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학 세계화 위해서 치료데이터 수치화 연구 필요”
그대가 부럽습니다(14)
이번 ‘그대가 부럽습니다’에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학·석사를 취득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진단·생기능의학과 전문수련의로 활동하며, 한의 진단과 치료를 수치화함에 필요한 평가도구들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현호 한의사를 만났다.
김현호 한의사는 현재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4가지 분야에 대해 소개했다.
“첫 번째, ‘변증설문지 개발’이다. 한의학 치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변증이라는 체계는 정체 관념에 그 기반을 두고 인체의 복잡한 현상들을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하고 훌륭한 기술이지만 한의사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통계적으로 검증받은 변증설문지를 개발하여 설문을 통한 변증 진단의 표준화와 정량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둘째, ‘생체신호분석’이다. 한방의료기기 혹은 아직 개발 중인 기기들을 통해 인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생체신호들을 측정·분석하여 진단과 변증,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반 연구를 하고 있으며, 병원 외래에서 직접 시행하여 환자의 평가와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 셋째로는 ‘데이터마이닝’이다. 고차원의 통계기법인 다양한 데이터마이닝 기법들을 이용하여 의서 혹은 의안, 처방 및 다양한 정보들로부터 의미있는 정보를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동작 분석’이다. 첨단 센서를 이용하여 근골격계 질환은 평가하고, 특정 질환과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공학석사, 새로운 시각서 한의학 연구
그가 이렇듯 한의 진단과 치료를 수치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게 된 것은 과학화·정량화·객관화가 한의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한 도전정신에서다.
“사실 과학화, 정량화와 객관화는 ‘한의학 본연의 모습이 어떤 것이냐’와는 전혀 관계없이, 현대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속성이다. 정확한 수치에 기반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의료의 소비자들과 행정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따라가고 있으나, 한의학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경희대 진단·생기능의학과학교실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해 왔다.”
사실 그의 이력에는 일반적인 한의사와는 다른 독특한 점이 존재한다. 바로 한의대 입학 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학·석사 과정을 마쳤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의사의 길을 걸어가고자 다시금 도전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서 학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광섬유를 통한 빛의 증폭에 대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를 취득할 무렵 전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융합 연구의 하나를 담당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몇몇 분야를 염두에 두었으나 결국은 한의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기존 전공과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할 수 있는 연구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러한 선택을 가능케 했다.”
공학석사 출신으로서 새롭게 한의학을 수학하고, 연구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의료기기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산물
“저학년 때의 한의학 수업은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공대생의 특성상 많은 것들을 의심하고, 합리성을 찾고, 내적 일관성 등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편인 반면에, 처음 한의대에서 요구하는 공부들은 대부분 암기 위주였다. 이해를 해야만 암기가 가능했던 당시에는 꽤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반면 그러한 측면에서 많은 고민들을 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쓴 덕분에 본과 2학년 정도부터는 새로운 시각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라고 과감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의서도 새롭게 보이고, 예전에 안개처럼 뿌옇던 부분도 많이 걷혔다고 느꼈다. 지금은 한의학 내에서 합리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공학적 사고방식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학석사 출신인 그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과학기기를 활용한 한의학의 발전 모델은 어떤 것일까?
“의료기기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산물이다. 이것을 사용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는 한방이든 양방이든 그 어떤 정체성도 작용하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한의학적인 정체성이 빛나야 할 것이다. 과학과 공학은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 더 민감한 센서들이 개발될 것이고, 기존에 측정할 수 없었던 물리량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의 발전 모델은, 이러한 측정된 물리량을 어떻게 해석하고 환자의 치료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데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기는 나올 때부터 어디에 속해 있지 않다. 그리고 한의사의 한방의료행위 역시 당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계속 고민하고, 한의학적 진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연구를 해야 그것이 모두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김현호 한의사는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기본 전제로 치료의학으로서 한의학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를 위해선 전일관념을 견지하면서도 치료 데이터들의 수치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문의 합리성 전제가 세계화의 기본 조건
“단순히 몇몇 클리닉에서 성공적인 증례가 있다고 해서 한의학이 인정받지는 못한다. 이러한 데이터들을 객관화·정량화하여야 하고, 통계적인 과정을 거쳐서 학문의 합리성을 획득할 때 비로소 세계화의 기본 조건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의학의 특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객관화·정량화의 방법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또한 한의학의 정체성인 전일관념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그는 한의사들이 쉽고, 편하고, 그리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측정도구들을 만드는데 주력할 뜻을 밝혔다. 그리고 그렇게 측정된 정보들을 한의학적 진료에 응용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와 동시에, 신비주의와 전통, 그리고 일부 불합리에 매몰되어 있는 한의학의 구시대적 측면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를 시대정신에 맞게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는 일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
현재 진주 지역의 공군 군의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준태 한의사이다. 신경순환내과 전문의로서 한의학 지식과 양방의 지식을 균형있는 시각으로 운영하는 실전 임상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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