항에 내려 바로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일주일을 국정원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조사를 받았다. 얼마 후부터 운동도 하고, 음식도 먹고, 시내도 거닐 수 있는 시간도 주더라. 한강 부근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고층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득 ‘북한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국정원 조사가 끝나고 하나원(탈북민을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기관)에서 2개월간 사회적응교육을 받았다. 하나원 과정을 수료하고, 배정받은 임대 아파트와 정착금을 받아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Q.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의대에 진학했다. 그렇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생각보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먼저 탈북해 정착한 선배가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식이 있어야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줬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수도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을 걸고 죽어라 공부했다. 마침내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통해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상지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함께 공부했던 그 선배는 지금의 남편이 됐고,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다. Q. 어머니가 내과의사셨는데 한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어머니가 근무했던 병원에서 마주했던 환자들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빨간 피를 흘리는 환자들을 떠올려보니 두려운 마음이 컸고, 의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또 다른 이유는 밤낮 가리지 않고 왕진을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한의학을 선택했던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서양의학의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다. 최근 영국에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약을 사용하지 않고 침 하나만으로 환자들을 치료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진단장비가 열악해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장소불문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의학이 한의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다시 태어나도 한의사가 돼 환자들을 돌볼 것이다. 특히 북한의 실체를 전 세계에 알리려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영어판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지옥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
한의임상과 혈액 검사 ①“몸의 정밀한 정보 제공해 주는 혈액검사는 1차 진료 현장서 필수” “50세 후반 남자 환자인데, 원래 알콜성 간질환이 있으신데, 갑자기 우측 주관절 이후로 불수의적인 진전 증상이 나타나는데… 입원 치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리해 주세요.” 내과 수련의 1년차 초반일 때 환자였다. 담당 교수께서 입원 환자에 대해 전화를 주었다. 평소 알콜성 간질환으로 외래 치료와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이었는데, 우측 주관절 이후로 진전 증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CVA가 의심돼 입원 치료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단순 알콜로 인한 진전이라고 보기에는 불수의적이고, 그 증상이 소발작 양상에 버금갈 만큼 정도가 심했다. 내과 1년차 초반이라, 많이 본 환자가 CVA 환자였으므로, 당연히 CT 촬영을 했다. 하지만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외로 CT 검사는 양호했다. 순간 ‘이건 뭐지? 간질발작인가? 소발작? 뇌파검사해야 하나?’ 라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CVA에서 뇌경색 등의 이상이 발견되면 써야 할 계획했던 치료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몇 시간 뒤에 혈액검사 수치가 나왔다. 