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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30일 (목)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82)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82)

“의학의 방향을 정립하자”



金海秀의 醫方大要論



kni-web[한의신문]金海秀 先生(1858~?)은 학술과 교육에 헌신하여 근현대를 빛낸 위대한 醫人이다. 그는 多作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술로 『醫方大要』(1928년 간행), 『圖解運氣學講義錄』(1928년 간행), 『萬病萬藥』(1930년 간행), 『大東醫鑑』(1931년 간행) 등이 있다. 1915년 전국 단위의 한의사 단체인 全鮮醫會가 만들어질 때 총무로 활동하였다. 그의 학술사상은 1928년 간행된 그의 저술 『醫方大要』의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무릇 醫方大要의 뜻을 알고자 하는 자는 먼저 醫要의 이름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天地干支와 陰陽運氣와 主客加臨과 天符歲會와 司天地南北政은 天地陰陽의 造化萬世의 바뀌지 않는 方이다. 五勞七傷과 三部九候와 狂渴妄譫과 吐利靜踡과 憎寒壯熱은 人身의 虛實變化의 時日의 迭遷의 方이다. 그 三才에 간여하는 자가 곧 사람이다. 醫가 方向이 없다면 흐리고 어두운 것이 마치 滄海에서 나루터를 잃은 것과 같을 것이고 높고 가파른 것이 마치 山嶽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을 것이다.



詩에서 정성이 바야흐로 하늘 가운데 있다고 하였으니 자못 쓰임이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聖人들이 生民들의 夭札을 크게 번민하였다. 伏羲氏는 天元玉冊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神農氏는 百草를 맛보아 本草를 만들었고, 黃帝氏는 아홉 신하와 더불어 번갈아가며 서로 問答하여 靈樞와 素問을 지었으니, 이것이 聖醫의 方이었다. 秦漢 이후로 경전에 통달하고 역사를 널리 이해한 醫聖인 張仲景이 傷寒論을 지었고, 隋唐 사이에 諫議의 관직을 고사하고 太白山에 은거하여 정기를 연마하고 도를 기른 孫思邈이 千金方을 지었으니, 이것이 儒醫의 方이다.



秦나라 盧國의 渤海郡 鄭人인 秦越人이 長桑君의 傳해줌을 얻어서 兪跗의 術을 알게 되어 切脈, 望色, 聽聲, 寫形에 의지하지 않고서 병의 처소를 말하여 소문과 영추의 뜻을 발하여 밝혀 問答을 가설하여 八十一難經을 지었다. 漢末 沛國의 醮人 華陀는 五經과 養性術에 통달하고 方脈에 정통하여 中臟經內照法을 지었으니, 이것은 明醫의 方이다. 世醫와 德醫들이 仙禪道術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三世와 四家의 책같은 것에 이르러서는 읽지도 않고 깨달지도 못한다면 또한 大方家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2055-33-1秦皇의 세대에 태워져서 없어지지 않은 것은 醫藥의 책들이었고, 漢武의 시대에 어긋난 바를 후회한 것은 작은 병에 대한 탄식이었으니, 의학의 大要가 重且大함이라. 現代에 西術이 東漸하여 소의 혈장을 열어서 종두를 베풀어 한명의 어린 아이도 얼굴에 곰보가 없게 되었으니 마취를 시행하여 해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생되었다. 내가 일찍이 路齋에 從仕하여 西昌陵에 거처할 때에 潛心으로 玩究해보니 이른바 녹봉은 自家의 一身을 救活하는 일에 불과하고 또한 평생 동안 관직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決然히 떨쳐버리고 널리 백성들을 구제할 책무를 도모하여 하여금 壽域에 오르도록 하나의 醫院을 개설하여 모든 병에 약물을 시험하니 과연 잘못되는 경우가 없었다.



이에 仁術이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감히 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그러하나 獨行과 獨善도 또한 仁人君子의 博愛普施의 本義가 아니다. 그러므로 뭇 책들을 蒐集하여 뭇 議論들을 널리 채집하여 강령이 되는 것들을 잡고 요체가 되는 것들을 제기하여 그로써 論으로서 그 固陋함을 잊게 하는 것을 도모하여 若干의 著述을 한번 두루하여 醫方大要라고 명명하였다. 이 분야에서 참람되어 죄가 되는 것을 피하지는 못하겠으니 나중의 군자들이 한번 보고 한번 시험할 것을 기다리고자 한다. 運氣의 主客, 疾病의 死生, 單方의 效能, 針灸의 經驗 내지는 摩擦導引, 醫藥에서 毒藥劇藥의 取捨, 音字判明 등을 조문을 따라서 설명하였으니 신명스럽게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서 달려 있는 것이라.”(필자의 번역)



위에서 알 수 있듯이 金海秀 先生은 醫方의 ‘方’의 의미를 “天地陰陽의 造化萬世의 바뀌지 않는 方”, “人身의 虛實變化의 時日의 迭遷의 方”, “聖醫의 方”, “儒醫의 方”, “明醫의 方”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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