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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7월 05일 (일)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8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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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晴崗 金永勳 선생 九旬壽筵의 모습



1971년 5월17일 한의계의 거성이신 晴崗 金永勳 先生의 90세를 기념하는 九旬壽筵이 서울 필동 코리아하우스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많은 가족들과 친지, 제자들이 청강 선생의 令息인 金琦洙 先生(당시 外務部 과장)의 정성어린 준비로 모일 수 있었다. 이 때 찍은 사진이 『醫林』 제87호의 2면에 게재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할 것이다.



1971년 9월에 나온 『醫林』 제87호에는 이 기념식의 모습과 주인공인 청강 김영훈 선생의 행적에 대해서 李鍾馨 先生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를 李鍾馨 先生의 목소리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청강 선생은 한의계가 수난과 역경을 겪었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대한민국 초기 약 60여년간 한의학의 존립과 부흥을 위하여 활약하신 한의계의 원로이시다. 일찍이 약관 24세(서기 1906년) 대한제국 太醫院에서 실시한 同濟醫學校 敎授試驗에 합격하여 다년간 도교수로 봉직하셨다가 한일합방 후 낙원동에 3층 건물을 세우고 普春院을 개설하셨다. 합방 초기 왜정이 한의학말살정책을 강행하자 한의들의 단결을 강조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1916년 全國醫生大會를 개최하여 단합된 힘을 과시하여 한의학 말살을 저지하였다. 경기도의학강습소의 설립에 기여하여 여기에서 강사로 후학 양성에 이바지하셨고, 양방병원에만 국민의료를 치중하자 이를 항의하여 1930년 官立避病院(舊 巡和醫院)에 한방과를 설치케 하여 그 관리를 맡으셨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한약재의 소통이 곤란해지자 약재의 조달 배급을 주선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셨다. 이 약재 배급의 이익금으로 한의회관(낙원동 소재로 당시 시가 250만원)을 구매했었다고 한다.



8.15 해방 후 후학 양성을 위해서 한의학 교육기관의 설립에 앞장 서 그 설립 위원장이 되셨고, 드디어 東洋大學館의 인가를 받자 명예학관장 및 교수를 역임하셨다. 이어서 동양의대, 서울한의과대학에 이르기까지 자주 강단에 서시기도 하셨다. 대한민국 건국 초에는 정치요로 및 사회명사들에게 한의학의 부흥을 역설하여 국민의료법에 한의사제도를 법제화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하셨고, 처음으로 한의사국시가 시행될 때 몇 회에 걸쳐 그 시험위원을 맡으셨다. 이러한 공헌에 힘입어 1963년 8·15 광복 기념식에서 한의계 처음으로 영광스러운 국민훈장을 받으셨던 것이다.



선생은 남달리 호학하시어 東西醫學에 능통하셨고, 동서고금문예에도 조예가 깊으셔서 소장하시는 각종 의서들만도 천여권을 헤아리고 그 밖에 洋, 漢, 日書 등 2천여권을 소장하고 계신다. 또한 선생은 普春院 개설 초기부터 6·25 전까지 약 40년간 진료하신 진료부를 한 장도 빠짐없이 모아두셔서 이를 집계하여 임상진료통계표를 작성하셨는데, 일천권이 넘는 이 진료부는 후학들의 훌륭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지난 1966년 동아일보사에서 창간 45주년 기념으로 선생에게 순돈잔 한 벌을 기증하였는데, 이는 선생이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한 장도 빠짐없이 애독보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선생은 한의계뿐 아니라 일반학계 특히 儒學界에 널리 알려져 구한말 尹用邦, 閔永徽, 李根澤 등 재상의 총애를 받으셨고, 儒學者 金潤東, 金舜東 諸氏와 친교가 두터우셨다. 다년간 舊皇室典醫로 봉직하셨고, 朝鮮醫生會長, 成均館獻官, 光山金氏宗會長 등 많은 직책을 맡으신 바 있다.



<- 1971년 ‘의림’ 제87호에 나오는 청강 김영훈 선생 구순수연식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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