예상대로 간기능 검사는 높았다. AST, ALT가 정상치 보다 모두 2배 가까이 높았고, r-GT 또한 100 IU/L 이상으로 높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검사 수치가 있었다. 바로 혈당이었다. BST(Blood Sugar Test) 500mg/dL(기억은 희미하지만 처음 혈당체크기로 체크하였을 때는 unchecable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환자 우측 팔의 진전은 고혈당이지만, 근육 자체가 포도당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생각됐다. 원래 과거력으로 당뇨가 없던 환자였다.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hyperosmolar hyperglycemic syndrome; HHS)1)로 보고 1일 2L 이상의 수액과 인슐린 처치 및 간기능 이상으로 生肝健脾湯을 투여했다. 그러자 2일 만에 우측 손에 발생하던 불수의적인 진전은 소실되었다. 일주일간 입원하면서 당뇨에 대한 교육과 함께 인슐린 주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동의보감 내상편[酒毒變爲諸病]2)에 근거하여 분석하자면 주상으로 인한 탈수와 당뇨가 겹처서 생긴 증례에 해당되며, 이를 혈액 검사를 통해 명확하게 진단 확인할 수 있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소변 이상은 탈수로 나타나고, 알코올은 당뇨병 자체를 악화시킨다. 술은 영양소가 없는 고열량식품으로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인슐린분비를 요구하게 되어 췌장의 베타세포에 많은 부담을 주고, 체내에서 알코올은 지방산의 합성을 증가시켜서 인슐린저항성을 유발한다, 또한 과도한 알코올은 간세포에 지방을 축적시키고 알코올의 대사산물은 간세포를 손상시키게 된다. 술을 자주 마시게 되면 손상된 간세포가 재생될 시간이 없고 체내의 영양 부족 상태를 초래하여 간손상을 유발하게 된다.(주상이 결국 알콜성 간질환 뿐만 아니라 당뇨 즉 소갈까지도 발생시킨다) 이런 상태에서 근육의 당 이용률이 저하되면서 풍증(風症)의 진전이 동반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여러 웨어러블 기기로 심박수 및 혈압, 체온 등을 수시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세계에서 몸의 정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혈액검사는 1차 진료 현장에서는 필수적이다. 인체가 주는 가장 일차적인 정보는 물론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과 같은 바이탈 체크도 필수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특히 의료 현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혈액검사를 이용한다면, 조금더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고, 치료의 방향성이 더욱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참 조] 1)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hyperosmolar hyperglycemic syndrome; HHS)1) -당뇨병성 케톤산혈증 (diabetic ketoacidosis, DKA)과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 (hyperosmolar hyperglycemic state, HHS)는 인슐린이 부족한 상태에서 고혈당에 의한 세포외액 감소와 이에 따르는 전해질 이상 및 케톤산혈증 (DKA의 경우)이 특징인 급성 합병증이다. 감염, 인슐린 중단, 심근경색 등이 종종 선행인자 이므로 이들을 꼭 확인해야 한다. -DKA의 경우 인슐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1형 당뇨병 환자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2형 당뇨병 환자에게서는 HHS가 주로 나타난다. 2) 동의보감 내상편 [酒毒變爲諸病] 2) 醇酒之性大熱有大毒淸香美味旣適於口行氣和血亦宜於體由是飮者不自覺其過於多也不知酒性 喜升氣必隨之痰鬱於上尿澁於下肺受賊邪金體必燥恣飮寒凉其熱內鬱肺氣得熱必大傷耗其始也 病淺或嘔吐或自汗或瘡痍或鼻擔或自泄或心脾痛尙可發散而去之及其久而病深則爲消渴爲黃疸 爲肺浔爲內痔爲鼓脹爲失明爲哮喘爲勞嗽爲癲癎爲難明之疾嬶非具眼未易處治可不謹乎《丹心》 좋은 술의 성질은 열하고 독하다. 그러나 향기롭고 맛이 좋아서 입에 맞고 기(氣)를 돌게 하며 혈(血)을 고르게 하여 적당히 마시는 사람은 지나친 것을 알지 못한다. 술의 성질은 올라가는 경향을 가지며, 기는 그것을 따라 올라간다. 기가 올라가면 담(痰)이 상초에 몰리고 오줌이 잘 나가지 않는다. 주독으로 폐가 적사(賊邪)를 만나면 폐금(肺金)은 반드시 조(燥)하여진다. 폐가 조한데 차고 시원한 것을 함부로 먹으면 열이 내부에 몰려 폐기가 열을 받아서 몹시 상하게 된다. 처음에 병이 가벼울 때는 혹 토하거나 저절로 땀이 난다. 또는 헌데가 나고 코가 붉으며 혹은 설사를 한다. 혹 심비통(心脾痛)이 있으면 발산시켜서 치료할 수 있고 오래되어 병이 심해지면 소갈(消渴), 황달(黃疸), 폐위(肺痿), 내치(內痔), 고창(鼓脹), 눈이 나빠지고, 효천(哮喘), 노수(勞嗽), 전간(癲癎) 등이 생기고 이 밖에도 알기 어려운 병이 생긴다. 훌륭한 의사가 아니면 쉽게 치료할 수 없으므로 조심하여야 한다[단심]. 久飮酒者藏府積毒致令蒸筋傷神損壽《得效》 장기간 술을 마신 사람의 장부에 독이 쌓이면 근육이 상하고 정신이 약해져서 수명이 짧아진다[득효]. <출처: 동의보감> -
