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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4일 (월)

“대한제국 의료체계는 한의사가 중심이었다”

“대한제국 의료체계는 한의사가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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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서 폐절 폄하 시작, 통감부 설치 후 탄압 본격화

을사늑약 이후 자주적인 이원적 근대의료체계 구축 노력 ‘수포’





수천년간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오고 있는 전통의학인 한의학. 하지만 개항 이후 한의학은 여러 가지 사회적·사상적 조류의 변화가 모티브로 작용하면서 소외되어 왔으며, 일제에 의해 한의학이 폐절되고 폄하되기 시작한 1905년 통감부 설치 이후 한의학의 탄압은 본격화 되었다. 특히 ‘의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전통의학인 한의학을 지칭했지만, 100여년 전 서양의학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의학’이라는 용어는 서양의학이라는 용어로 전의되었고, 전통의학인 의학은 ‘한’이라는 글자가 첨가된 ‘한의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듯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으며, 이러한 제도나 용어 등의 변화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각종 법과 제도에서 한의학에 대한 소외를 낳게 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韓國醫史學會誌’ 제26권 제2호에 게재된 ‘근대로부터 건국 초기까지의 의약체계 법령 고찰-이원적 의약체계 정립을 중심으로’(엄석기·강봉석·권순조)라는 논문에서는 근대 이후의 의약제도 구축에서부터 건국 초기의 현대 의약체계 구축시기까지를 대상으로 관련한 법규의 연혁과 특징 등을 한의약제도를 중심으로 고찰, 정립과정상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문제점과 영향 등을 분석·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논문에서는 “현행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법규들은 이원적인 의료체계와 약사체계를 규율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의료체계와 근현대에 도입되어 보편화된 근현대 생의학체계를 모두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전통의학의 가치와 의의를 법률과 제도를 통해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의약 관련체계는 전 세계적으로 생의학 기반의 의료와 약사 체계가 보편화되어가는 현황과 비교할 때 상당히 독특한 체계로서 보편성과 고유성, 다양성이 결합하는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했다는데 긍정적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이러한 독특한 보건의료체계로 인해)생의학 지식과 전통의학 지식의 끊임없는 충돌로 인한 의료소비자의 혼란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관련 직능단체간의 직능영역에 관한 충돌을 지속적으로 유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의 부정적인 견해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논문에서는 우리나라의 현행 보건의료법규들은 근대 이후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미군정기 및 건국 초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4대 법전에 근거한 전통제도의 혁파 △대한제국의 이원적 의료체계 시행 △일제강점기에 시행되었던 일본법에 의한 전통의학의 말살 시도 △건국 초기의 성문법 중심 대륙법체계 정립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가 정립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에서는 △대한제국의 이원적 의료체계 관련 법령 분석 △일제강점기의 의약체계 관련 법령 분석 △미군정기의 의약체계 관련 법률 분석 △건국 초기 의약체계 관련 법령 제정 분석 등으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우선 ‘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등의 4대 법전에 근거해 유지된 조선시대 의료제도에 의하면 중앙의료기구로는 내의원·전의원·혜민서의 三醫司와 제생원·활인서 등이 있었으며, 특수의료기구로는 치종청·시약청·의약청·산실포 등이 있는 등 의료제도와 교육제도, 의사선발과정을 통해 독립적인 조선의료체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조선의료체계는 17세기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된 서양의학의 철학적 학문의 영향과 1800년 중반부터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된 서양의학의 임상의학적 영향 등을 흡수하며 제도화하여 발전하려는 자주적 경향이 19세기 전후부터 나타나는데, 1885년 혜민서 혁파로부터 시작한 전통적 의료체계의 혁신과정과 1894년 갑오개혁 이후의 근대적 보건의료체계 구축 과정 등을 통해 구체화 된다.



