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윤성찬)는 9일 국토교통부, 소비자단체, 손해보험협회 관계자 등과 함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하 자배법)’ 하위법령 개정안과 관련한 간담회를 갖고, 자배법 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즉각적인 철폐와 더불어 충분한 의학적 근거를 통한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 2월 김윤덕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장관이 직접 한의계 및 소비자단체, 손보협 등의 의견을 듣고자 제안된 자리로, 한의계에서는 윤성찬 회장과 이진호 대한한방병원협회 부회장, 정희원 원장이 참석했다.
이날 윤성찬 회장은 “자동차보험의 부정수급 문제를 개선키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교통사고 상해등급 12∼14급 환자의 치료기간을 8주로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절대로 해법이 될 수 없다”면서 “실제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는 12∼14급 환자의 약 40%는 8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임상적 중증 환자인 만큼 8주라는 기간으로 일괄 제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운을 뗐다.
치료 중단된 환자들…건보재정 부담으로 이어져
윤 회장은 이어 “영국의 경우는 최대 24개월까지 구간을 나눠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치료 및 배상을 하고 있는 실정에서, 8주로 치료기간을 제한한다면 교통사고 환자들이 피해를 입는 제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면서 “더욱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환자들이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중단하게 된다면, 결국 그 환자들은 건강보험으로 진료받게 될 것이며, 이는 건강보험재정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윤 회장은 “정부가 편향적이고 왜곡된 거대 보험사의 통계만을 기준으로 판단해 정책을 추진한다면, 국민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아울러 추가적인 치료를 받기 위한 행정적인 부담으로 인해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국민들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윤 회장은 왜곡된 통계에 기반하고, 사회적 논의 없이 진행된 8주 치료기간 제한의 정책 추진의 즉각적인 중단과 함께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해급수 체계로 대부분의 환자를 경상으로 분류하는 제도의 재검토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잘못된 상해급수 체계 바로 잡은 뒤 논의 시작해야”
윤 회장은 “2014년 상해급수를 변경해 9∼11급에 해당됐던 환자들을 12∼14급으로 만들어 버린 상황에서, 이제는 그 환자들의 치료 제한은 물론 향후치료비까지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정책 추진으로, 먼저 국민의 치료권을 박탈하고 있는 상해등급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실제 12급으로 분류되는 ‘회전근개 파열’ 중 부분 파열의 경우에는 수술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재활치료를 선택하는 환자들은 치료기간 더 길고, 더욱 고통을 받는 현실에서 단지 12급이라는 분류체계로 인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또 “2014년 상해급수 조정 이후 12∼14급 환자가 10배로 늘어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 12∼14급 환자가 늘었으니 치료기간을 8주로 제한한다는 것은 결단코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잘못된 상해급수 체계를 바로잡고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논의의 순서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상해등급의 결정 등 운영 부분부터 명확히 해야”
이와 함께 이진호 부회장은 “2023년 1월1일부터 12∼14급 환자가 4주 초과 치료할 경우 진단서를 제출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인이 12∼14급에 해당하지 않는 상병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사가 12∼14급으로 변경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 진단서를 내지 않을 경우에 지불 보증이 중지되는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국토부에서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8주 치료기간 제한에다 향후치료비 지급 중단까지 추가된다면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우선 상해등급을 결정하는 등과 같은 운영 부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부분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정희원 원장은 “일부 나이롱환자 및 부정수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 12∼14급 환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아넣는 제도의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떼며, △상해등급의 문제 △의료 현장에서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등을 제시하면서 현 자배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짚는 한편 ‘(가칭)상해급수 협의체’ 운영을 통해 상해급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밖에도 한의계에서는 이미 입원일수(수상일로부터 1주일 이내), 치료 횟수 등이 촘촘하게 제한돼 있어 ‘과잉진료’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인 만큼 일률적인 제한보다는 ‘핀셋 행정’을 통한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왼쪽부터 김윤덕 장관, 윤성찬 회장, 이진호 부회장, 정희원 원장.
“치료기간 결정, 의료인의 판단이 최우선돼야”
또한 소비자단체에서는 “의료인의 진료에 의한 판단이 아닌, 치료기간을 가해보험사가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의견을 제출하게 됐고, 치료기간은 당연히 의료인이 정확한 진단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미흡한 근거를 통한 12∼14급 환자의 일괄적인 8주라는 치료기간 제한은 보험사가 환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거나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비자단체는 금융소비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점과 함께 이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의 결여 문제도 함께 꼬집었다.
소비자단체는 “향후치료비 페지 등과 같이 금융소비자에게 중대한 사안이 입법예고에서 누락된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행위이며, 제도 변경시 환자가 동의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한 보완책이 전무하다”면서 “더욱이 이 같은 중차대한 문제가 국토부 입법예고에서 누락된 것은 국민 기만이며, 행정절차상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손보업계에서는 “일부 환자의 선지급 후 미진료 행태 등 도덕적 해이를 막아 보험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대다수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며 “이번 자배법 개정안을 통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충분한 치료를 보장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도적 사각지대 없도록 세밀하게 정책 설계”
이에 국토부는 “8주 기준 사향을 검토하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의학적 근거 등 구체적인 데이터 제시가 선행돼야 하며, 초기 입법예고안과는 달리 여러 차례의 법령 해석과 검토를 거쳐 치료 지속 여부를 보험사가 아닌 ‘공적 심의기구(제3의 공공기관)’에서 검토하도록 개정안을 수정해 공정성을 높였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어 “상해급수 체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협의체 구성 및 연구용역을 비롯해 서류발급 비용 보험사 부담, 검토기간 중 지급보증 등 한의계에서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사항들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 중에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동안 자배법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소통을 거쳐온 만큼 이제는 재정 건전화와 소비자 편익 사이에서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윤덕 장관은 “충분한 준비와 보완 대책 마련 없이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아울러 상해급수 체계의 개편과 관련해선 현실에 맞게 기준이 재정립될 수 있도록 이달 중 즉시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전문가 협의체를 가동하는 등 중증 환자가 경증 환자로 분류돼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국토부의 안과 한의계·소비자단체의 의견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며 “보험재정 절감보다는 단 한명의 환자도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정책을 세밀하게 설계해 나가도록 지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