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업무 중심의 보건의료분야 중앙부처, 의료인보다 ‘공직자’ 정체성 더 커
여한 ‘2022 진로멘토링’서 강연, 다양한 경험이 모여 색다른 진로 열어주기도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사 출신 박지민 보건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 사무관에게 공직 진출 배경과 맡고 있는 업무, 공직 진출이 한의계 권익 신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들어봤다. 2010년 서울시 보건소에서 지방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3년 인사혁신처 민간경력자 일괄채용시험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입사해 보건의료 분야에서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Q. 현재 맡고 있는 업무는?
건강보험 관련 의료보장 제도 중 본인부담상한제와 재난적 의료비 지원 업무, 의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장성이 취약한 치과, 한의 영역의 보장성 확대 업무, 일차의료 강화 관련 건강보험 시범사업 등을 맡고 있다.
조금 낯설 수도 있는 의료보장 분야의 업무를 소개하려면 보건의료비용에 대한 얘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8.2%로 OECD 평균(8.8%)보다 낮지만, 증가 속도는 회원국 중 가장 빠른 편이다.
경상의료비 중 가계 직접 부담 비중은 30.2%로 OECD 평균인 19.8%와 비교해 봤을 때, 가계 의료비 부담 또한 크다. 국가 의료비 지출 총량의 증가는 가계 의료비 부담을 반영하고, 의료비로 인한 빈곤 추락 가구가 발생할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고액의료비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급여에 대해서는 본인부담상한제로, 비급여에 대해서는 재난적의료비 지원 제도로 취약계층 의료안전망을 설계했고, 지속적으로 지원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제도 운용을 해나가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중장기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Q. 공직 부문에 진출한 배경은?
학부 때부터 막연하게 보건의료 정책과 시스템, 의료 형평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한방병원 일반 수련의 시절, 교육받고 실제로 행한 의료 행위들이 시스템 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게 됐다. 이 때 이해하기 힘든 절차적 편법과 관행을 목격하며 좀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의 일탈을 결심하게 됐다.
단순히 의료 공급자였던 제게, 보이지 않는 원리로 견고하게 작동되는 보건의료체계는 무척 흥미로웠고 정책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배우고 싶어졌다.
이후 로컬에서의 경험, 민간의료에서 공공의료로의 영역 전환, 보건대학원 진학을 거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자연스레 국가 보건의료 체계의 병든 부분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또 다른 진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Q. 준비 절차는?
제가 시험을 준비할 때는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제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공직적격성평가(PSAT), 서류, 면접 순으로 이뤄지는 각 전형에 대비한 정보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특히 PSAT은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영역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영역별로 절대 점수 커트라인이 있다.
일과 육아로 공부할 시간을 내기가 빠듯했던 상황에서 심적 부담이 컸다. 서점에서 기출문제집을 구해 틈틈이 풀었던 것이 시험 준비에 도움이 됐다.
공직 뿐 아니라 대학, 병원, 연구실 등 조직에서의 근무를 염두에 둔 경우라면 채용 준비과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면허증을 취득한 이후, 수련, 진료, 연구, 학위 등 경험과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서류, 면접전형에 필수적인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중앙공무원의 경우 일부를 제외하고는 공채, 경채 시험 모두를 인사혁신처에서 총괄 관리하고 있다. 공직에 관심이 있다면 인사혁신처 사이버국가고시센터 누리집에서 채용시험 계획 공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Q. 공직의 매력은?
많은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 한의약에서 보건의료로의 전문성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에게 필요를 채워주는 점, ‘공공’이라는 가치를 대놓고 추구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며 책임의 무게를 느끼는 점 등에서 그렇다.
특히 진료실과 달리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나만의 판단과 결정으로 일을 진행할 수는 없다. 유관 부서와 부처, 관계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업을 하고 조직 내 의사결정체계에 따라 업무 방향과 정책이 결정된다. 정부 정책은 조직 구성원이자 업무 담당자인 ‘나’의 이름이 아닌 조직의 이름으로 국민에게 전달된다. 이 때문에 직장 선후배, 동료들과 운명 공동체로서 동고동락하며 느끼는 동료애와 소속감이 큰 것도 매력적이다.
Q. 한의사의 공직 진출이 한의계 권익 신장에 미치는 영향은?
소속 기관에 따라 다르다. 진료나 연구 업무를 병행하는 공직은 필수 공공의료나 지역사회 일차의료, 국제보건 등 여러 영역에서 한의약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을 수 있다. 기초·임상 영역에서 각종 연구를 통해 한의약 이론을 특정 기전으로 증명하거나 임상적 유효성, 비용 효과성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만드는 등 우수한 학문적 가치를 알릴 수도 있다. 맡은 업무 자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나 의과학적으로 한의계 권익 신장에 기여할 여지가 많다.
반면 행정 업무 중심의 중앙 부처, 특히 보건의료 관련 분야에서 일하게 되면 의료인이 아닌 공직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전공, 면허 등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본인 전공이나 관련 업무에 편향된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공무원에게 부여된 국가관, 윤리관, 책임에 따라 공정한 정책을 펼칠 의무를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한의계 또한 업무상 여러 이해관계자 중 하나가 된다.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국가를 위한 ‘대의’(大醫)로서 올바른 정책 방향을 세우는 데 책임과 소신을 가지고 임하다 보면, 한의계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한의계 권익 신장에 일조할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Q. 공직 진출을 희망하는 예비 한의사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감사하게도 저는 해보고 싶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진료하던 환자가 나았을 때 느끼던 보람과 견줄만한 또 다른 보람도 분명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적성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어 일단 졸업 후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결국 돌아보면 그렇게 적성을 찾아가던 과정과 시간들이 모여, 내가 가야할 길로 이끌어주는 것 같다.
학부 때부터 적성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면, 보건의료 분야를 넘어 전공과는 다소 상이한 부처나 직렬에서도 잠재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일찍이 진로를 정해 공채 시험을 준비할 수도 있으므로 공채로 입직한 선배들의 경험담도 참고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