Who is an expert?“오스테오패틱 의학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단위체이자 신체, 정신, 영혼의 결합체로 보는데 이러한 기본 이념과 철학은 한의학에서의 관점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자생의료재단은 국내의 우수한 인재가 해외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전문 지식을 습득하여 한의학의 발전과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미시간주립대학교(MSU, Michigan State University) 오스테오패틱 의과대학(COM, College of Osteopathic Medicine) OMM(Osteopathic Manipulative Medicine) Exchange Program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미시간주립대 오스테오패틱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척추신경추나의학회(추나학회) 명예회장인 자생한방병원 신준식 회장께서 미시간주립대 오스테오패틱 의과대학 및 미시간주립대 국제보건연구소와 체결한 MOU를 바탕으로 성사됐다. 2주간 하루 8시간씩 총 80시간의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 자생한방병원은 추나학회와 함께 2013년부터 매해 연수단 파견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개경쟁모집 신청자 중 심사를 통해 연수단원을 선발한다. 본인은 자생한방병원에서의 수련과정 동안 자생의료재단의 여러 연구과제와 논문작업에 참여한 이력을 바탕으로 연수사업에 지원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7기 연수단원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2주간 하루 8시간씩 총 80시간 동안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 하에 DO(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의 관점에서 보는 관절의 운동역학, 수기치료의 습득 및 통달에 필요한 이론, 구체적으로는 경추 · 흉추 · 늑골 · 요추 · 천골 · 사지 관절 등의 진단 및 치료법, 두개천골요법, 내장수기법을 배우고 실습했다. 이 밖에도 생소한 분야였지만 매우 흥미로웠던 소아과에서의 수기치료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오스테오패틱 의학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단위체이자 신체, 정신, 영혼의 결합체로 보는데 이러한 기본 이념과 철학은 한의학에서의 관점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원활한 교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술기에 있어서도 추나요법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에 2년 전 수료했던 ‘추나의학아카데미 정규워크숍’을 회상하며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수기치료에 대해서는 병원 내 수련부 스터디를 통해 ‘그린만의 수기의학 원리’라는 책으로 처음 공부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이신 Lisa DeStefano 교수와 사진 속의 Jake Rowan 교수께 강의를 듣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모든 교수들께서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주시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매 강의마다 여러 명의 OMM 수련의 분들이 참석하여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고, 추나학회에서 굵직한 직책을 맡고 계신 연수단원 분들 덕분에 실습시간이나 강의 외 시간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었다.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기본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강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물음이 있다면, ‘Who is an expert?’이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답변은 ‘기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레지던트 3년차가 된 지금의 나는 기본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고민해보게 만든 순간이었다. 