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국회미래연구원(원장 김기식)이 노인·만성질환자 대상 ‘한국형 주치의 제도’ 방안을 제시했다. 방안에는 △자발적 등록제의 단계적 도입 △일차의료 지원센터·공공 종합의원 중심의 통합돌봄 연계 △환자 등록 기반의 지속관리 △가치기반 보상체계 △다학제 진료를 통한 일차의료 강화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 등이 담겼다. 특히 이 같은 모델은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중심의 한의의료 역할 확대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허종호 연구위원은 6일 ‘초고령사회 지속가능한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주치의 제도 설계 방안’을 주제로 정책보고서를 발간, 병원 중심 의료체계를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운데 ’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0%를 넘는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대비 34% 감소한 2445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격차도 ’08년 10.70년에서 ’21년 13.10년으로 확대됐으며, 65세 이상 노인의 22.3~35.0%는 고혈압·당뇨병·심혈관질환 등 3개 이상의 복합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는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보험 총지출은 ’13년 41조5000억원에서 ’25년 102조4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현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26년 재정 적자 전환과 ’30년 준비금 소진 가능성도 제기됐다.

◎ “상급병원 쏠림·의료쇼핑…‘문지기’ 없는 의료체계의 민낯”
허종호 위원은 의료비 증가의 원인을 고령화뿐 아니라 민간 중심 공급체계와 행위별수가제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공공병상 비중은 OECD 최하위 수준인 9.5%에 불과하고, 의료기관 기능 구분과 일차의료의 문지기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상급종합병원이 외래 요양급여비의 약 40%를 차지하는 등 의료쇼핑과 중복진료, 형식적 의뢰·회송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주치의가 환자의 의료 이용을 조정하는 ‘조정자(Coordinator)’이자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허종호 위원은 장애인 건강주치의사업과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등 기존 사업이 대상과 질환별로 분절돼 지역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일차의료 체계로 확장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행위별수가제 중심의 보상체계로 다학제 인력을 고용할 유인이 부족해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의 케어코디네이터 직접 고용률은 2.3%에 그쳤으며, 방문진료 수가를 실제 청구한 의원도 전체 의원의 약 0.6%에 불과했다.
허종호 위원은 방문진료와 비대면 관리가 시범사업 특례에 의존하는 점도 전국적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현재 추진 중인 등록 기반 시범사업은 △50세 이상 환자 등록 △건강상태에 따른 4단계 환자군 분류 △월 정액관리료 도입 등 기존 사업보다 발전된 구조를 갖췄지만, 단독개원 중심의 의료공급 구조와 환자 수용성 부족, 전산 인프라 미비 등은 해결 과제로 제시했다.

◎ 단독의원 살리고 공공이 잇는다…노인부터 시작해 지역으로
그는 영국·프랑스·독일·미국·일본 모델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는 강제 등록보다 자발적 참여하는 방식을 현실적 대안으로 분석했다. 프랑스는 등록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환급률을 70%에서 30%로 낮추는 경제적 유인으로 등록률 89%를 달성했고, 독일은 본인부담 경감을 통해 참여를 확대했다. 미국은 다학제 팀 기반 PCMH를 통해 의사 필요 업무시간을 하루 26.7시간에서 9.3시간으로 줄였으며, 일본은 지역포괄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의료·개호·예방·주거·생활지원을 연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허 위원은 노인·만성질환자·의료취약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주치의 등록제를 우선 시행한 뒤 성과와 적정 수가를 검증해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등록 환자에게는 본인부담금 감면 등 혜택을 제공하고,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혜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하도록 했다.
허 위원은 국내 의원의 81.8%가 단독 개원이라는 현실을 반영해 △1형(단독개원·환자등록·케어플랜·비대면 모니터링) △2형(공동개원·최소 다학제·방문진료·재택의료) △3형(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영양사 참여 다학제 의원) △4형(일차의료 지원센터·인력 공유·복지·돌봄 연계) △서비스 단계(환자등록→포괄평가→환자군 분류·케어플랜→맞춤관리→지속 모니터링) 등 단계별 일차의료 모델을 제시했다.
공공 부문에서는 보건소와 지방의료원 등을 활용한 ‘공공 종합의원’ 도입을 제안했다. 공공 종합의원은 민간 의원과 경쟁하는 기관이 아니라 복합 만성질환자와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다학제 서비스를 제공한 뒤 다시 지역 주치의에게 회송하는 지원 거점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진료량’ 대신 ‘건강성과’…주치의 보상방식 바꿔야
보상체계는 기존 행위별수가제를 유지하되 월 포괄관리료와 성과 인센티브를 결합한 가치기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환자 위험도(1~4군)에 따른 관리료 차등 지급 △고위험군 대상 방문진료·다학제 관리 수가 확대 △만성질환 관리성과·입원율 감소·환자 만족도에 따른 성과보상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역 의원과 일차의료 지원센터, 거점병원이 지역 주민의 건강과 총의료비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지역 책임의료조직(Accountable Care Organization·ACO) 구축 △건강보험공단과 의료기관이 절감 재정을 나누는 성과공유제(shared savings)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디지털헬스케어 기반 ‘의뢰·회송’…주치의 중심 네트워크 제안
아울러 허 위원은 주치의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헬스케어 기반 비대면진료와 전자의뢰·전자회송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의원·병원·상급종합병원 간 의뢰·회송뿐 아니라 민간과 공공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를 국가 단일 보안망 기반으로 전자화해 주치의를 중심으로 진료정보를 축적·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 위원은 “주치의 제도가 정착되면 예방·치료·재활·돌봄이 연계된 건강관리 체계가 구축되고, 의료쇼핑 감소와 상급종합병원 쏠림 완화, 응급실 이용 및 재입원 감소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성공적인 주치의 제도는 환자에게는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존엄한 노후를 보장하고, 의료공급자에게는 진료의 본질적 가치 실현과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제공하며, 국가적으로는 급증하는 의료비를 관리하는 핵심 재정기제로 기능할 것”이라며 “정부와 의료계, 시민사회가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한의계, ‘주치의 시대’ 대비…제도 참여·데이터 축적이 관건
보고서가 제시한 주치의 모델은 현재 운영 중인 한의방문진료와 한의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환자 등록 기반 지속관리와 다학제 협력 등 핵심 요소가 기존 한의재택의료 모델과 방향이 일치하는 만큼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 참여 범위와 역할 또한 정부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한의재택의료 및 일차의료 전문가들은 앞으로 제도 확대의 핵심을 ‘참여’보다 ‘성과’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능 개선 등 건강 결과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 축적과 체계적인 기록이 향후 제도 확대와 수가 개선의 핵심 근거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아울러 지자체 통합지원협의체 참여와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통합돌봄 체계 안에서 한의의료의 역할을 제도화하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