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이 의학계 전반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서, 한의학계 역시 새로운 도약과 함께 거대한 윤리적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일찍이 서양의학계가 ‘왓슨(Watson)’ 암 진단 시스템을 도입하며 한정된 정보에 의존한 진단의 오류와 신뢰도 위기를 경험했듯이 한의학 역시 AI 활용에 따른 윤리적 성찰인 ‘한의학 AI 윤리론’을 시급히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현실적이고도 윤리적인 문제는 지도학습을 정교하게 수행할 만한 양질의 한의학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AI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답지가 붙은 표준화된 데이터(지도학습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필자가 그간의 연구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한의계는 임상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수많은 한의사들의 귀중한 치료 경험(醫案)과 경험 처방(經驗方) 등을 체계적·지속적으로 데이터화하는 작업이 매우 미진한 실정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데이터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부족한 임상 데이터를 ‘생성형 데이터(합성 데이터)’로 대체하여 손쉽게 메우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윤리적 맹점을 안고 있다. 현실의 임상 맥락이 거세된 채 가상으로 생성된 데이터에 의존할 경우, 존재하지 않는 증상을 만들어내거나 엉뚱한 처방을 유도하는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 발생할 수 있다. 인공적인 임시방편에 눈을 돌리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는 ‘현실 임상’의 생생한 진료 기록을 표준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본질적인 작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근본 데이터의 한계는 필연적으로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정보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한정된 소수의 데이터만 비대칭적으로 AI에 학습된다면, 특정 체질이나 다빈도 질환 위주로 진단이 쏠리게 되고, 소수 환자군이나 희귀 질환에 대한 편견이 고착될 수 있다. 이는 한의학의 핵심 가치인 ‘辨證論治’와 ‘맞춤 의학’의 정신을 위협하며 의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더욱이 지문, 홍채, 얼굴 안색, 체형 등 환자의 고유한 생체 정보를 중요시하는 한의학의 특성상, 데이터 수집과 학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및 생체 데이터의 누출 위험은 또 다른 윤리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철저한 보안과 주체적인 데이터 거버넌스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환자의 가장 민감한 프라이버시가 기술의 편리함 뒤에서 침해당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은 기술보다 의원의 도덕적 품성과 책임을 뜻하는 ‘醫道’와 ‘仁術’을 상위 가치로 두었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현실 임상 데이터의 가치를 복원하고 그 주체적 활용을 ‘論’해야 한다. 인공적인 가상 데이터에 의존하기보다 실제 한의사들의 살아 있는 경험을 올바르게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철저히 보호하며 AI를 보조적 인술의 도구로 다스릴 때, 비로소 AI는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는 진정한 인술의 도구가 될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한의학윤리론은 단순히 기술의 부작용을 막는 방어기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의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미래 의학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주체적 선언’이어야 한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한의사 고유의 혜안과 임상 데이터의 가치를 올곧게 세울 때, 인공지능은 비로소 仁術을 돕는 보조자로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 溫故知新의 지혜로 기술과 醫道의 균형을 잡는 한의학계의 윤리적 결단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