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희 원장

기사입력 2012.07.3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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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그랬었지, 왜? ④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의계 처음으로 ‘한의사 의정동우회’가 발족됐다. 의정동우회는 전국 20여명에 이르는 한의사 출신 가운데 장교로 군대를 전역한 예비역들의 한의학 군진의료 발전을 위한 모임에서 시작됐다.

    의정동우회 발족에는 초창기 軍 醫政 분야 개척에 기여한 임형섭 원장(작고)을 비롯 이종형(작고), 신언탁(작고), 유창열(작고), 홍성헌(성북구 홍씨한의원), 안덕희(종로구 신일한의원) 원장 등이 주축이었다.

    “의욕적으로 모임을 만들었지만 실제 활발히 활동하지는 못했어. 당시 워낙 양방 위주로 군진의료제도가 운영되다 보니 한의사들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야.”

    안덕희 원장(사진·88세)이 참여한 한의사 의정동우회 발기인 총회는 30년 전인 1982년 9월11일에 있었다. 한의사 의정동우회가 발족하고 7일 뒤에는 建軍사상 처음으로 한의사 출신 기술의정장교가 中尉로 임관돼 전국의 각 군부대에 배치되기에 이른다.

    한의사협회나 각 한의과대학에서 숙원사업으로 한의대 출신자들의 군의관 임용을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군 인사제도의 장벽에 꽉 막혀있던 것이 한의사 기술의정장교라는 이름으로 틈새를 보인 것이다. 당시 한의사가 중위라는 계급장을 달고 기술의정장교로 임관된 것은 한방 군진의료 활용 측면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한의사 의정동우회 회원들은 모두 장교 출신의 예비역이다. 즉, 군 생활을 일반 병이 아닌 장교로서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다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당시 군 의료체계는 양방 의료 위주로 흘러갔다.

    “육군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실질적으로 침, 부항 등의 한의시술은 제약이 많았어. 맹장수술, 포경수술, 소독, 양약 투약 등 주로 양방 처치였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병원에 배치받기 전에 군의학교에서 1년여 교육을 받았는데 그것이 대부분 양방 의료였고, 병원 내 상급자도 모두 양의사 출신의 장교들이었기 때문에 한의학 분야의 장점을 살린 한의 치법을 거의 활용할 수 없었어.”

    그렇기에 의정동우회 발족 7일 후 처음으로 한의사 출신의 기술의정장교가 임관된 것은 군부대 내에서 보다 많은 한의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떳떳하게 한의 진료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안 원장은 경희대 한의대(당시 서울한의과대학) 4기 졸업생(1955년)이다. 53명의 동기생들 중 17명이 대학 4년 때 국가의 부름을 받고 軍醫 24기(의정장교 의무병과)로 착출돼 입대했다. 이후 안 원장은 광주 보병학교서 6개월, 마산 군의학교에서 1년여를 교육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았다.

    첫 근무지는 충남 온양시의 백구 육군병원이었고, 얼마 뒤 대구시의 제일 육군병원에 배속돼 근무했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제대 후 학교를 마친 뒤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으나 또 다시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 이번에는 무의촌에서 진료할 공의(公醫)로 착출됐다. 경상남도 가락면 죽전동에서 1년 6개월여간 공의로 활동한 뒤 이후 서울에 올라와 개원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의사를 선택한 것이 너무도 고마워. 90을 바라보는 나이(88세/米壽)에도 건강하게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고, 또 후학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한의학을 이만큼 발전시켜 놓아 사회적 위상이 당당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따름이지.”

    그는 현재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료하고 있다. 다만, 오후 4시까지만 진료한다. 종로5가에서 마포구 자택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그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야. 많이 걷고, 하루 세끼는 꼬박꼬박 챙겨 먹어. 집에서는 안사람(박노미·82세)이 애타게 기다려. 그래서 빨리빨리 들어가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환자를 돌보고 싶어. 그게 바로 한의사의 책무 아니겠어.”

    안덕희 원장은 1980년대 서울시한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 한국동양의학회 상임부회장, 경희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순흥안씨 중앙종친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의계 의권 신장과 학술 발전 등에 큰 기여를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2년 9월18일 한의사 기술의정장교의 첫 임관에 이어 1989년 한의사 군의사관후보생 모집과 2000년 12월8일 병역법 개정에 따라 한의계 숙원이었던 한의군의관 및 공중보건한의사 문제가 풀리며 군진한의학의 틀을 완성케 된 시발점에 1982년 9월11일 발기인 총회를 가졌던 ‘한의사 의정동우회’의 족적도 그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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