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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30일 (목)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있다?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있다?

[편집자 주] 최근 양의계가 묻지마식 한의약 폄훼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과거 양의계가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법’, ‘귀신을 보는 법’이 있다며 동의보감과 한의약의 가치를 깎아내리자 이를 반박했던 논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장인수 우석대 한의대 교수의‘동의보감의 영인은형 해석에 대한 고찰’(대한한의학회지 2016;37(1):53-61.)이란 논문인데 장 교수로부터 동의보감에서 말한 ‘투명인간이 되는 법’, ‘귀신을 보는 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어봤다.




안과 질환인 안중농수(眼中膿水)를 치료하는 방법

최초 한글판 동의보감서 ‘모습을 감추게 하는 법’으로 쓴 탓 커




2109-18-11613년에 출판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한국 한의학의 대표적인 서적이며 16세기의 한·중·일 의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 동의보감에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나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의보감은 철저한 실용서적인데 투명인간이 되는 법이 나온다니 진짜일까? 궁금증이 생겼다. 찾아보니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내용이 실제로 있었다.



[동의보감] 잡방문(雜方門)

‘隱形法: 白犬膽和通草桂心作末 蜜和爲丸 服能令人隱形 靑犬尤妙 (本草)’

‘은형법: 흰 개의 쓸개와 통초, 계심을 가지고 가루를 내어 꿀과 함께 환제를 만들어서 복용하면,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은형하게 하며, 푸른 개는 더욱 좋다 (본초)’



일반적으로‘은형’이란 ‘모습을 감추다, 숨기다, 형상이 사라지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과거와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스텔스 전투기라고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비행기를 중국어로는 ‘隱形 戰鬪機’라고 한다.



따라서 이 문장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습을 감추게 한다’, ‘모습을 숨기게 한다’, ‘형상을 사라지게 한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의문이 든다.



사용한 약재를 보자. ‘개의 쓸개’와 ‘통초’, ‘계심’이다. 고서에 나오는 통초는 오늘날 ‘목통’이라는 약재며, 계심은 육계(계피)를 말한다.



투명인간이 되는 약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은 이 문장 맨 뒤에 나오는 말이다.



“파란 개가 더욱 좋다”



파란 개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동의보감에 나오는 출전을 조사해 봤다. 참고문헌에 ‘본초(本草)’라고 쓰여 있다. 한의사들은 ‘본초’라고 하면 ‘신농본초경’이나 ‘본초강목’을 떠올리겠지만 동의보감에서 나오는 ‘본초’는 송대 당신미가 저술한 ‘경사증류비급본초’(1082년 初刊, 이하 증류본초)를 말한다. 증류본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증류본초]

膽去眼中膿水. 又白犬膽,和通草、桂爲丸服,令人隱形. 青犬 尤妙.

‘(개의) 쓸개는 눈 속의 농수(고름)을 제거한다. 또한 흰 개의 쓸개와 목통과 육계를 가지고 환을 만들어 복용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형체를 안보이게 할 수 있다. 푸른 개가 더욱 좋다.’



‘膽去眼中膿水’. 개의 쓸개는 눈 속의 고름을 제거한다는 내용이다.



‘증류본초’ 역시 다른 서적에서 이 문장을 인용해왔는데 당대(唐代)의 ‘맹설(孟詵)’이 저술한 ‘식료본초’(721-739년 刊行)에 증류본초와 동일한 문장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의보감의 은형법이라고 하는 처방이 ‘안중농수(眼中膿水)’를 제거하기 위한 처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중농수는 무엇일까?



2109-18-2안중농수는 눈에 고름이 차서 고이는 안과질환으로 오늘날의 전방축농(hypopyon)을 포함하는 안구의 염증성 질환을 말한다.



안구 앞쪽에 염증이 생겨 고름물이 고이게 되면 당연히 앞을 보는 시력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눈도 아플 테고 눈 앞이 흐릿해지면서 사물의 형체가 부옇거나 흐리게 보이게 된다.



그렇다면 은형법이란 모습을 숨기는 법이 아니라 눈 수정체 앞에 고름이 차 오르면서 시야를 막고 흐릿하게 보여지는 다시말해 눈 앞의 형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안과질환 치료라고 보게 되면 앞에서 제기했던 ‘파란 개가 더욱 좋다’는 문장의 의문도 풀린다.



오행배속(五行配屬)에 따르면 눈은 오행 중에서 木에 해당되며 청색은 木의 기운에 속한다. 따라서 눈에 발생하는 目疾患에는 白犬(흰 개)보다는 靑犬(푸른 빛이 도는 개)의 쓸개가 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靑犬에 관한 의문점에 가장 확실한 해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은형법의 처방 약재들(견담, 목통, 육계)은 모두 염증에 사용되는 약재들이다.



견담(犬膽)의 경우 본초강목에서 눈을 밝게 하고, 장중농수, 목중농수를 치료하며, 이출농(耳出膿) 등을 다스린다고 해 눈, 귀의 염증성 질환 등에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목통(木通 Akebia quinata DECNE)도 akeboside, betulin, myoinositol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강한 이뇨작용과, 항염증작용 그리고 gram 양성균 및 음성균에 억제작용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淸熱解毒의 강한 효능이 있어 이비인후과 및 안과 질환의 급성 감염성 염증에 활용되며 급성 결막염이나 외이도염 등에도 활용된다.



육계(肉桂 Cinnamomun cassia PRESL)는 동의보감에서 九種心痛, 破血, 止腹內冷痛, 一切風氣 通九竅利貫節, 益精, 明目, 暖腰膝 除風痺 등의 적응증에 사용한다고 언급돼 있다.



또 황색포도구균, 고초균, 리스테리아균은 물론 녹농균, 살모넬라균에도 강한 항균활성을 보이며 여러 염증성 매개물질에 대한 억제작용으로 항염증작용을 보인다.



이제 우리는 동의보감에서 말한 은형법이 눈에 고름이 차서 시야가 흐릿해지는 안과 질환인 안중농수를 치료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왜 동의보감에서는 기존의 문헌에 있었던 안중농수 치료법이라는 말을 빼버렸을까?



오늘날에는 안경이 보편화돼 있고 콘텍트렌즈는 물론 라식, 라섹과 같은 시력교정 수술이 흔하다. 하지만 조선 중엽은 어땠을까? 안경은 들어와 있었지만 극소수의 귀족층 만이 안경의 존재를 알았다. 자외선 노출이 오늘날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백내장도 많았을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30대 후반이 넘어서면서 대부분 시력이 저하되고 시야를 가리게 하는 비문증(myodesopsia), 시야흐림(blurred vision) 등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게 되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안중농수를 치료해서 시야가 어른거리는 증상을 낫게 하는 처방을 사용해 비염증성 안과질환을 비롯한 일반적인 시력 저하와 노안(老眼)으로 인한 ‘시야흐림’까지 모든 증상에 적용을 넓히고자 잡방문(雜方門)에 넣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은형이라는 애매한 말은 동의보감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다. 당나라 시절의 맹설이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증류본초에서도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옛날에는 성현이 저술한 책의 내용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해 쓰는 것이 당연한 전통이었다.



또 약간 모호하고 현학적인 단어를 쓰기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당나라때 유래된 모호한 단어를 송나라때 책에서 다시 반복하고 그것을 동의보감에서 다시 그대로 인용했다.



특히 지금처럼 투명 인간까지 오게 된 것은 1960년대에 최초 한글판 동의보감이 나오면서 별다른 고민 없이 모습을 감추게 하는 법이라고 쓰게 된 탓이 가장 크다고 본다.



다음 호에서는 ‘귀신을 보는 법’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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