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진짜 이유

기사입력 2026.03.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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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 웰빙 & 웰다잉 46
    “환자의 몸 상태를 더 깊게 파고들어 최적의 한의치료를 찾아내는 ‘정밀한 지도’가 되기를 바라”

    김은혜 교수님(최종).jpeg


    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주말을 맞아 KIMES(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이 행사를 방문해 한의계의 변화를 체감하며 꽤 벅찬 소회를 남겼던 기억이 선명한데, 올해 역시 활기 넘치는 현장의 열기는 여전했다. 


    아마도 작년 칼럼에는, 몇 년 전만 해도 한의사인 우리는 관심도 없었을, 혹은 피차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면 2025년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는 내용을 담았던 것 같다. 당시 혈액검사 기기를 파는 업체에 가서 ‘뭐가 궁금하냐’는 질문에 쭈뼛쭈뼛, “사실은 제가 한의사인데요...”라고 말하면 “아, 요즘은 한의사 선생님들도 많이 찾으세요! 아무래도 수가에 제한이 있으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채혈할 수 있는 기계를 많이 찾으시더라구요. 간수치 위주로!”라는 대답과 함께 나보다도 더 잘 아는 한의계의 니즈(needs)를 줄줄 읊어주는 담당자분들의 상담이 꽤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근거 있는 한의 치료의 지표로 사용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흘렀다. 이제 내 주변 원장님들의 90% 이상이 원내에 혈액검사 기기를 두는 게 당연해졌고, 초음파는 기본에 큼지막한 뇌파·맥파 검사기기들까지 들여놓기 시작했다. 1년 전만 해도 “간 수치 50인데 한약 먹여도 될까? 추천 처방 있어?” 같은 질문이 많았다면, 요즘은 혈액검사 결과지나 타 병원 기록지를 주루룩 보여주며 “이 환자 왜 이런 거야? 이 질환 때문인 거 맞아? 이걸 목표로 치료 잡아도 될까?”라는 질문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 


    단순히 ‘수치’를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 종합적으로 결과를 해석하고 환자를 스크리닝하며 이를 ‘근거 있는 한의 치료’의 지표로 사용하는 현장으로 바뀌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나 또한 그 변화를 몸소 느꼈고, 그와 동시에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만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되는 자리에 있게 됐다.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는 현대 한의학의 진료 현장에서 우리 학생들이 나갔을 때 너무 큰 ‘성장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넓게 해석하고 이를 ‘환자 중심 치료’로 이을 수 있는 내용들을 가르치는 데 참 많은 시간을 할애해왔다.

     

    김은혜 교수님2.png


    “아, 한의사분이세요? 그럼 굳이…” 


    사실 이번에 KIMES를 갈 때는 바쁜 일정 탓에 지난번 같은 설렘은 잠시 잊고, 별 생각 없이 터덜터덜 들렀던 것 같다. 지난 1년간 이런 풍경이 익숙해져서일까. 1년 전엔 ‘내가 이런 곳에 들어가도 되나?’ 싶은 소심한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다 들러보지 뭐’ 하는, 벌써 무언가에 적응해버린 무덤덤한 마음가짐이었다.


    전시장 안에는 한의사 맞춤형 강의를 해주는 업체들이 꽤 많아져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름대로 몇 가지 기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각 업체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설명을 들었다. 부스마다 돌아다니며 기기들을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다 예전부터 눈독들이던 기기가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꽤 눈을 반짝였는지, ‘대표’ 명찰을 단 분이 다가와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적은 양의 피로도 검사가 가능하고, 과정도 쉽고 결과지도 깔끔했다. 흥미진진하게 듣다가 “오,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요?”라고 한마디 던졌다.


    나는 ‘성능이 정말 좋다’는 의미로 말한 건데, 상대방은 ‘들었던 것보다’라는 말에 꽂혔는지 갑자기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 아무래도 저희 기기가 수가 대비 원가가 높다 보니, 검사할수록 손해라고 생각하시는 원장님들이 많긴 하죠.”


    아차 싶어 내 명찰을 보니 앞뒤가 뒤집혀 있어 나의 직책과 직종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쓴 물을 삼키며 “아. 저는 한의사라서 수가는 일단 신경 안 써도 되는 부분이긴 해요.”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의의로 더 반가워하며 “아, 한의사분이세요? 그럼 굳이 이렇게 할수록 손해인 기계까지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간수치만 확인하셔도 충분하니까, 최대한 카트리지 싸고 가성비 좋게 사용할 수 있는 이 기기를 더 추천드려요.”라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소비자로써의 마음이 싹 가시며, 1년 전 KIMES에 처음 방문한 한의사로서의 그것이 스윽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평소의 나였다면 별 타격이 없었겠으나, 왠지 모르게 ‘방금 이 말을 내 학생들이 들었다면, 저 소리를 듣고 있는 애들을 보는 게 좀 속상했겠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며 더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한의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혈액검사든, 초음파든, 어떤 의료기기든 이것을 단순히 최대한 간단하고 쉽게 배제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것인지, 혹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정확한 한의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감별 진단 용도로 활용해 볼 것인지는 개인적인 진료의 권한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지켜본 바, 설사 요즘의 시류와 여론이 어떻다 한들, 지나치게 한 쪽으로 몰리면 생각보다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한의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속에 숨은 타인의 낮은 기대치가 우리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손에 쥔 도구들이 단순한 ‘면피용’이 아니라, 환자의 몸 상태를 더 깊게 파고들어 최적의 한의치료를 찾아내는 ‘정밀한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진짜 이유이자, 다음 세대 한의사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당당한 전문성일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이렇게 훌륭한 한의치료 도구들을 현대적으로 잘 써먹기 위해, 혹은 정말로 환자 중심의 윤리적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없이 연구하는 분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의진료의 질적·양적 영역 확대를 위해 손에 쥐어진 도구들을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그 치열한 마음들이 모여, 결국은 우리 한의학의 더 넓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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