그동안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기본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시간에 쫓겨 정확한 원인 파악이나 진단 없이 통증 완화에만 관심을 둔 적은 없었는지, 지금까지의 수련 생활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의 시간은 2주가 매우 짧게 느껴질 정도로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가 푸르른 미국의 캠퍼스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출퇴근 시간의 분비는 지하철에서 벗어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통학하는 시간도 좋았다. DO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와 대선배이신 한의사 원장분들의 가르침과 조언, 그리고 정성수 부소장의 대폭적인 지원, 김미령 원장님의 프로페셔널한 통역까지 모두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자생의료재단에 감사하다. 연수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술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기본을 가장 잘 아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 -
趙憲泳(1900-1988)의 생애(2)趙憲泳 자신의 대표 저작인 『(應用自在)通俗漢醫學原論』은 한의학 부흥 논쟁이 한창이던 1934년의 말에 출간하게 된다. 『通俗漢醫學原論』은 해방 후에도 한의학 입문자들에게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혀져서 乙酉文化社, 醫門社, 眞玄, 學林社, 學園社 등의 출판사를 거치면서 최근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재 간행되고 있다. 언론 및 잡지에 발표된 글 가운데 한의학 임상에 필요한 내용을 모아서 『民衆醫術理療法』(1935년), 『肺病漢方治療法(肺癆證治)』(1937년), 『神經衰弱症治療法(心氣證治)』(1938년), 『胃膓病治療法(脾胃證治)』(1939년), 『婦人病治療法(女科證治)』(1941년) 등이 단행본으로 東洋醫藥社에서 간행하였다. 특히 이들 5종의 서적은 해방 후 1955년에 杏林書院에서 한정판으로 각각 重刊되었다가 1963년에 합본으로 묶여서 『東洋醫學叢書 : 五種』으로 간행되었다. 趙憲泳과 함께 李乙浩, 申佶求, 姜弼模 등이 함께 벌인 한의학 부흥 논쟁에 대한 글은 東西醫學硏究會에서 자체 발간한 『東洋醫藥』와 東亞日報, 新東亞, 中央時報 등의 언론에 게재되었는데, 이 기고문들을 朴季祚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1942년에 『漢醫學의 批判과 解說』(全北漢醫藥組合)으로 간행하기도 하였다. 또한 1937년에는 자신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物質文明은 어데로』(日月書房)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서 趙憲泳은 인류의 역사를 물질문명시대와 정신문명시대로 양분하고 당시의 식민지 상황이 바로 현대 물질문명의 소산이며, 정치적으로는 다수합의에서 소수독재로, 文治에서 武治로 악화된 결과로 보았다. 趙憲泳은 이 당시 대부분의 저서를 스스로 출간하였는데, 1931년 5월 신간회가 해체되고 나서 1932년 金永勳을 만난 이후부터 대략 1934년까지의 사이에 서울 낙원동에 東洋醫藥社를 설립하여 『(應用自在)通俗漢醫學原論』, 『民衆醫術理療法』 등을 출간하였다. 이후 東洋醫藥社는 관훈동으로 옮겨져서 『肺病漢方治療法(肺癆證治)』, 『神經衰弱症治療法(心氣證治)』을 출간하였고, 다시 명륜동을 옮긴 이후에는 『胃膓病治療法(脾胃證治)』, 『婦人病治療法(女科證治)』 등을 출간하였다. 1936년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日月書房은 팔판동에 위치하였고 대표는 趙憲泳의 차남으로 청록파 시인인 趙芝薰(본명은 東卓)이었는데, 이곳에서 『物質文明은 어데로』가 출간되었다. 그밖에 東洋醫藥社에서 『傷寒新論』, 『良方集解』, 『東醫診斷學』 등을 출간 예정이었으나 실제 출간되지는 않았다. 또한 趙憲泳은 대중매체에 매우 활발하게 기고 활동을 하였는데, 이미 1932년 朝鮮理療會를 창립할 당시부터 이 해에 「民衆保健과 理療法」(朝鮮日報 3월), 「봄을 타는 이는 이러케 하시오」(東亞日報 5월) 등을 연재하였다. 1933년 초에는 朝鮮理療會 명의로 「가뎡에서 필요한 진단법과 치료법」(每日申報 1월)을 연재하였다. 이후 약 1년간의 공백기를 지나 1934년에 「東西醫學의 比較批判의 必要」(朝鮮日報 5월), 「陰陽說의 理論과 實際」(朝鮮日報 5월~6월), 「臟腑論의 新硏究」(朝鮮日報 6월~7월), 「漢醫學論에 대하여 鄭勤陽씨의 평을 읽고」(朝鮮日報 10월~11월) 등을 연재하였다. 1935년에는 자신이 편집 겸 발행인이었던 『東洋醫藥』이 1월부터 5월까지 제3호를 발간한 이후 폐간되었는데, 이 잡지에서 「漢方脉學의 新硏究」(1월, 3월, 5월), 「本草藥理學과 嘗百草以制藥說」(1월), 「李濟馬四象醫論抄錄」(1월, 3월), 「漢藥法製(修治)는 왜하는가」(3월), 「本草藥理學과 氣味論」(3월), 「(張介賓)景岳全書演義」(3월, 5월), 「疾病의 原因」(5월) 등을 연재하였다. 「漢方脈學의 新硏究」라는 글에서는 脈學의 전반에 관하여 포괄적이면서도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으며, 「本草藥理學과 嘗百草以制藥說」, 「本草藥理學과 氣味論」, 「漢藥法製(修治)는 왜하는가」 등에서는 氣味論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修治法을 사용하는 범위와 간략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張介賓)景岳全書演義」에서는 張景岳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그 이론이 精簡明確하여 현대의 과학적 관점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정리 소개하게 된 것이라 밝히고 있다. 