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5일 동안 코로나19 한의진료 서울 전화상담센터의 예진 업무에 참여, 확진자와 통화하면서 느꼈던 점을 소개한다. 예진은 한의사 진료에 앞서 체온, 맥박, 혈압 등 기본 정보와 감염 경로, 확진 시기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띠리리리리”
지난 6일 오전, 9시가 되기 무섭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다소 들뜬 음색의 중년 여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 많으십니다. 얼마 전에 한의사 선생님과 통화해서 한약을 복용했는데, 기력이 좋아져서 다시 받고 싶은데요.” 앞서 배포된 진료 매뉴얼을 빠르게 훑은 뒤 답했다. “죄송하지만 한약이 정부 지원 없이 기부금으로 운영되다보니, 코로나19 관련 증상을 호소하는 분 위주로 추가 진료를 잡아드리고 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수화기 너머로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쩔 수 없었다. 제공할 수 있는 한약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전화가 다소 뜸해졌던 지난 8일 오후에는 예진 업무 총괄을 맡은 박수나 부팀장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지금 약제 포장하는 업무에 인력이 없는데, 여기서 2명 정도 약국 업무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헤드셋을 벗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후 약제 포장하는 곳으로 뛰어갔다.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 2~3명이 처방전과 함께 한약을 포장해 택배 상자에 담고 있었다. 어렵진 않았지만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한약의 파손을 막기 위해 뽁뽁이를 약제 크기에 맞게 자르고, 접힌 상태에서 온 상자를 약제가 잘 담기도록 펴는 사소한 일조차 모두 중요했다. 상자에 한약을 담아 한글 순서에 맞게 분류하는 일도 맡았다. 얼추 밀린 포장을 마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약국 담당 한의대생에게 본 업무로 돌아가도 되냐고 물었다. “전화받는 업무이신지 몰랐는데 괜히 시간 빼앗았네요.” 미안한 표정이었다.
같은 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60대 어르신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하소연을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한약을 먹고 싶은데, 제가 입원한 병원에선 한약을 먹지 말라고 해서 아직도 못 먹고 있네요. 별다른 방법 없을까요?” 현재 양방병원의 공공연한 지침이라 한다. “주변에 퇴원한 뒤 한약을 복용하고 몸이 가뿐해졌다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어르신은 말끝을 흐렸다.
진료 마감 시간인 오후 6시가 다 돼 가는데도 진료실 내 한의사의 표정은 지친 기색이 없다. 10일 하루 종일 진료에 참여한 김영섭 한의사는 “처음엔 대기 중인 재진 환자 목록이 200건 넘는 걸 보고 놀랐지만, 여기 계신 다른 원장님과 함께 진료를 보고 있어 크게 부담이 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상담 시간이 끝나면 진료를 마친 한의사는 매일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여해 환자들의 주된 증상을 공유하고, 처방 등에 대해 자문단의 코멘트도 듣는다.
◇ 환자 호응도 높기 때문에 높은 재진율 보여
서울센터 개소 2주차를 맞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내 확진자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한의진료 현장은 여전히 분주했다. 실제 한약을 복용한 코로나19 확진자 사이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자, 추가 증상이 없어도 면역력 회복 차원에서 한약을 계속 복용하려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오후 6시 현재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 누적 진료수는 전일 대비 290건 증가한 6179건이다. 이중 지난달 31일 개소한 서울 상담센터의 누적 진료수는 1618건이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세인 점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수치다. 특히 재진 건수는 전일 대비 255건 늘어난 4515건으로 가장 많았고 초진은 35건 추가돼 1664건이 됐다. 투약 관련 건수는 208건 늘어나 4002건을 기록했다.
박지은 예진 팀장은 "생활관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코로나 관련 증상을 주로 호소했던 대구 센터와 달리, 서울 센터는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들이 후유증에 대해 문의하는 건수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 예진·진료· 약제 파트로 나눠 효율 추구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달 31일, 대구광역시에 개소한 한의진료 전화상담센터를 서울시 강서구 소재의 협회 회관으로 이전한 뒤 현재까지 진료를 이어오고 있다. 확진자들이 ‘1668-1075’ 로 전화하면 전국 11개 한의대·1개 한의학전문대학원생이 참여 중인 '예진부'로 연결된다.
병원 입원이나 센터 입소 등 자가격리 경험이 있는 환자가 진료 대상이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한 뒤 예진을 마치고 전산상의 진료 대기 목록에 이름을 올리면, 대강당의 진료팀인 한의사가 이들 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한의 진료를 통해 확진자는 현재 몸 상태를 면밀하게 검진받은 뒤 한약을 처방받게 된다. 통화는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까지 이어진다. 한의사가 처방한 처방전이 '약국부'로 넘어가면, 한의대생으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이 처방전에 맞게 약제들을 분류한다. 10일 오전 10시 현재 가미귀비탕, 옥병풍산, 갈근해기탕, 은교산, 경옥고, 자음보폐탕 등 20여 종의 한약이 마련돼 있다. 처방된 약제는 '뽁뽁이'와 함께 상자에 담겨 배송 준비를 마친다. 예진부터 진료 및 처방, 약제 배송까지 한 자리에서 처리하는 원스톱 서비스인 셈이다.
다만 10일 현재 확진자들이 격리돼 있는 전국 42개 시설과 병원 중 한약 택배를 받는 곳은 21곳에 불과하다. 입장이 불분명한 3곳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한약 택배 수취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며칠간의 예진업무 참여였지만 전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코로나19 확진자들의 고통 호소는 여전한데 그들과 가까이가서 진료할 수 없는 시스템을 최대한 개선한 것이 이 비대면 진료인 ‘전화상담센터’ 운영이다.
이 곳에 전화를 한 환자들은 그나마 한약을 받을 수 있는 곳에 격리됐거나, 한약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기에 가능하다. 의료는 보편성을 지닌다. 그것은 한의가 됐건, 양의가 됐건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환자들의 애끓는 호소가 쉽게 떠나지 않을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