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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2일 (토)

초창기 개화파의 개척자 한의사 유홍기

초창기 개화파의 개척자 한의사 유홍기

의역관 집안의 유홍기(劉鴻基)

황연규 원장(성신한의원)



漢陽(江陵)劉氏 佐郞公派 劉鴻基(大致)선생님은 字가 聖逵, 號가 大致, 大癡, 如如, 磅礴齊로서 극소수 논문과 언론에서 “大逵, 鴻奎”라는 잘못된 고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광린의 『개화당 연구』와 『조선불교통사』, 김의환의 여러 논문, 오경석(『침구경험방』허임의 제자 오정화의 후손)의 아들 오세창, 서재필의 문서와 종손 유문식의 서신에서 그가 강릉유씨 좌랑공파(한양유씨)임을 확인하였다.



서방에서 한국으로 정조때 전해온 해부학서적 『태서인신설개』, 최한기의 일본으로부터 가져온 해부학서적 『전체신론』, 그리고 서양의서 번역판 등의 한국으로 전래와 실학파 최한기와 김정희 그리고 의역관 집안의 유대치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던 중에 유대치에 관한 잘못된 역사고증을 바로 잡기위해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먼저 자료를 제공해주신 한의계 집안 후손인 유태균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유대치 집안은 강릉유씨 좌랑공파의 의역관 출신 300여명의 이름을 열거하지 않아도 『漢陽劉氏世譜』와 조선시대 과거와 관련된 『사마방목』에 남겨져 있다. 먼저 그가 ‘한의사’란 내용은 그의 친구인 亦梅 오경석이 죽기직전 중풍에 걸렸을 때 그를 치료한 내용으로 알 수 있다.



일본어판 『김옥균전』에 한의사로 쓰여 있으며 개화파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인 만나 직접 무역을 하며 막대한 이윤을 남긴 것으로 도움을 준 일본인 승려 奧村円心과 『조선국포교일지』에 나와 있다. 또, 그의 부인도 의역관 집안으로 혜민서에서 의업을 했던 처조부 최기환이 있고, 형의 부인 집안에도 醫科正 최계진이 있으며 그의 집안 내력은 대대로 의역관 집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홍기에 대한 오류의 교정과 바른 역사인식



먼저, 『승정원일기』에 유홍기를 1882년 11월 副司勇으로 기용할 때 “幼學 유홍기”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중인이 아닌 양반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당시 임오군란 이후에는 중인의 신분이지만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였고 용어도 幼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전에 기용된 오경석의 아들 오세창은 1886년 박문국주사로 처음 기용되면서 “幼學 오세창”으로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홍기는 減省廳 副司勇, 司勇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째, 『김옥균전』과 여러 논문에서 나이가 오경석과 유대치가 동갑인데 ‘稍少’라고 하여 오경석을 나이가 많다고 표현한 부분이다. 오경석은 1831년 1월 21일생이며 유홍기는 1831년 10월 14일이다. 이는 같은 중인출신으로 아는 집안의 경우 동갑에도 서열을 따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셋째, 그의 가족관계이다. 『한양유씨세보』에는 사위가 2명(이승준, 김효철)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김옥균전』과 『서재필 서신』에 기록된 김영찬이 없다. 그래서 혼란을 주는데 三和府尹을 지내고 청일전쟁때 3년간 투옥된 김영찬은 그의 외손녀의 남편인 秦學(구한말 여성운동가)의 ‘풍기진씨 산음공파’ 족보에 진학주의 부인의 外祖를 “司勇 漢陽劉氏 劉鴻基’라고 되어 있고 경숙교수의 박사학위(89년) “대한제국 말기의 여성운동의 성격연구”에 밝혀져 있다.



또, 아들에 관한 문제는 손자를 형의 집안에서 系子하였고 아들의 생년이 없고 며느리도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찍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1948년 그의 종손 유문식이 서재필에게 서신을 보낸 것이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제시대 예방주사를 놓았던 한의사들은 현재는 왜 못하나?



조선 후기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는데 공헌을 하였던 의역관들은 천주교 聖人(유진길)의 의역관 집안인 한양유씨 집안처럼 처음에는 중국을 통해 서양의학을 전래 받았지만 ‘황사영 백서사건’이후 책들은 불태워지고 일본을 통해 서양의학 서적을 전래했음을 최한기와 이규경의 책을 통해 볼 수 있다.



유대치는 불교에 해박하였고 승려 이동인, 탁정식과 개화파의 도서관 역할을 한 봉은사는 쇄국정책 당시 일본으로부터 서양문물을 몰래 가져오는 산파의 역할을 하였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그의 죽음에 관한 여러 학설처럼 200여년 전에 서양의학을 받아들여 사용한 한의사들과 다른 현실에서 서양의학적 내용과 서양기구를 한의학적 시각에서 응용하고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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