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서원 수원특례시한의사회장
(대한한의사협회 국제이사·경기도한의사회 국제부회장)
최근 몇 년간 경기도한의사회는 대만 신죽시중의사공회와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2019년 교류협력 MOU 체결 이후 양국은 학술교류와 의료정책 공유, 의료기관 참관, 국제행사 협력 등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특히 올해 제96회 대만 국의절 행사와 한국·대만 학술교류회에 참석하며 다시금 느낀 것은 대만이 단순히 전통의학을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 ‘현대의료 체계 안에서 중의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환자 중심 협진”…대만이 보여준 중의·서의 공존 모델
대만의 의료 현장을 접할 때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중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한의학과 의학의 관계가 대립과 갈등의 프레임 속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환자 중심이라는 원칙 아래 두 체계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약대학 부속병원 참관 과정은 많은 생각을 남겼다. 병원 내에는 중의치료실과 중의 전문 외래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고, 환자들은 필요에 따라 중의와 서의를 선택하거나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의료진 또한 이를 특별한 ‘직역 충돌’로 인식하지 않았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협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의 중의약 활용이었다. 대만은 팬데믹 시기 중의약을 단순 보조요법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 속에서 적극 활용했다.

중의약 신약인 ‘청관1’, ‘청관2’를 개발해 해외로 수출했고, 감염 예방과 후유증 관리에도 중의약을 폭넓게 적용했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중의약 이용률이 20% 이상 증가했다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전통의학을 보호했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중의약을 보건의료 자산으로 인정하고, 연구·임상·산업화·보험체계와 연결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대만은 중의약을 문화로만 다루지 않았다. 의료이자 산업이며 공공보건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만의 제약회사 ‘코다(Ko Da Pharmaceutical, 科達製藥)’를 방문했을 당시 관계자로부터 매우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제약회사와 협업해 대만의 중약제제를 한국에 수출하고, 한국의 한약제제를 대만으로 수입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이는 단순한 상품 교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양국 전통의학이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 ‘중의재택의료’의 진화…대만은 어떻게 돌봄체계를 만들었나
대만은 의료뿐 아니라 제도 설계에서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경기도한의사회와 신죽시중의사공회가 공동 개최한 학술교류회에서는 대만의 중의재택의료 모델과 장기요양 3.0 시스템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대만에서는 중의사가 재택에 방문해 침 치료와 한약 처방, 건강관리 지도, 식이 상담 등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지역 의료기관과 재택의료팀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환자를 지속 관리하는 구조가 이미 정착돼 있었다.
특히 환자 신청부터 초기 평가, 방문진료, 사례관리까지 단계별 프로세스가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순 방문진료가 아니라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 안에서 중의약이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역시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재택의료와 지역돌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직역 갈등과 제도적 장벽 속에서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한의사의 역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무엇을 제한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만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의료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환자 중심의 협력 모델 대신 직역 중심의 대립 구조를 반복하고 있는가.

물론 대만의 시스템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할 수는 없다. 의료 환경도 다르고 역사적 배경도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만은 전통의학을 현대의료 안에서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를 실제 정책과 산업, 공공보건 체계 안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도 한의학을 단순한 보완 영역이 아니라 미래 의료체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감염병 위기와 돌봄 공백이라는 현실 앞에서 단일 의료체계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언제 시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