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본초강목』, 궁향벽촌 민간 경험방까지 빠짐없이 수록
『본초강목』 이용해 약물이나 본초 방제학의 지식 섭렵
日, 결모거별집(結髦居別集)…『본초강목』 원작을 교정
‘결모거(結髦居)’ 별칭은 문장과 경학보다 본초에 집착
『본초강목』(52권37책)은 근대 이전 역대 제가본초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세밀함을 자랑한다. 2011년 아시아 전통의학서 가운데 『동의보감』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한국에 선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잔뜩 자존심이 상해 있던 중국인들을 위로해 준 바 있다. 저자 이시진이 30여 년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800여 종에 달하는 고의서와 제가 서적을 두루 참고하였으며, 심산유곡을 누비면서 직접 약초를 캐고 관찰하여 집필했을 뿐 아니라 궁향벽촌 민간의 경험방까지 빠짐없이 수집하여 채록했기에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저술이다.
1610년에 편찬된 『동의보감』에는 『본초강목』을 참조한 흔적이 전혀 없는 까닭에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조선 선조 이후일 것으로 추정한다. 아울러 『동의보감』을 비롯한 역대 한의방서에서는 대부분 송대에 이루어진 『증류본초(證類本草)』를 이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초강목』이 우리나라의 본초학에 미친 영향은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아울러 『본초강목』이 임진왜란 이후에 도입된 까닭에 청대 의학의 산물로 조선의학계에 받아들여졌으며, 양대 호란을 겪으면서 숭명배금(崇明排金)하는 기조가 강렬했던 조선 사대부 지식층이 은연 중에 이 책을 도외시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 그 설명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청대 고증학이 수용되고 적극적으로 대륙의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였던 소위 북학파나 실사구시를 중시한 실학자들에게까지 이렇듯 고루한 생각이 여전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18세기 이후 박물학을 비롯한 방대한 백과전서학파를 형성하였던 많은 지식인들은 『본초강목』을 이용해 약물이나 본초 방제학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직접 가보지 못한 넓은 세상의 박물학적 지식이니 새로운 문물에 대한 지견을 간접적으로 확충하는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의 역대 의방서 가운데 이 『본초강목』의 영향을 받은 책으로 본초서로는 『본초정화(本草精華)』와 『일관강목(一貫綱目)』을 꼽을 수 있으며, 이밖에 의방서 가운데 이경화의 『광제비급(廣濟祕笈)』,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황도연의 『의종손익(醫宗損益)』과 『약성가(藥性歌)』, 그리고 『본초부방편람(本草附方便覽)』 등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책들이라 하겠다.
근간에 일본 에도시대에 판각하여 다시 간행한 일본판 『본초강목』을 구해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서문의 작성시기가 일본의 ‘正德甲午’년으로 되어 있는데, 서기 1714년이니 조선 숙종 재위 40년에 해당한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을 교정하여 새로 펴냈다는 의미에서 『신교정(新校正) 본초강목』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의 도생약수(稻生若水)라는 본초박물학자인데,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의학의 성취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던 인물이다. 이 일본판 신교정본은 기존의 『본초강목』 53권에다가 본초도익(本草圖翼) 4권과 결모거별집(結髦居別集) 4권을 더하여 도합 6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자리에서 굳이 책의 구성이나 체제를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18세기 새로운 문물과 신지식에 민감했던 일본 의학계의 성취 가운데 조선의학의 영향이 엿보이기에 이를 지목하고자 해서이다. 이 책에서 본초강목 와전을 바로잡고 오류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원서에 빠진 새로운 약물 상당수를 보충하고 변증하였는데, 그 내용이 『결모거별집』이라는 별책에 담겨져 있다. 따라서 『본초강목』 원작을 교정했다는 의미를 제외한다면 저자의 새로운 지견은 오히려 본편이 아닌 이 별집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결모거(結髦居)’라는 별칭은 도생약수가 문장과 경학보다는 본초에 집착함을 빗댄 것으로 원래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가 평소 머리칼을 길게 길러 애지중지하였는데, 제갈량이 난세를 평정할 영웅이 하찮은 머리털에 연연함이 옳지 않다고 충언하자 결기를 드러내는 신호로 머리칼을 잘라버린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말이다. 결모를 자른 것이 영웅호걸의 상징이라면, 저자는 여전히 자연의 미물인 본초에 관심을 두고 벗어나지 못함을 ‘결모거’라는 표현으로 빗대어 자칭한 것으로 보인다.
