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사마다 체질진단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체질에 따라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중요한가?
매스컴의 영향 때문에 한국에서는 일반인들도 모두 사상체질을 이야기합니다. 혈액형 테스트나 심리테스트 정도의 흥밋거리로 알고 있거나, 식이요법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의학=사상체질의학으로 이해하면서, 한의원에 오면 당연히 체질 감별을 해주고, 가려 먹어야 할 음식을 알려줄 거라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동일한 환자인데, 한의사들마다 사상체질 진단이 다르다”는 것을 한의학을 믿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로 대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방치료 효과를 증명하지 못하면서 애매모호하게 ‘체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체질에 맞지 않아 그렇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거라는 비판도 자주 들립니다.
임상에서 사상의학을 많이 활용하지 않는 한의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사상의학 위주로 진료하시는 분들도 ‘체질 진단’에 보다 신중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체질 진단을 표준화·객관화 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환자들에게는 체질 진단이 얼마나 종합적인 것이며 쉽지 않은 것인지를 정확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환자들이 외모나 체형의 한두 가지 특징만으로 체질을 자가 진단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려면, 한의사들부터 먼저 환자의 성격과 감정, 심성, 병증 등을 충분히 파악하기 전에는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체질 감별’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인간의 질병과 건강에서 체질 구별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체질적 특성이 분명하고, 구별이 잘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적으로 진화가 덜 된 사람이라는 말에 저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환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싶습니다.
“고등동물로 진화할수록 木火金水의 편급이 줄어들고 체질적 특성이 적어진다. 어떤 사람에게 체질적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이 있다는 말과 같다. 자신의 체질을 구별하기 어려울수록 정상적인 것이다. 이상적으로 몸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데도, 자신의 체질을 억지로 구별하여 편향된 성질의 음식이나 약을 장복할 경우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쳐 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어윤형, 전창선 지음 ‘오행은 뭘까’에서 인용)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을 가려 먹기 위해’ 체질을 물어보는 환자에 대한 상담입니다. 사실 ‘동의수세보원’ 어디에도 음식을 가려 먹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동무 이제마 선생은 마음 씀의 편벽됨을 고쳐 나가는 수양을 통해 음양화평지인이 되는 것을 강조했을 뿐입니다.
체질을 통해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고 단점은 경계하고 고쳐나가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 한의사들의 체질 상담에서도 이 점이 제일 강조되어야 합니다.
‘잘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문화 전통에 웰빙 바람이 더해져, 환자들은 ‘내 몸에 맞는 음식’을 무엇보다 궁금하게 여깁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먹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과 마음의 수양 등 다른 생활습관은 변화시키지 않고,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찾아 먹는 것만으로 건강해지겠다는 것은 별다른 노력 없이 쉽고 편하게 건강해지는 길을 찾는 마음 때문입니다.
한의학적으로 ‘잘 먹는 방법’의 핵심은 음식의 종류를 가리는 것보다는 해롭다고 알려진 음식을 먹지 않는 것, 소박하고 절제된 식생활을 하는 것, 규칙적인 식사 습관을 가지는 것에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복잡한 음식 분류표에 따라 철저하게 음식을 가려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화를 잘 시키고 좋아하는 음식, 몸이 원하는 음식을 골고루 적당히 즐겁게 먹는 것입니다. 평소 깨어 있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잘 관찰한다면 내 몸에 맞지 않는 음식,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은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상의학을 전공하신 분이 쓰신 책의 결론을 옮겨 봅니다. “사상의학에서 체질마다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나누어 놓은 것은 병이 심해서 음식의 약한 성질로도 몸에 큰 해를 주는 경우이거나 굳이 맞지 않은 음식을 일부러 편식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목적에서다. 따라서 체질별 음식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골고루 먹고 아예 체질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속 편히 사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는 가장 좋다. 체질은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낫다.”(장동민 지음 ‘사상의학 바로 알기’에서 인용)
환자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또 그런 오해들이 한의학의 신뢰도를 깎아 먹고 있다면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한의사들이 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이야기함으로써 그 생각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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