또한 「李濟馬四象醫論抄錄」의 해제에서는 李濟馬에 대하여 중국에서 온 것을 盲從墨守하는 폐단을 벗어나 독자적 견해를 가지고 신학설을 제창한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疾病의 原因」에서는 病因을 내적,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도식화하였다. 1935년에는 대중 일간지와 잡지에 「여자의 냉증은 왜생기나」(東亞日報 1월), 「陰陽五行說에 對하야 天台山人의 蒙을 啓함」(東亞日報 3월), 「신경쇠약」시리즈(朝鮮日報 5월), 「姙婦는 왜 신 것을 조하하나」(東亞日報 6월), 「까딱하다가는 더위를 먹습니다」(東亞日報 7월), 「장질부사는 그러케도 무서운 병인가 민간치료법과 예방법」(東亞日報 9월), 「漢方醫學의 危機를 앞두고」(『新東亞』 10월), 「四象醫學에 對하야」(『新東亞』 10월), 「胃膓病의 漢方療法」(『新東亞』 11월), 「肺病의 漢方治療法」(『新東亞』 12월) 등을 연재하였다. 1936년에는 「감기는 만병의 근본 예방과 치료법」(東亞日報 1월), 「長壽에 대한 漢醫養生法」(『新東亞』1월), 「갓난애기들의 간기(肝氣)는 어떤 병인가」(東亞日報 2월), 「農村家庭의 常備漢藥과 簡易治療方」(『新東亞』 2월), 「볼면증은 웨 생기나 원인과 치료방법」(東亞日報 3월), 「生殖泌尿排便의 異常과 漢方療法」(『新東亞』 3월), 「임신 만흔 봄철에 낙태는 어떠케 막을까」(東亞日報 4월), 「神經衰弱症의 原因과 療法」(『新東亞』 4월), 「失血症의 治療法」(『新東亞』 5월), 「젊은이들의 정신이상 원인과 치료방법」(東亞日報 8월), 「東洋과 西洋의 對照 묵은 問題의 새로운 吟味」(朝鮮日報 10월) 등을 연재하였다. 1937년에는 「人蔘과 鹿茸 왜 靈藥이라 하는가」(東亞日報 6월), 「우슨 듯하면서 맘 놀수 없는 각기와 부증」(東亞日報 9월), 「이 절기에 제일 만흔 감기와 토사증」(東亞日報 9월), 「잘못하면 죽는 토사의 증상」(東亞日報 9월), 「날이 치우면 만허지는 허리아픈 증세」(東亞日報 10월) 등을 연재하였고, 1938년에는 「이번 겨을에 유행하는 감기의 치료법」(東亞日報 2월), 「일은 봄부터 만히 나는 중이염 치료법」(東亞日報 2월), 「사망통게를 통해서 본 페결핵환자」(東亞日報 7월), 「백약이 무효하다는 백일해의 치료법」(東亞日報 9월), 「겨을이 되면 고생하는 해수천촉 치료법」(東亞日報 12월) 등을 연재하였다. 1939년에는 대중매체의 기고가 줄어서 東亞日報에 「한방으로 본 발진지부스 원인과 예방치료법」(東亞日報 4월), 「부인병에 제일 만흔 화와 냉의 증세」(東亞日報 11월) 등을 연재하였을 뿐이다. 그 대신 이 시기에 漢方 전문 잡지에 꾸준히 기고를 하였는데 『漢方醫藥』, 『東洋醫藥』 등에 게재되었다. 『漢方醫藥』은 1935년부터 간행된 『忠南醫學』이 1937년 1월부터 명칭을 바꾸어 1942년 제50호까지 발행된 잡지이다. 여기에 실린 趙憲泳의 글 전체에 대한 자료 확보가 어려워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忠南醫藥』에 「本草藥理學과 氣味論」(1935년 12월), 「漢方脈學의 新硏究」(1936년 1월 20일), 「胃膓病의 療法」(1936년 3월, 5월), 「肺病治療에 관한 몃가지」(1937년 1월 20일), 『漢方醫藥』에 「神經衰弱症 治療法」(1938년 8월, 9월, 10월), 「痢疾의 證과 治療」(1939년 8월), 「痔疾의 證과 治療」(1939년 9월), 「婦女의 火와 冷」(1940년 1월), 「小兒病治療法(二)」(1942년 11월) 등을 기고하였다. 또한 1939년 7월에 창간된 東洋醫藥協會의 『東洋醫藥』 제3호에는 「洋醫學徒의 漢方醫學觀」(『東洋醫藥』 9월)이 게재되었다. 1940년대 초부터는 종합 대중 잡지인 朝鮮春秋社의 『春秋』에 주로 기고하였는데, 「性格과 運命」(1941년 3월), 「體質과 性格」(1941년 6월), 「李聖鳳, 趙憲泳 對談 - 東西醫學上으로 본 長壽强壯의 秘訣」(1941년 11월), 「肺病의 豫防과 治療」(1942년 10월~1943년 2월), 「鄕藥集成方의 重刊을 보고」(1943년 3월), 「胃膓病의 攝養과 治療」(1943년 3월~6월), 「假死 이야기」(1943년 7월), 「神經衰弱症의 原因과 治療」(1943년 9월~11월), 「婦人病의 攝養과 治療」(1944년 1월~8월) 등이 그것이다. ※ 『忠南醫藥』, 『漢方醫藥』 등에 실린 趙憲泳의 기고문에 대한 정보와 내용을 제공해주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김남일 교수님과 재단법인 아단문고에 감사드립니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64)1961년 12월 東洋醫藥大學(경희대 한의대의 전신) 學生漢醫學會에서 『東醫會誌』 제4호를 간행한다. 이 잡지에는 19편의 학생과 교수의 논문이 실려 있어서 당시 한의대의 중심 학술지였다. 이 학술지에서 「귀의 探索」(부제: 耳病의 古典的 考察)이라는 제목의 당시 4학년 학부생인 蔡炳允의 논문을 발견했다. 필자가 학창시절 蔡炳允 敎授님께 수업을 들었던 경험이 있는 관계로 친숙하게 느껴졌다. 故 蔡炳允 敎授(1936∼2016)는 한의계의 큰 儒醫이며 학자였던 蔡仁植 敎授(1908∼1990)의 아들로서 경희대 한의대를 11회로 졸업한 한의사이다. 이 논문이 蔡炳允 敎授의 1961년 한의학과 4학년 시절의 작품이고, 훗날 그가 경희대 한의대에서 한방안이비인후과의 교수로서 이 분야 연구의 대가가 된 것을 감안할 때 그의 논문 「귀의 探索」은 학창시절부터 그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이미 큰 계획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논문은 1.