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四診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한의진단기기 개발에 초점 맞춰야”
한의진단기기 품목 허가를 위한 체계적 임상시험 방법 제시…SCI 등재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당연’…지속적인 근거 창출 및 제시 필요
최근 김진성 교수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3내과)가 디지털 설진기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 방법을 체계적으로 작성한 논문인 ‘디지털 설진기의 유효성 및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 연구계획서’가 SCI 등재지인 ‘근거중심 보완대체의학지’에 게재돼 눈길을 끌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개발된 진단기기를 임상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획득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은 필수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의계에서는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방법론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다”며 “이번 논문에는 임상연구 디자인, 연구 참여자 기준, 주요 평가변수, 사용한 의료기기의 제원, 황금기준 수립 및 연구 진행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한편 한의의료기기 관련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의 방법과 기준을 제시돼 있는 만큼 향후 다른 한의의료기기 개발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부터 설진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 교수는 소화기내과를 전공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구강병을 특화해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구강병에는 △입마름 △구창(구내염) △구강작열감 증후군 △입냄새 (구취) 등이 있는데, 이 중 구취는 설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체크포인트로 이를 어떻게 하면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설진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설진은 망·문·문·절의 사진(四診) 중 망진에 속하는 것으로, 혀 자체의 색깔이나 형태, 설태 자체의 색깔이나 건조도, 두꺼운 정도 등을 살펴 특정정보를 얻는 것”이라며 “하지만 설진은 조명 등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이나 보는 사람의 경험, 환자가 혀를 내비는 자세 및 빛이 조사되는 방향, 혀에 침이 묻어있는 정도에 따른 반사광 등에 의해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아 설진의 표준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고전에서는 ‘설첨부부터 설근부까지 설태가 없으면 ‘무태’, 있으면 ‘박태(엷은 것)’나 ‘후태(두터운 것)’로 판정하고, 설질의 분홍색이 내비춰질 정도로 엷으면 ‘박태’, 분홍색이 안보일 정도로 하얗거나 노란 빛의 설태가 깔려있으면 ‘후태’라고 한다’고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설태의 분포가 천차만별이라서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번 논문을 작성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 역시 비교기준을 설정하는 것이었다”며 “이번 논문에서 마련한 기준은 5명의 전문가들에게 판정자간·판정자내의 일치율 등을 고려해 무태(소태)와 박태의 절단점 29%·박태와 후태의 절단점 64%로 설정, 설진시 설태가 혀표면의 1/3 이하이면 무태로 판정하고, 2/3 이상을 차지하면 후태로 판정하는 등의 판정기준을 적용하여 설진기의 판정치와 비교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한 “진단기기의 임상시험은 기존의 진단기기와 개발하는 진단기기를 비교해야 하지만, 벤치마킹할 비교대상이나 선행연구가 전혀 없어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논문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발주한 설진기 개발과제의 일환으로, 품목 허가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키 위해 진행되는 임상시험의 예비연구적 성격의 논문이다. 김 교수는 “진단기기에 대한 품목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질환에 유효한지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이러한 차원에서 이번 논문에서는 설태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질환 중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프로토콜을 마련한 것이며, 이를 통해 환자의 유형별로 나타나는 설태의 분포 유형과 진단기기를 활용한 데이터를 비교, 진단기준과 얼마만큼 부합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주된 연구방향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디지털 설진기의 개발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김진성 교수는 “현재 한의계에서는 진단기기로서 양도락, 맥진기, 경락기능검사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엄밀한 의미로 사진(四診)의 방법을 보완하는 진단기기로서 미흡한 면이 적지 않다”라며 “한의학은 비과학적이 아니라 충분히 과학적이지만 현대적이지 않은 것인 만큼 향후 한의 진단 부분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진단기기들, 즉 설진기를 비롯 맥진기, 복진기 등 사진의 방법들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한의진단기기 개발에 초점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설진기의 경우에는 설태의 후박뿐만 아니라, 담홍·담백·홍강 등의 설질의 색을 감별하는 등의 다양한 분야로의 개발이 진행돼야 하고, 맥진기의 경우도 최소한 맥에 힘이 있다, 없다, 느리다, 빠르다, 가라앉아 있다, 떠있다 등 표리한열허실의 팔강과 관련된 기본적인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기로서의 개발을, 또한 복진기도 심화비만·심화비경을 확인할 수 있는 등 일정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복진기 개발 등 사진과 관련된 진단기기들을 한의사의 현실에 맞춰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한의진단기기 개발시 처음부터 모든 진단 부분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한 부분씩 차근차근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현재 한의계도 표준질병사인분류에 맞춰 서양의학적 질환명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질환과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만 전체적인 큰 틀에서 한의진단기기의 개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향후 계획과 관련 “이번 논문은 예비연구 성격이므로,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질환과 많은 피험자를 대상으로 본 연구를 준비하고 있는 등 설진기의 품목 허가를 위한 대규모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와 더불어 설태뿐 아니라 설질의 색 등 설진과 관련된 다양한 평가항목으로 연구도 확대할 예정이며, 이밖에도 진단기준을 설정하는 연구나 진단기준의 타당성 연구 등도 함께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의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김진성 교수는 “한의계와 양의계 모두 표준질병사인분류에 따라 질병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며 “따라서 한의계에서 표준질병사인분류에 맞춰 적절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질환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한의약 진단에서 설진이나 복진, 맥진 등은 타각적인 소견을 확인하는데 사용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에게 자각증상을 물어 이를 활용해 진단하는 비율이 높은 것 같다”며 “하지만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타각소견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질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현대 진단기기가 활용되어야 할 것이며, 현대 치료기기 역시 환자에 대한 치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마땅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을 위해서는 먼저 한의학 고전에서 해당기기와 관련된 내용을 발굴하고, 이를 근거로 실제 임상에서 활용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한의약육성법에 명시된 ‘과학적으로 응용·개발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韓藥事)’라는 문구에 명시된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입증해 나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밖에도 김 교수는 “현재 한의계는 한약을 빼고 나면 한의사의 의료행위가 너무나도 좁아져 있는데, 앞으로 신의료기술 개발에 대해 전 한의계가 관심을 갖고 매진해 한의사의 의료행위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협회 차원의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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