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규 교수

기사입력 2012.02.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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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과 과학, 그리고 권력투쟁

    2011년의 한의계에는 놀랍고 짜릿하며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관심 있는 한의사들 외에는 대부분 막연히 ‘아, 그렇게 되었구나, 머, 우리한테 도움이 되겠지’ 하고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학문적으로 임상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한의학과 한의학의 의료행위를 법적으로 규정하는데 있어서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이번에 한의약육성법의 제2조 제1호에서 한의약에 대한 정의가 다음처럼 개정되었다.

    “한의약이라 함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한 한방의료행위 및 한약사(韓藥事)를 말한다.”

    이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한의사가 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만 가능했지만 개정된 이후에는 현대과학을 응용하고 개발한 한방의료행위와 한약업무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라서 비윤리적인가

    물론 ‘과학적 응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매하기는 하지만 한의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굴레 한 가지를 벗어던진 것만은 확실하다. 1993년과 1996년 두 번에 걸친 약사법 개정으로 한의계가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투쟁을 할 때 한의계의 가장 큰 적은 과학이었다. 약사회는 서구과학의 대변자가 되어 한의학이 과학적이지 못하므로 자신들이 한의약의 과학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변하였고 이에 대응하는 한의계의 무기는 고작 전통성과 전문성, 그리고 국민들의 전통된 정서적 공감이었다.

    그 결과 한약사법이 만들어졌지만 전국 한의대생 모두가 유급당하는 너무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때부터 한의계의 <과학 콤플렉스>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뚜렷하게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의학이 과학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한의학과 한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학에 대한 믿음은 10년 동안 더욱 확고해졌고 과학 또한 진화하여 과학 스스로 과학을 재생산하는 정도가 되었다.

    과학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동안 한의학은 말을 타고 달리는 정도의 속도로 발전했을 뿐이어서 과학 콤플렉스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작년에 한 한의대 예과 2년의 윤리의식 조사에서는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라서 비윤리적’이라는 답변이 나올 정도이다. 과학과 윤리는 전혀 다른 범주일 뿐인데도 이런 답변이 나올 정도라면 한의계의 과학에 대한 공포가 이미 한의대시절부터 시작하는 중병상태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 이후 많은 철학자와 생물학,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이 종교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과학이라는 말이 붙으면 무조건 믿으려고 하는 문화가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전제품, 가공음식, 유기농 농산물에는 과학적으로 만들었거나 과학적으로 재배했다는 황홀한 문구를 제일 앞에 내세운다. 침대가 과학이라고 개그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과학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환자는 의사의 말(사실은 의사가 주도한 각종 검사)을 과학자의 말과 동일시하고 종교적 절대 믿음과 복종을 자신의 미덕으로 삼으며 자신의 몸을 과학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으로써 환자의 몸은 자신으로부터 격리되어 의사의 검사대상으로 환원된다. 요즘 한의계는 한의학을 무당이라고 비판하는 의료계를 기계적이고 비인격적 의료라고 반박 비판하면서도 시어머니 흉보면서 며느리가 닮아가듯이 현대의료의 단점을 배워가는 모습도 많이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과학>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듯이 시대마다 개념이 변화해 왔으며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과학 스스로 자기 자신을 비판하면서 반성하면서 변해가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진정한 무서운 점이다. 서구유럽의 모든 학문은 이 전통 속에 있다. 10년 전에 과학이라고 한 것을 지금은 과학에서 폐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과학을 채워 넣는 과학의 <자기 반성>은 한의학이 가지지 못한 가장 큰 특징이다.

    대신에 한의학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학문은 <術而不作>의 형태를 띤다. 앞 사람의 말을 잘못되었다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 밑에 주석을 달아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즉, 서술은 하되 새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경>, <상한론>의 각종 주석서들이 이 전통에 따른 것이며 <동의보감> 또한 이 전통을 따르면서 조선과 허준의 색채를 입힌 것이다.

    한의학은 한의학에 맞는 과학개념을 정립

    하지만 새로 만들지 않았다고 새로움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와 통일 진나라의 의학을 <황제내경>으로 집대성, 장중경의 임상한의학, 금원사대가의 한의학 다양성 확보, 명말-청까지의 한의학의 시각화 노력,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한의학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역사 과정에 한의학이 편안했던 적은 없었다. 학문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창발(創發)하여야 한다. 멈추면 사라진다. 도교, 불교, 유교는 각 시대별로 한의학과 교류하여 한의학의 이론이 확충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18세기부터는 서구근대과학과 현대과학이 한의학을 추동하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말이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위해 나머지를 모두 바꾸어도 좋다.” 한의학을 과학화하려면,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응용하려면, 한의학과 과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한의학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과학이 무엇이며 과학 중에서 한의학과 잘 맞는 접점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한의학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모른 채 과학화를 하면 한의학은 외형(外形)만 남고 내경(內景)을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실험분석을 통하여 가장 작은 물질 요소(element)로 환원하는 것만 과학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실험분석이 가장 과학적 방법임에는 틀림없지만 과학 개념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의학은 한의학에 맞는 과학 개념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의계가 확보한 ‘과학’이라는 마법의 지팡이

    국가는 한의계에 이제 <과학>이라는 오색찬란한 마법의 지팡이를 주었다. 이 지팡이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제 한의계의 몫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내 손에 과학이라는 마법의 지팡이가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한의계가 과학을 사용하려면 한의학과 한의계 내부 역량의 축적과 함께 사회적 의료시스템이 같이 가동되어야 한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사회에서 이를 사용해주지 않으면 또한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한의약을 과학적으로 응용하고 개발한 의료행위를 받아들이게 하고 다시 한의약을 과학적으로 응용, 개발하도록 지원을 받는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 <한의학, 서양의학을 만나다>에서 구결성은 폴 운슐트의 말을 인용하여 “어떠한 사회에서든 의료체계 세력의 강약은 그 자체의 객관적 치료효과 이외에도 그 사회 정치 집단의 이념과 이러한 의료체계의 사상이 그들의 이념에 부합하는지의 여부 역시 중요하다”고 하였다.

    정치권력은 늘 폭력성과 강제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의학을 사회 정치 집단의 이념과 합치시킬 필요는 없다. 한의계를 정치세력화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한의계가 확보한 <과학>이라는 마법의 지팡이를 사용하려면 사회정치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한의계는 앞으로도 험난한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한의계는 결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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