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국립순천대 바이오한약자원학과 명예교수
((사)천수산약초연구회 부설연구소장)
[한의신문] 필자는 최근 중국 안궈(安國, 안국)시를 두 번 찾았다. 첫째는 경희사이버대학교 한방건강관리학과 재학생들과 그리고 또 한번은 대한한방고령자채록사업협회의 한약업사, 한의사, 한약사들과 안궈시를 방문했다.
이 도시에서 안궈약재도매시장, 안궈시중의약문화박물관, 안궈약용식물공원, 안궈삼칠삼용시장, 한방제약회사, 안궈디지털중약시장 등 다양한 곳을 다녀왔다. 이 글에서는 안궈약재도매시장(安國中藥材批發交易市場, 안국중약재비발교역시장)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안궈시는 과거 치저우(祁州, 기주)라 불렸으며, 베이징(北京)-톈진(天津)-스자좡(石家庄)을 잇는 삼각형의 중심에 위치한다. 베이징에서는 북쪽으로 약 250km, 스자좡에서는 남쪽으로 약 113km 떨어져 있다.
안궈의 약재산업은 북송 시대에 시작되어 명대에 발전하고 청대에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그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안궈는 ‘약도(藥都)’ 또는 ‘천하제일약시(天下第一藥市)’로 불리며 널리 알려졌다.
안궈의 약재가 얼마나 유명한지를 보여주는 옛말이 전해진다. ‘수레바퀴살이 중심으로 모이듯, 약재가 치저우(안궈의 옛 지명, 祁州, 기주)로 몰려든다’는 말로, 전국 각지의 약재상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안궈의 약재 재배 역사는 깊고, 명나라 초기부터 옛 지명인 ‘치저우(祁州, 기주)’에서 유래한 ‘기(祁)’자를 붙여 ‘팔대 기약’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2000년에 기개수(祁芥穗), 기의미(祁薏米), 기사삼(祁沙參), 기국화(祁菊花), 기백지(祁白芷), 기자원(祁紫苑), 기산약(祁山藥), 기화분(祁花粉)은 ‘신8대 기약(新八大祁藥)’으로 불리며 허베이성을 대표하는 우수 약재로 선정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8가지 약재는 식당과 관광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되고 있으며, 식물원에서는 이 식물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안궈는 정말 약재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안궈약재도매시장은 서울의 코엑스 같은 ‘안궈국제전시장’ 건물 안에 있다. 우리 일행이 시장에 들어서자, 한가롭게 쉬던 상점 주인들이 활기차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드넓은 1층 시장에 약재를 가득 담은 마대(麻袋)가 즐비한 모습은 훌륭한 사진 소재가 되어 주었다. 현대적인 건물과 달리 재래식으로 약재를 보관하고 판매하는 방식 또한 독특한 풍경이었다. 한가한 주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중국식 장기나 마작을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필자는 답사단 일행들에게 약재를 안내하면서 중간중간 직접 약재 사진을 찍어 기록했기에 이를 바탕으로 약재시장을 안내한다.
약재시장을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약재 중 하나는 바로 연교(連翹)였다. 주위에 연교가 많다보니 중국에서는 이를 많이 활용하는 것 같았다. 식약처의 의약품 공정서인 ‘대한민국약전’에 수록된 연교는 의성개나리 또는 연교(당개나리)의 열매다. 당개나리로도 불리는 연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지만, 중국 방문 당시 식물원과 약재시장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곳서 파는 연교는 당개나리로 쓰는 식물 연교의 열매이다. 청열약(淸熱藥)으로 활용하는 연교는 종기를 가라앉히고 뭉친 것을 풀어주는 작용을 가진다. 열매가 막 익기 시작하여 녹색빛이 남아 있을 때 채취하여 쪄서 말린 것을 ‘청교(靑翹)’ 그리고 완전히 익었을 때 채취하여 말린 것을 ‘노교(老翹)’라고 한다.
일행은 괄루인(栝樓仁)을 파는 상점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이 약재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침 주인이 둥근 하늘타리 열매를 가져와 이 약재가 바로 괄루인임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알던 둥근 열매 모양과는 달리, 압착해서 길게 잘라놓은 신기한 모습이었다. 이 시장에서는 이를 괄루사(栝樓絲)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화담지해평천약(化痰止咳平喘藥)에 속하는 괄루인은 ‘동의보감’에도 ‘기침을 낫게 하는 데 중요한 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책으로만 배우고 학생들에게 설명해왔던 마황근(麻黃根)을 시장에서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마황근이 마대 속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황근은 초마황, 중마황의 뿌리 및 뿌리줄기로, 지상부 초질경을 사용하는 마황과는 약용 부위가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식물의 다른 부위임에도 효능이 정반대라는 것이다. 마황이 땀을 내어 체표를 풀어주는 해표약(解表藥)이라면, 뿌리인 마황근은 땀을 멎게 하는 지한약(止汗藥)으로 쓰인다. 마황에는 기관지 평활근을 이완시켜 기침을 멎게 하는 에페드린(ephedrine) 성분이 들어 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용해야 하는 약재다.
