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기 관련 졸업 후 교육 및 인증시스템 필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관련 헌소 당사자-
구랍 27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의료기기인 안압측정기, 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을 이용한 한의사에 대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기소유예처분을 내린 것은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취소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에 대해 양의계는 “기본적으로 법이 지켜야 하는 원칙과 가치, 그리고 최소한의 상식마저 저버린 편협하고 왜곡된 것”이라며 발끈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결과적으로 한의사들의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제한이 일정 부분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과연 이번 소송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기에 이같은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헌소를 제기한 당사자인 밝은눈한의원 박용신 원장은 논점의 전환에 주목했다.
과거 의료기기 관련 소송 판결문을 살펴보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해석함에 있어 ‘의료행위의 태양 및 목적, 그 행위의 학문적 기초가 되는 전문지식이 양·한방 중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방점을 두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소송에서는 ‘한의학적인 것’을 증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접근하다 보니 설득하기 어려운 문제였을 뿐 아니라 재판부에서도 해부학적·조직학적인 것은 한의학적이지 않고 해부학적 이론에 기초한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려 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헌소에서는 관점을 바꿔 의료인의 의료행위는 의료법의 목적인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하고 과학적 방법을 이용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내는 진찰기구는 한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결과 헌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의료인이라면 한·양방 구분하지 말고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한의계가 의료기기에 대한 한의학적 이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양의계가 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박용신 원장은 이번 판결문의 핵심이 “청구인들이 이 사건 기기들을 사용하여 환자들의 근시, 원시, 녹내장, 청력이상 등의 진단을 하거나 나아가 이를 토대로 한약처방을 한 것은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환자의 용태를 관찰하여 병상과 병명을 규명·판단하는 작용으로서 ‘진찰 내지 진단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진단을 토대로 한약 처방을 한 행위는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사법부의 판단을 보면 양의학 이외의 것을 ‘의료’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의계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를 이외의 의료인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이번에 헌재에서 한의사도 의료행위자로서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라는 공식 인정을 받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박용신 원장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 사용에 좀 더 공세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 판결 이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양의사들의 고소가 더욱 집요해 질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양의계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의료기기 관련 소송은 건별로 이뤄지는 만큼 재판부의 판결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헌재 판결이 향후 소송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양의계로서는 무분별한 소송전이 자칫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례들을 남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의계의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박용신 원장은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학교 교육은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 양방 과목들은 이미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진료과목별로 다양한 관점에서 의료기기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의료기기 관련 과목을 별도로 마련하고 이를 국시에 반영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침구사를 막기 위해 침구과목을 별도로 독립시켜 놓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학교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졸업 후 교육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보다 전문적이고 위험성 있는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졸업 후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인증해 주는 공신력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준비가 이뤄졌을 때 향후 건별로 이뤄질 의료기기 사용 관련 문제에 보다 확실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박용신 원장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실태 조사 후 이들 의료기기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다시 요구하는 한편 의료기기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것을 제언했다.
“의료기기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번 의료기기 소송이 기존 판결에서 사회적 변화와 현실이 반영되지 못한 측면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헌소까지 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의계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은 앞으로 한의계에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고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해 더 많은 기회들을 만들어 내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누구보다 소송에 대한 부담을 잘 알고 있는 박용신 원장.
그는 앞으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고발건과 관련해 초기단계부터 협회와 긴밀히 연계해 대처하는 것이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길임을 조언했다.
끝으로 박용신 원장은 이번 판결이 나오기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대한한의사협회를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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