序言, 2.解剖學的面, 3.病理學的面, 4.病理學及內科學的面, 5.治癒面, 6.結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1.序言에서 한의학적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한의학 발전의 진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2.解剖學的面에서는 서양의학에서 규명하고 있는 귀의 해부학적 구조를 설명한 후 그 내용을 經絡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3.生理學的面에서는 『黃帝內經』에 나오는 耳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여 腎과 耳, 腎脈의 流注, 臟腑의 기능과 耳의 관계, 精氣와 耳의 관련성 등에 대해서 논술하고 있다. 4.病理學及內科學的面에서는 ⒜耳聾, ⒝耳鳴, ⒞耳痛, ⒟聤耳 ⒠耳疳 ⒡耳衄 ⒢耳痔, 耳覃, 耳挺 ⒣黑疔 등을 원인, 증상 등을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5.治癒面에서는 耳病 관련 각 병증 항목에 대해 원인별로 처방을 나열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는 아래와 같이 결론짓고 있다. “이상에서 서술한 것은 일반 서적에 산재해 있는 것을 대략적으로 수집하여서 논술하여 본 것이다. 그러나 빈곤한 지식으로 어려운 學理를 다루는데 前倒後亂된 듯한 감이 不無하다. 대개 古典은 生理學이나 解剖學이나 病理學 및 治癒法이 相雜하여 調理整然히 다루기가 어렵다. 生理學인 面으로 볼 때 귀는 腎臟과 밀접한 관련성으로, 病理學的으로 볼 때 熱로서 病되는 원인이 대부분이며 少陽相火가 忿怒로 말미암아 動하게 된다. 이것은 女子에 많으며 또한 左耳가 病이 되는 것이고, 右耳聾은 足太陽의 火로 되는 것인데 色慾이 過多함으로 해서 病이 됨으로 男子에게 많고, 左右耳聾은 부유한 가정에서 膏粱珍味를 많이 섭취하여 병이 되는 것이다. 耳病이 대략 이러한 원인에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치료 역시 原因을 규명하여 다스리면 奇效를 보는 수가 많다. 한의학이 陰陽相變하는 원리로 되어 있으므로 千變萬化하는 消長之理를 알지 못하면 東洋醫學이나 學問은 절대로 理解와 首肯이 가지 않는다. 精氣神이란 陰陽의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陰陽을 먼저 알게 되면 精氣神을 알 수 있으며 神妙不測한 變化를 하는 이 精氣神 자체를 求得하라고 하면 考究하기란 容易치 않다. 한의학 全般이 여기에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특히 귀의 관계에서 精氣神을 잘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이 원리를 찾는데 要點이 있는 것이요, 繁雜한 學理를 縮一統括하면 여기에 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즉 耳病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치료하기 위해서 원인과 병리적 변화를 잘 이해하여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바탕이 되는 精氣神의 陰陽的 變化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
“민초를 사랑한 한의학자 이규준…공연은 계속될 것”[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지난 15일 경북 포항 출신으로 근대 한의학에 큰 업적을 남긴 석곡 이규준 선생의 일대기를 창작 마당극으로 그려낸 지역 예술단 ‘예심국악소리’의 장임순 대표로부터 공연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심국악소리, 소개를 부탁드린다. 예심국악소리는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상북도 지정 전문 국악예술단체다. 제주에서 활동을 하다가 2000년도에 포항에 와서 2008년도에 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현재 1년에 3번의 작품을 기획해 공연하고 있다. 포항의 풍류란 제목으로 정기공연을 하고, 포항지역의 토속소리와 포항지역의 역사적 인물 및 설화를 바탕으로 지역 향토무형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면서 공연예술로 만들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스승과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사제소통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한의학자 이규준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석곡뎐’을 공연했다. 계기는?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석곡선생의 이야기로 공연을 했다. 이미 지난 2014년부터 포항토속민요 재현 공연을 하고 있었고 지역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포항에서만 표현이 가능한 문화 콘텐츠를 생각하던 중 3회쯤에는 극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석곡 이규준 선생의 이야기를 특강으로 듣게 됐다. 