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의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부교수 김상호
[한의신문] 8월 3일 경북 포항에서는 공공근로에 참여하던 70대 남성이 도로변 쓰레기 수거 작업 뒤 어지러움을 호소하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당시 포항 남구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정확한 사망 원인은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은 폭염 속 야외노동이 노인에게 얼마나 큰 위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26년 여름 폭염은 이미 ‘더위’를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의 단계로 들어섰다. 8월 초 수도권 40% 이상 지역에는 올해 새롭게 도입된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폭염중대경보는 올해 새로 도입된 가장 높은 단계의 폭염특보다. 하루 최고 체감온도가 38℃에 이르거나, 실제 기온이 39℃ 이상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서울에서는 8월 5일 기준 14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졌고, 밤 최저기온도 29℃ 안팎까지 올라 밤에도 몸이 회복되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른 온열질환자 및 추정 사망자도 계속 신고되고 있다. 폭염은 노인, 야외노동자, 농어촌 주민, 독거노인처럼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이다.
폭염은 조용히 건강을 위협한다
폭염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극한 더위가 반복되며 기후재난이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폭염을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난 중 하나로 본다. 다만 폭염 피해는 태풍이나 홍수처럼 눈에 바로 드러나지 않아, 실제 위험보다 가볍게 받아들여지기 쉽다.
실제로 폭염은 열사병·열탈진 같은 온열질환을 일으킬 뿐 아니라 탈수, 급성신손상, 심혈관질환 악화와도 직접 연결된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이어지면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렵고, 고온 노출은 호흡기 증상뿐 아니라 불안, 우울, 자살위험, 정신건강 관련 의료 이용 증가와도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2026년 유럽의 폭염은 이러한 위험을 잘 보여준다. 6월 말 서유럽을 덮친 기록적 폭염 이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초과사망이 보고되었다. WHO 유럽사무소는 아직 여름 피해 집계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일부 국가 자료만으로 이미 열 관련 초과사망이 1만 명에 가까운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폭염의 피해는 이렇게 조용히 누적된다. 태풍이나 홍수처럼 건물과 도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더위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의 건강을 서서히 악화시킨다. 노인, 만성질환자, 야외노동자, 냉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폭염은 단순한 날씨 문제가 아니다. 보건의료체계가 반복적으로 대비해야 할 공중보건 위기다.
폭염이 바꾸는 여름철 진료실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여름철 진료실 풍경도 바뀌고 있다. 더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몸은 땀을 흘리고, 피부 혈관을 확장시키며, 심박수와 호흡수를 높인다. 이 과정에서 체내 수분과 전해질이 부족해지면 심장과 신장에 부담이 커진다.
이러한 부담은 특히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에게 어지럼, 두근거림, 무기력, 두통, 근육경련, 식욕저하, 소화불량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기 쉽다. 특히 습도가 높으면 땀을 통한 체온 조절이 어려워져 열 부담은 더욱 커진다.
열대야가 이어져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피로가 누적되고, 통증 민감도가 높아지며, 불안과 우울도 악화될 수 있다. 더구나 폭염으로 외출이 제한되면 환자의 내원이 어려워져 치료의 지속성과 관리에도 영향을 준다.
폭염은 환자의 기저질환, 복용 약물, 주거 환경, 수분 섭취, 수면 상태와 맞물려 몸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기후재난 시대, 한의진료의 역할
이제는 일상이 된 폭염을 한의진료의 한 변수로 적극 고려해야 한다.
첫째, 여름철 피로, 어지럼, 두근거림, 불면, 식욕저하를 호소하는 환자를 볼 때 단순히 ‘더위를 먹었다’는 표현으로 넘기기보다 최근 폭염 노출 정도, 냉방 환경, 수분 섭취, 소변량 변화, 수면 상태, 야외활동 여부를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취약계층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노인, 심혈관질환자, 신장질환자, 당뇨병 환자, 정신질환자, 다약제 복용자, 사회적 취약계층은 폭염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셋째, 복용 약물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이뇨제나 일부 항고혈압제처럼 수분·전해질 균형에 영향을 주는 약, 항정신병약·항우울제·항콜린제처럼 체온 조절이나 어지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은 폭염 시기에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노인 환자는 한의의료기관에서도 자주 만나는 만큼, 폭염 시기에는 약물과 더위의 상호작용을 더 세심하게 확인해야 한다.
넷째, 내원 환자에게 수분과 전해질 섭취, 냉방 사용, 외출 시간 조절, 열대야 시 수면환경 관리, 복용 약물 확인과 같은 생활지도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기후재난 시대의 한의진료는 환자의 증상만이 아니라 생활환경과 기후 노출까지 함께 살피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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