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정 동의의료원 한방소아과 전공의 3년차

기사입력 2008.11.0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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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행복해”

    전문의 시험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병원에 들어와 인턴을 시작하면서 잠도 못자고 고생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다니… 지난 4년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가슴 속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던 순간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벅찬 감동을 던진다. The Moment 1- ‘이젠 이 세상에서 내가 못할 짓이 없구나’
    지난 2005년 4월, 25살의 꽃다운 나이(필자는 81년생이다)에 병원에 들어와 인턴을 하며 시들어가던 시절. 당시 1년차 주치의가 담당하고 있던 70대의 중풍환자를 비뇨기과 협진 진료를 보고 오라고 시켰던 일이 있었다.

    전립선 비대증이 의심돼 비뇨기과 협진을 하게 됐던 것이다. 당시 비뇨기과 해당 의사는 다행스럽게도 한방에 호의적이어서 한방인턴들이 협진을 위해 외래를 가면 친절하게 진료도 봐주고 이것저것 가르쳐 줘 인턴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다.

    그런데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중 “거기 폴리(비닐 장갑) 2장 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영문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했다. 역시 폴리에 글리세린을 발라 항문으로 촉진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래도 온갖 상념 속에서 꾹 참아가며 임무를 완수해냈는데 자신감보다는 착잡한 심정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이젠 이 세상에서 내가 못할 짓이 없구나~. 난 더렵혀진 거야.’ 그렇게 꽃다웠던 25살은 잊지 못할 경험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The Moment 2- ‘소아과 선택하길 정말 잘했어’ 지난 2006년 3월 한방소아과 레지던트 1년차 어느 날, 얼굴이 예쁜 세 살배기 예린이와의 첫 만남이 있었다. 감기만 걸리면 폐렴으로까지 번져 양방에서는 이미 수차례 입원치료를 반복했던 기왕력이 있던 아이였다.

    숱하게 양방병원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하얀 가운만 보면 악을 쓰면서 울곤 했었다. 너무 예뻐 안아보고 싶고 재롱도 보고 싶었는데 근처만 가도 울어대니 난감할 뿐이었다.

    이후 증상이 많이 좋아져 퇴원을 하루 앞둔 어느 날, 그런 혜린이가 복도 끝에 있는 필자를 알아보고 쪼로롱 달려와 안기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의 감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성장한다고 했던가. 때론 가슴 아픈 경험으로 힘들었던 날도 있었지만 병원 문을 나서는 환한 미소의 환자를 대할 때마다 한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 정말로 일생일대의 최고의 결정이었던 것 같다.

    전문의로 거듭나 병원문을 나서든 아니면 병원에 남든 환한 미소의 환자를 많이 만나고 싶은 것이 내 꿈이다. 그동안 ‘전공의 일기’를 사랑해 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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