안궈시에 오기 전, 베이징의 ‘국가식물원’ 온실에서 초마황이 자라는 모습을 미리 보았었다. 덕분에 마황 식물과 뿌리 약재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목향공진당에 들어가는 약재인 목향(木香)이 수북이 쌓여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목향은 식물 목향의 뿌리에서 거친 껍질을 벗겨낸 것으로, 기운의 흐름을 원활하게 돕는 이기약(理氣藥)이다.
목향은 본래 인도 고산지대가 원산지인 귀한 약초이다. 과거에는 중국으로 수입되어 광둥(廣東)성의 광저우에서 주로 거래되었기 때문에 '광목향(廣木香)'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중국 윈난(雲南)성 리장 등지에서 재배에 성공하여 약재로 공급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를 ‘운목향(雲木香)’이라고 부른다. 광목향과 운목향 모두 정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목향(土木香)은 식물 토목향의 뿌리로, 목향과는 다른 종류다. 토목향은 목향의 위품이므로 목향 대신 사용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식약처 공정서에는 방풍 이름이 들어간 방풍(防風), 식방풍(植防風, 갯기름나물), 해방풍(海防風) 등 세 가지 약재가 등재되어 있다. 특히 방풍과 식방풍은 혼동하기 쉬우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방풍 판매장에서 일행들에게 방풍, 식방풍, 해방풍을 자세히 설명한다. 방풍은 땀을 내어 체표를 풀어주는 해표약(解表藥)으로 체표에 머물러 있는 풍사(風邪)를 제거해주는 작용이 있다. 그래서 두통, 발열, 관절통, 근육의 경련에 쓸 수 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서도 방풍은 ‘온몸의 관절이 아프고 저린 것을 치료한다’고 되어 있다. 식방풍은 우리가 쌈 채소로 흔히 먹는 ‘방풍나물’로 부르는 식물의 뿌리이다. 기원 식물 자체가 방풍과 다르며, 담(痰)을 없애고 기침, 천식 등을 가라앉히는 화담지해평천약(化痰止咳平喘藥)이다.
방풍과 더불어 약재시장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약재가 여러 군데서 팔고 있다. 바로 콩과(科) 식물인 밀화두(密花豆)의 덩굴성 줄기인 계혈등(鷄血藤)이다. 식물체의 줄기를 절단했을 때 닭의 피(鷄血)와 비슷한 적갈색의 즙이 나온다하여 ‘계혈등(鷄血藤)’ 이름이 붙여졌다. 이 액즙은 마르면 굳어지고 딱딱해지며, 꺾으면 얇은 조각모양이 된다. 계혈등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어혈을 제거하는 활혈거어약(活血祛瘀藥)으로 쓰는 약재다. 마침 시장 입구에 계혈등의 큰 줄기가 전시되어 있어, 이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계혈등과 유사한 약재인 대혈등(大血藤)은 계혈등과 달리 으름덩굴과(科) 식물에서 얻는 것으로, 계혈등의 위품이므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참고로 계혈등은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시장에서는 대한민국약전에 수록되어 있는 조각자(皂角刺)도 많이 취급하고 있었다. 조각자는 콩과(科) 식물인 주엽나무 또는 조각자나무의 가시를 말하며,우리와 달리 중국약전에서는 조각자나무 한 종만 기원으로 삼는다. 조각자는 계혈등과 마찬가지로 혈액순환을 돕고 어혈을 풀어주는 활혈거어약이다. 또한 배농, 거담, 유즙분비저하에 쓴다.
이번 안궈약재도매시장 탐방에서는 식물성 약재 외에도 다양한 동물성 약재를 만나는 귀한 경험을 했다. 닭 모래주머니의 내막인 계내금, 벌집인 노봉방, 굴 껍데기인 모려, 사마귀 알집을 찐 상표초, 매미 허물인 선퇴, 그리고 참갑오징어 뼈인 해표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필자는 안궈약재도매시장의 1차 방문에서 75종의 약재를 7 기가바이트 그리고 2차 방문에서는 45종 약재를 2.5 기가바이트 분량으로 촬영하며 귀중한 자료를 확보했다.
이번 약재 탐방에서 함께 한 일행들이 보여준 열정적인 학구열과 탐구 정신이 매우 인상 깊었다. 약재를 심도 있게 조사하고, 그 과정을 사진으로 상세하게 기록하는 모습은 필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탐방에 동행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많이 본 뉴스
- 1 한의사의 레이저·마취크림 활용한 미용치료 ‘합법’
- 2 한평원, 2025년 평가 결과…동국대 한의대 4년 인증
- 3 '자동차손배법 개정안', 결국 수정…국토부, 대면·서면 공식화
- 4 식약처, ‘2025 자주하는 질문집’ 발간
- 5 한의사 X-ray 사용…‘의료법 개정안’, 국회 검토 돌입
- 6 고도화된 한의재택의료 술기 교육으로 ‘돌봄통합’ 대비
- 7 보사연 “한의사 인력 ’30년 1,776명~1,810명 공급 과잉”
- 8 외국인환자 대상 미용성형 부가세 환급제도 연장 촉구
- 9 멸종위기 약초 생산체계의 지속가능성 ‘제시’
- 10 “한의사 수 과잉 배출···한의대 정원 조정 시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