이러한 자주적인 노력은 대한제국에서 실시된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의 이원적 의료체계 구축 시도로 종합되는데, 대한제국은 1900년 1월17일 반포된 관보 제1473호에 실린 내부령 제27호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최초로 근현대 법규와 제도상에서 나타난다. 내부령 제27호의 ‘의사규칙’ 등은 혜민서 혁파에서 시작하여 ‘의학교관제’ 시행까지 일련의 자주적 노력들을 종합하여 마침내 근대식 의료제도를 시행함을 공포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내부령 제27호는 △의사규칙(제1조〜제7조) △약제사규칙(제8조〜제22조) △약종상규칙(제23조〜제24조) △벌칙(제25조〜제27조) △약품순시규칙(제28조〜제32조)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의사-약제사-약종상 등으로 구성되는 근대적 의약 직능체계의 관리감독에 관한 것을 법규화한 것이다.



의사규칙은 1894년 폐지된 종래의 의사고시제 이후 새로 제정된 의료인 신분제도로서, 의사의 정의 및 자격획득, 인허 수속과 인허증 재발급 등을 규정한 국가법령이다. 특히 제1조와 제2조에 의하면 의사는 전통의사를 의미하되 의과대학과 약학과의 졸업자로서 국가시험을 통과하여 면허를 받은 자 혹은 종래의 의료인으로써 면허를 받은 자를 가리키고 있다. 또한 당시의 의학교육제도가 1899년 반포한 대한제국 칙령 제7호 ‘의학교관제’를 통한 근대 서양의학 교육제도 및 1904년 설립된 동제의학교에 의한 전통의학 교육제도를 통해 교육제도의 병행을 시도했으며, 이와 함께 기존의 전통의료인에게 소정의 절차를 통하여 의사제도상의 면허를 부여한 점에서 유추해 볼 때 이 당시 의료제도는 전통의사 위주였고, 서양의사 제도를 병행한 체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한제국에 의한 근대의료제도로의 혁신과정은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 그 추진력이 상실됐으며, 1907년 3월10일 칙령 제9호에 의한 광제원 폐지 및 ‘대한의원관제’ 공포를 통해 국가의 공적인 의료체계에서 전통의료체계를 폐지하게 되고, 이후 대한제국에서의 전통의사는 궁내부소관 의사관제로만 그 명맥이 유지됨으로써 자주적이었던 이원적 근대의료체계 구축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자주적이었던 이원적 근대의료체계 구축 노력은 관립병원의 동서의 병행제도와 전통의학과 서양의학 교육제도의 병행을 통한 전통의료체계의 계승 노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관립병원의 동서의 병행제도는 대한제국에서 1899년 설립한 내무부 직할병원인 ‘내부병원’에는 전통의사인 대방의(大方醫) 2명과 침의(鍼醫) 1인이 있었으며, 광제원으로 개칭한 후인 1900년에는 대방의 3인(향약의사 1인 포함)과 침의 1인이 있었고, 1901년 직제에도 한약소(漢藥所) 4인이 있었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07년 일제에 의한 대한의원관제 개편에 의해 전통의사 직제는 국립병원에서 모두 폐지되었다.



또한 교육제도의 병행은 1885년 혜민서와 활인서 혁파 과정에서 혜민서에서 이뤄지던 전통의사 양성과정도 폐지됨으로써 국가에 의한 전통의사 양성제도가 없어졌던 것이 1904년 동제의학교가 설립되면서 대한제국에 의한 근대적인 전통의사 양성 교육기관이 부활했다. 그러나 을사늑약 후 대한제국의 지원금이 끊긴 이후에는 고종황제의 내탕금에 의해 운영되다가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인 1907년 폐지됨으로써 국가에 의한 전통의사 양성제도는 다시 없어지게 된다. 결국 대한제국에 의한 근대의 전통의사 양성 노력은 관립기관 교육을 통하여 시도되었으나 한일한방과정에서 폐지되었으며, 이후로는 민간에 의한 사립기관 교육을 통한 전통의사 양성만이 이뤄지게 된다.



한편 이 연구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주요 사업인 ‘<신동의보감> 편찬사업-역사문헌 증보와 현대한의지식 통합’의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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