포항에 20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 큰 어른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참 부끄러웠다. 지역의 무형유산을 발굴해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도 모르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 수치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로 찾고 있던 소재라고 느꼈다. 수면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달려들었다. ◇준비과정은 어땠나? 극화시키기엔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때마침 김일광 작가가 석곡선생에 대한 책을 편찬한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던지 책이 출판된 지 3일 만에 제일 먼저 달려가 받았다. 그래서 지난해 석곡 이규준 선생의 이야기로 창작 뮤지컬을 기획, 공연하게 됐다. 한 번의 공연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올해에는 석곡 선생의 스토리에 포항토속민요를 덧입혀 마당극을 기획하게 됐다. ◇올해 공연의 관전 포인트는? 2019년 석곡뎐은 석곡 이규준 선생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지역의 토속민요가 입혀져 해학적으로 펼쳐진다. 민초를 사랑하고 몸소 선보였던 석곡 선생의 사상, 행적과 가장 잘 맞는 극이라 생각한다. 김일광 작가의 원서를 각색하면서 재미나 흥미 외에도 의미를 부여할 길을 많이 고민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마당극의 재미를 알았다고 극찬을 해 주셨다. 물론 전문 배우가 아닌 제자들이 중심이 돼 공연을 하다 보니 미흡한 점도 많았지만 지역의 이야기와 소리를 지역의 사람들이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값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대본 각색도 직접하는 등 중간에 관두고 싶을 정도의 고된 과정도 있었지만 내년을 기대한다는 관객들의 반응이 다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평소 한의학에 대한 경험은? 한의원 앞만 지나가도 몸이 건강해짐을 느낀다. 한약재향을 참 좋아한다. 한의원에 갈 때마다 한의사들은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 한마디를 나눌 때도 듣는 눈길, 전해지는 손길이 참 따뜻했다. ◇민중의학이자 전통의학인 한의학이 일제시대 이후 명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의와 양의의 공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양의학을 하시는 분들이 사실 한의학을 좀 쉽게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도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알게 모르게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학이든 예술이든 전통은 고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기반으로 그 다음 또 다른 의학, 또 다른 예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모태가 없는데 존재할 수 있을까? ◇향후 계획은? 10월에는 이야기 춤극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석곡 이야기가 준비돼 있다. 석곡선생에 대해 공연을 준비 할 때마다 생각한다. 한두번으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최고의 유학자이며 한의학자인 석곡선생의 민초사랑은 그 어떤 인물과 견줄 것이 못 된다. 포항은 철강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석곡선생을 비롯해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석곡 선생에 대해 공부하며 알게 됐다. 포항이야말로 한의학의 도시로서 향후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석곡 선생의 놀라운 학식과 인품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널리 알려지길 소망한다. ◇남기고 싶은 말은? 개인 이름인 예심이란 이름으로 기획해 왔던 지역의 무형유산인 포항토속민요와 지역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발굴과 보존 작업을 2020년부터는 ‘포항향토무형유산원’이란 명칭 하에 활동할 예정이다. 15일 공연 전에 창립식도 마쳤으며 석곡선생과 같은 역사적 인물을 찾아 공연예술로 알리고 인문학 강의 및 세미나를 거쳐 좀 더 심도있게 알아가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포항의 모든 무형유산을 발굴하고 기록해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보급되도록 힘쓸 것이다. 한의신문 독자들께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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