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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08일 (월)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선택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선택은?”

한의학 웰빙 & 웰다잉 48
집에서 죽을 권리…재택임종 현장에서 들은 환자의 마지막 바람

김은혜 교수님(최종).jpeg


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무거운 짐으로 남은 이가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 마음에는 그 짐이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연마다 방방곡곡에 흩어진 환자들이 여전히 내 안에 살고 있다.


음식만 먹으면 토해 콧줄을 낀 채 금식해야 했던 환자가 너무 먹고 싶다며 애원하던 콜라 한 캔을 딱 잘라 금지했던 어느 날. 더 사는 것도, 아픈 것도 다 상관없으니 그저 딸의 결혼식에만 참석하게 해달라던 그 간절한 부탁을 지켜주지 못했던 어느 날. 미국에서 들어오는 딸의 얼굴을 볼 때까지만 버티게 해달라던 마지막 염원을 이뤄주지 못했던 어느 날. 참 다양한 사연들이 마음에 흉터처럼 남아 흔적을 깊게 새겼다.


그중에는 이런 짐도 있다. “이제껏 항암을 버텨왔고 최근 몇 년을 병원에서만 보냈으니, 지금 이 통증만 좀 잡아주면 죽기 전까지 제발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던 환자의 한탄 섞인 목소리다. 당시 환자 한 명 한 명을 쳐내기 바빴고, 철저히 병원과 의료서비스 중심으로만 사고하던 내게 그 한탄은 그저 말도 안 되는 하소연으로 들렸다.


집으로 찾아가는 의료의 당위성 확인


밥 먹을 기력이 없어 영양제를 매일 맞고,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온몸을 후벼 파는 통증 때문에 진통제에 의지하며, 잠깐 숨을 돌릴 만하면 고열과 기침 가래가 들이닥쳐 항생제를 부어야 하는 생활. 집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당시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해낼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에 ‘이해 불가’라는 이름표를 붙여두고 서둘러 합리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다. 얼마 전 지인 원장님의 배려로 재택의료 현장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이라 병원에 갈 여력이 없는 이들, 병원은 다니지만 집에서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이들, 거동이 불편한데 보호자가 없어 혼자 생활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집으로 찾아가는 의료’의 당위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환자들의 집을 하나씩 들렀다.


그리고 마지막 집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전까지 모든 환자를 묵묵히 마주하던 원장님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낮게 말씀하셨다. “이 환자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시지요.”


방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이 머문 곳은 발이었다. 엄지는 이미 소실되었고, 둘째 발가락부터 새끼발가락까지 모두 괴사해 발등까지 시퍼렇게 죽어 있었다. 상처를 감싸던 거즈를 하나씩 걷어내자, 이미 둘째 발가락마저 괴사되어 위태롭게 덜렁거렸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순간이었다. 덜렁거리는 발가락 주변을 살피며 거즈를 빼내는 와중에도 정작 할머니는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처음 보는 우리 얼굴을 그저 두리번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ChatGPT Image.png
AI 생성 이미지

 

사랑하는 이와 맞는 삶의 마지막 순간


곁을 지키던 아들은 낯선 이들의 방문에 지나온 일들을 담담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들은 은퇴한 경찰관이었다.

“혹시나 해서 병원에 또 다녀왔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똑같더군요. 원인은 명확히 모르겠고, 연세가 너무 많아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항생제를 써보겠지만 나이 때문에 강한 약을 쓸 수 없고, 쓴다 한들 발이 호전되기는 어렵다고요. 입원은 시켜줄 수 있지만 해줄 수 있는 건 드레싱뿐이라고 했습니다.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병원에 있는 걸 몹시 불안해하셨습니다. ‘빨리 집에 가자’, ‘무섭다’는 말씀만 반복하셨지요. 어차피 통증도 느끼지 못하시는데, 굳이 병원에 계실 이유가 없을 것 같아 집으로 모셨습니다.”


과연 경찰관다운, 명료한 브리핑이었다. 이어진 원장님의 답변 역시 누군가의 집에서 일어나는 이런 비극이 익숙한 듯 담담했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시는 것을 권합니다.” 원장님이 거듭 청했지만,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셀 수도 없이 다녀왔습니다. 다 떠나서, 혼자 두면 무서워하시는 분을 더 기대할 것도 없는 곳에 홀로 두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서류도 다 쓰지 않았습니까. 정리도 끝났습니다.”


아마 연명의료중단동의서를 포함한 서류들을 뜻하는 모양이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충분합니다. 어머니와 시간도 잘 보냈고, 집에 계셨기에 할 수 있는 일들도 다 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그저 '그때'가 언제인지만 판단해 주십시오.”


길어지는 대화와 서류를 챙기는 모습에 나는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밖에서 기다렸다. 수십 분을 더 머물다 나온 원장님과 함께, 그 집을 마지막으로 재택의료 방문 일정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이틀 뒤,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 보셨던 발 괴사 환자분, 호흡이 멈췄다는 연락을 받고 지금 막 다녀왔습니다. 아드님도, 환자분도 가정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잘 가셨습니다. 혹시 궁금해하실까 싶어 소식 남깁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먹먹한 서글픔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병원의 차가운 기계음 대신 익숙한 집안의 공기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맞이하는 마지막. 그것이 그토록 원했던 ‘집에서 죽을 권리’, 즉 재택임종의 실체였다.


이제야 느낀 재택임종의 참된 의미


과거의 나였다면 의학적 관리의 부재를 우려하며 끝까지 병원을 고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방, 익숙한 냄새,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가족의 존재. 그것이 비록 괴사해 가는 발을 고치지는 못할지언정, 떠나는 이의 영혼만큼은 평온하게 다듬어줄 수 있었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 어디에 누워있기를 바랄 것인가. 병원의 고독한 침상인가, 아니면 내가 살아온 삶이 깃든 나의 집인가.


문득 십수 년 전, 집에서 죽게 해달라며 내게 하소연했던 그 환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스쳤다. 이제야 그 마음에 온전히 가닿은 것 같아, 마음 속 오래된 흉터가 조금은 아물어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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