4권으로 이루어진 별집에는 첫 권에 奇南香, 淡婆姑, 西國米, 落花生, 燕窩菜, 番椒, 藤, 둘째 권에 蓍草, 合歡草, 千年蒕, 吉祥草, 結縷草, 接續草, 地錦, 蔊(산갓), 셋째 권에 娑羅樹, 落葉松, 棣棠花, 燕子花, 胡枝花, 蔓陀羅花, 넷째 권에 香魚, 棘鬣(말갈기렵)魚, 海鰌(附 龍涎香), 沙噀(불뿜을손, 附 海蔘), 告天子, 獴(몽계몽)계(犭貴), 拂菻(쑥름)狗, 果下馬 등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그런데 위에 열거된 것 가운데 마지막에 실린 과하마(果下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과하마란 사람을 태우고서 과실나무 가지 밑으로 지나갈 수 있는 말이라는 뜻으로, 키가 몹시 작은 말을 이르는 말이다. 고구려와 동예에서 많이 생산되어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기에 국사교과서에도 특산물로 기재되어 있다. 3척이 채 되지 않았다는 이 작은 말은 특히,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이 탔었다는 말이 전하며, 동예에서는 후한(後漢)과의 주요 교역품의 하나라고 기록되기도 하였다.
제주 말 또한 토마(土馬), 삼척마(三尺馬)라고도 불리는데,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려 여몽연합군을 구성하고 제주에 목장을 설치하였을 때, 들여와 전쟁이 끝난 후에 한라산 부근 초지에 방사되었기에 점차 퇴화된 것이라는 설이 전한다. 하지만 제주조랑말이 본래 키 작은 품종이라고 한다면 몽고말이 아니라 고려 말의 후예라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신교정판에는 이 말의 품종이 일본 서남해 바닷가 마을인 토사(土佐)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토사구(土佐駒)라고 불린다고 하였다. 또 한(漢)나라시대 낙랑군(樂浪郡)에 이 말이 난다고 했는데, 이 역시 고구려나 부여지역을 지칭한 것이다. 삼국지 위지(魏志)에서는 함경도지역에 있었다는 예국(濊國)에서 난다고 한 말까지도 인용했으나 정작 조선 특산이라는 말은 끝내 비치지 않았다.
중국의 고대문헌과 명대의 기록들을 주로 인용하고 조선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지 않다. 하지만 시코쿠의 토사 지역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많은 조선인이 정착촌을 이뤘던 지역이고 풍습이나 식습관도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식 유풍이 남아 있어 이 과하마 역시 조선인과 함께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 조랑말은 키가 작아 평지나 초원에서는 보폭이 큰 호말을 따라잡을 순 없을지 몰라도 산악과 구릉이 많은 한반도에서 산비탈을 기어오르며 임무를 수행하거나 많은 물자를 실어 나르는 운반수송 용도로 더할 나위 없이 요긴하였을 것이다.
많이 본 뉴스
- 1 한의사의 레이저·마취크림 활용한 미용치료 ‘합법’
- 2 한평원, 2025년 평가 결과…동국대 한의대 4년 인증
- 3 식약처, ‘2025 자주하는 질문집’ 발간
- 4 '자동차손배법 개정안', 결국 수정…국토부, 대면·서면 공식화
- 5 한의사 X-ray 사용…‘의료법 개정안’, 국회 검토 돌입
- 6 고도화된 한의재택의료 술기 교육으로 ‘돌봄통합’ 대비
- 7 보사연 “한의사 인력 ’30년 1,776명~1,810명 공급 과잉”
- 8 외국인환자 대상 미용성형 부가세 환급제도 연장 촉구
- 9 “한의사 수 과잉 배출···한의대 정원 조정 시급”
- 10 멸종위기 약초 생산체계의 지속가능성 ‘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