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에서는 한방내과(순환신경내과) 전문의 이제원 원장으로부터 한의사의 내과 진료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내과학이란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이며, 한의학은 내과 진료에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의사의 내과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임상추론과 치료 과정을 공유해 나갈 예정이다.
“과학은 전문가의 무지에 대한 믿음이다.” 양자전기역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은 1966년 미국의 전국 과학 교사 협회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며 과학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이 말은 단순히 전문가가 틀렸으니 무시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 지식과 권위에 의해 편향된 것일 수 있으니,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거부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3주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혈압이 매우 높고, 고지혈증, 내장비만이 있다고 들었어요.”
60대 여성 환자가 내원했다. 환자가 가지고 온 대학병원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했다. 검진 당시 혈압이 189/101mmHg로 매우 높았고, BMI 23.8kg/㎡, ESR 39mm/hr, 총콜레스테롤 267mg/dL, Hb A1c 5.8% 등의 이상 소견이 기록돼 있었다.
2년 전 검진에서도 혈압은 157/89 mmHg로 높았고, BMI 23.0kg/㎡, ESR 60mm/hr, 총콜레스테롤 275mg/dL였다. 본원 내원 시 측정된 혈압은 189/102mmHg, BMI는 24.2kg/㎡였다.
투약 이력을 살폈다. 그런데 환자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에 대한 화학합성 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었다. 건강검진 결과 설명을 들을 때마다 화학 약물 복용을 권고 받았지만, 화학약물을 좋아하지 않아 복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상태가 악화하자 환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요구는 명확했다. “전문가와 함께 치료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요.”
환자는 단순히 수치만 떨어뜨리는 ‘화학물질’이 아니라 건강 상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고 있었다.
정밀 검사를 다시 시행했다. ESR 29mm/hr, 총콜레스테롤 216mg/dL, Hb A1c 5.5% 로 3주 전보다는 감소했으나, 인슐린 저항성 지표인 HOMA2-IR 수치가 1.25로 높았다(표 1).
표 1. 환자의 진단의학적 검사 결과 총콜레스테롤(Cholesterol, total)은 상승했으나, 중성지방(Triglyceride)과 인슐린 저항성(HOMA2-IR)은 개선됨.
舌診상 舌質의 色이 淡紅하고 舌苔는 白•薄했는데, 舌尖 부위에서 剝落苔가 관찰됐다. 脈診상 脈象이 전체적으로 細•滑했으나, 우측 寸脈이 좌측보다 浮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병력과 검사 결과를 종합하여, 환자의 상태를 과체중, 고혈압, 인슐린 저항성 증가 상태로 辨病, 胃熱熾盛證으로 辨證 진단했다. 그리고 加減白虎湯에 기반한 첩약 처방과 함께, 식습관 및 생활 습관에 대한 포괄적 개입을 시작했다.
그림1. 치료 기간 중 혈압 변화 추이 치료 시작일(Day 0)을 기준으로 수축기 및 이완기 혈압의 변화를 나타냄. 실선은 7일 이동 평균(Moving Average) 추세선을 의미함. 약어: SBP(systolic blood pressure, 수축기 혈압), DBP(diastolic blood pressure, 이완기 혈압), MA(moving average, 이동 평균).
그림2. 치료 기간 중 체성분 변화 체중 감량 과정에서 골격근량은 보존된 반면, 체지방량과 체지방률이 뚜렷하게 감소하는 우하향 곡선을 그림.
치료 4개월 후 수축기 혈압은 평균 128mmHg대로 안정됐고, 이완기 혈압 또한 70 mmHg대로 떨어졌다(그림 1). 체중은 5개월 동안 58.4kg에서 49.3kg으로 9.1kg 감량됐다. 그중 8.1kg이 체지방이었으며, 골격근량 손실은 0.6kg에 불과했다(그림 2).
환자는 “활력이 넘치고, 체중이 빠졌는데도 몸이 축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너무 좋습니다.”라며 만족해했다.
하지만 회복 과정에서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다른 수치는 모두 좋아졌는데, 총콜레스테롤 수치만 295mg/dL로 상승한 것이다(표 1). 일반적인 진료지침대로라면 “치료가 잘못됐다”, “당장 스타틴을 써야 한다”라고 말할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환자에게 “화학약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몸은 건강한 방향으로 회복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혈관 건강의 핵심인 중성지방이 60mg/dL대로 매우 낮았고, HDL은 80~90mg/dL대로 높아져, ‘TG/HDL 비율’이 1 미만인 최상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HOMA2-IR 수치는 1.25에서 0.58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 모든 데이터가 환자의 대사 기능이 회복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현상은 본원을 내원하여 비슷한 치료 경과를 보인 다른 환자들에게서도 자주 관찰됐다.
수년 전 이러한 역설적인 현상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황했다. 혈압, 혈당, 체중, 자각 증상까지 모든 것이 좋아지는데 오직 ‘총콜레스테롤’ 숫자 하나만 튀어 오르는 현상을 기존 교과서와 진료지침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숫자보다는 환자의 전체적인 건강 상태를 믿고 화학약물 복용 권고는 최대한 자제했다.
답은 이후 발표된 최신 연구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21년, 마른 사람(Lean Mass Hyper-Responder, LMHR)이 저탄수화물 식단 등을 통해 체지방을 급격히 에너지로 쓸 때 LDL이 상승하는 현상이 보고됐고, 이를 설명하는 ‘지질 에너지 모델(Lipid Energy Model)’이 제시됐다. 급기야 2024년 8월, 심장내과 권위지인 JACC Advances에는 “LMHR 유형의 사람들이 대사적으로 건강하다면, LDL 수치가 아무리 높아도 관상동맥 플라크 형성과는 연관성이 없다”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과학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한다.
남들이 다 아는 진료지침을 있는 그대로 읊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다. 진료지침은 수많은 연구의 결정체이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전문가란 눈앞의 환자에게서 기존의 상식과 다른 현상이 나타났을 때, 기존의 권위에 갇히지 않고 “아직 우리가 모르는 생명 현상이 있을 수 있다”라는 겸허함으로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한의학은 인간을 수치로 환원하지 않고 생명 활동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도그마에서 벗어난 현상조차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환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다. 진정한 내과 전문가로서 한의사가 가지는 잠재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