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연결 짓는 한의학, 성소수자를 진료소로 초대하다

기사입력 2025.09.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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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단의 성수소자 한의의료 지원(下)
    신재하 한의사(홍진단 회원)

    [한의신문] 홍진단(성소수자와 함께하는 한의사, 한의대생 모임)은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단체)과 공동주최로 성소수자 한의진료소 사업을 2024년 6월 30일, 7월 28일 양 일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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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하 한의사>

     

    홍진단 회원 8명(한의사 5명, 한의대생 3명)이 진료 및 진료보조 업무를 맡았고, 행성인 회원 2명이 실무 업무를 맡았다. 외부의 10개의 한의원에서는 첩약 후원에 참여하며 성소수자 진료 사업을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왔다. 한 달 간격으로 두 차례 진행된 한의진료에 각각 12명, 11명의 성소수자 환자가 내원했다.

     

    내원한 성소수자 환자의 성별 정체성은 트랜스젠더(2명)·젠더퀴어(2명)·논바이너리(2명)·시스젠더(13명), 성적 지향은 레즈비언(8명)·게이(6명)·바이섹슈얼(3명)·팬섹슈얼(1명)·에이섹슈얼(1명)으로 다양한 분포를 보였다.

     

    성소수자 진료 왜 필요한가?

     

    “작년 어머니께 커밍아웃한 후 마음고생 하면서 습진이 생겼어요.”, “애인을 만나게 되면서 관계에서의 불안감이 더해졌어요.”, “혈액검사 상 남성호르몬 수치에는 문제가 없으나 음성, 안면 남성화가 더딘듯한데 체질 문제일지 걱정돼요.”, “6~7세 때부터 젠더 디스포리아로 우울했어요.”

     

    행성인X홍진단 한의진료소에서는 일반적인 임상 환경에서 들을 수 없었던 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커밍아웃, 연애 고민, 트랜지션, 젠더 디스포리아는 그들의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 자체는 치료 대상이 아님에도 성소수자 한의진료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적 시선은 성소수자를 병들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 일상적으로 정체성을 숨겨야만 하는 답답함, 정체성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 혐오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 커밍아웃 과정 중 겪는 갈등과 분노 등의 감정이 성소수자의 다양한 고통을 야기한다.

     

    한의학적 음양관과 젠더 스펙트럼

     

    한의학에서는 흔히 음양의 예시로 남자와 여자를 든다. 하지만 남자가 양이고 여자가 음이라 고정하는 것은 본래 한의학이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벗어난다. 음양은 둘로 나뉘거나 고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균형을 찾아 변화하고 연결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음양은 하나 혹은 둘의 개념이 아니며 존재 또한 본래 양이나 음 중 하나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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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히 분화하는 음양>

     

    음중지양, 양중지음, 양중지양중지음, 음중지양중지음···. 음양은 수없이 분화할 수 있으며 이는 젠더 스펙트럼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한의학의 음양관은 기존 성별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성소수자를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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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스펙트럼>   

     

    환자의 일상이 진단과 치료에 연결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회로부터 그들의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숨길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그들이 마땅히 안심하고 치료받아야 할 공간인 의료기관에서조차 그 요구는 지속된다.

     

    하지만 한의학은 연결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치료의 강점이 있다. 몸과 마음을 나누지 않으며 환자의 일상이 곧 진단과 치료에 연결된다. 평소에 무얼 자주 먹는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없는지를 묻는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에게 한의의료기관은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성소수자들의 일상에 가닿기 위해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한다. 그들이 겪는 일상적 차별이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소수자 친화적 공간

     

    본 진료소에서는 환자 한 명당 하나의 진료실 공간을 확보했다. 진료실에는 무지개 깃발을 꽂아두고 운영진들은 무지개 스티커, 뱃지 등을 착용하여 성소수자 친화적 공간임을 가시화해 참가자들이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문진표에는 성별 정체성을 묻는 항목을 추가하여 환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성별 정체성에 맞춰 상담했다.

     

    예를 들어 테스토스테론 치료로 트랜지션 중인 FTM 환자의 경우 월경 대신 출혈이라는 용어 사용으로 젠더 디스포리아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치료에 필요한 노출 부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환자가 원치 않는 노출을 피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시 성별 구분 없는 환자복을 제공했다.

     

    치료는 침, 한약, 정신과 상담기법 등을 활용했으며 담당 한의사가 한 달 치 한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진료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복용 상황을 체크해 건강관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한의진료가 도움이 되었나요?

     

    참가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 ‘한의 진료가 건강에 도움이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20명 중 18명이 ‘매우 그렇다(5점)’라고 답변하였고, ‘한의 진료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어떠신가요?’라는 질문에 20명 중 17명이 ‘매우 그렇다(5점)’라고 답변했다. 진료소에서 좋았다고 밝힌 점 중 1순위는 성소수자 친화적 분위기로 꼽았다.

     

    성소수자 당사자는 “상담 시 퀴어임을 어렵게 밝히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직업과 성생활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등과 같은 의견을 남겼다.

     

    이 외에도 독립된 진료 공간과 탈의실, 몸에 대한 충분한 고려, 충분한 상담시간과 자세한 설명 등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남겼다. 개선되면 좋을 점으로는 지역 확대, 치료의 연속성 등을 꼽았다. 이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 친화적 진료를 필요로 함을 시사한다.

     

    성소수자 대상 집담회 개최

     

    이에 홍진단은 후속사업으로 2024년 8월 9일 참가자 대상 집담회를 개최했다. 행성인X홍진단 진료사업 보고, 진료 참여 한의사 소개 및 후기, 참가자 소개 및 진료소 참가 후기 등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 중 한 명은 “나는 시스젠더 레즈비언으로서 특별히 질환도 없고 체질 문제로 상담하는 것인데 성소수자 친화적 한의원이 필요한가? 고민했었다. 하지만 진료를 받은 후 나에 대해 굳이 속이거나 할 필요 없다는 점에 따뜻함이 느껴졌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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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진단X행성인 한의진료소 집담회>

     

    다른 참가자는 “기존 정신과나 한의원에서는 커밍아웃을 했는데도 ‘딸’로 계속 지칭하는 등 힘들었지만 약을 타는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다니고 있었다. 홍진단에서는 편견 없이 환자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진료를 해줬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호르몬 치료 중인 트랜스젠더 분들이 한약 교차 복용에 어려움을 겪는 점, 기존 정신과의 약물 의존적 치료의 한계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0월19일, 11월16일 한의진료소 운영 

     

    홍진단은 작년에 이어 오는 10월 19일(일), 11월 16일(일) 양 일간 한의진료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진료소 사업을 바탕으로 한의진료에 필요한 점은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성소수자 친화적 한의의료기관을 만들기 위한 한의사·한의대생 대상 교육 사업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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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홍진단X행성인 한의진료소 참가자 모집 포스터>

     

    더 나아가 성소수자 전문의료를 위해 호르몬 치료 중인 트랜스젠더 환자, HIV 감염인 등의 치료에 필요한 의료적 지식을 함양하며, 이를 위해 한의계의 활발한 논의와 연구를 이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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