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과 첨단 생명과학

기사입력 2008.03.0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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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현 원
    ·(가칭)대한氣신호전달학회 자문위원
    ·연세대 원주의대 생화학교실 교수
    ·‘첨단과학으로 밝히는 기의세계’, ‘생명의 물 우리 몸을 살린다’의 저자

    한의학은 과학인가, 철학인가?
    한의학의 중요한 원리이기도 한 음양오행은 철학적 원리이기도 하지만 태양계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과학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해와 달, 그리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다섯 개의 별이 지구에 전자기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지구에서 생겨난 모든 생명체가 음양오행이라는 원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다. 한의학이 인간을 소우주라고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의학은 근본적으로 과학의 얼굴과 철학의 얼굴을 모두 갖고 있다. 음양오행은 분명히 과학적 원리이기도 하지만 현대과학으로는 아직 접근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학은 현재 과학 수준으로는 철학적인 원리로서의 접근이 더 쉬울 수밖에 없다.

    현대 생물학과 의학은 생명체를 기계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과학적 실험이 생체 밖에서 특수한 조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현상은 결코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대로 하나하나 분리된 세포들의 단순한 총합만은 아니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전체는 부분의 합’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험적으로 그러한 견해들이 뒷받침되기 어려우며 그것이 기계론적으로 분석적으로만 생명체를 바라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생명체에서 ‘전체가 부분의 합’ 그 이상의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더라도 현대의학과 같이 분석적인 방법으로는 영원히 ‘부분의 합’으로서의 ‘전체’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체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부분의 합’이 아닌 ‘전체’를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이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진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표현된 단어는 원래의 진리에서 표현한 만큼 멀어진다는 말이다. 진리를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현대과학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확률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만큼, 분석하는 만큼, 또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는 셈이다. 전체를 포기하지 않고 확률로서 표현하고 바라본다면 적어도 틀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인체의 미세한 에너지를 진단하는 센서는 확률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센서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무당이 병을 치유하는 것이 당연했다. 집채만한 비행기가 하늘을 나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집채가 아니라 운동장만한 비행기를 날리고, 달까지도 갔다 왔다. 무당이 병을 치유하는 것은 아직도 현대과학이 수준이 낮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미약한 에너지의 세계의 과학일 뿐이다.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게 되면 무당이 병을 치유했던 미약에너지의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그러한 비파괴적인 치유의 방법이 의학의 주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당의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견해는 한의학의 전통적인 치료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의학의 전통적인 치료방법은 침과 뜸을 이용하는 방법과 탕약을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침과 뜸을 이용하는 방법은 경락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락이론은 인체에 오장육부에 영향을 주는 12개의 경락이 있고, 경락의 선을 따라 경혈점들이 있고, 경혈점을 침과 뜸으로서 자극함으로써 인체의 무너진 밸런스가 회복되어 자연치유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경락은 해부학적인 실체가 극히 최근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해부학적인 실체가 없다면 경락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은 해부학적 실체로서의 경락을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 와서 서울대의 소광섭 교수와 필자에 의해서 경락이 해부학적인 실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발표된 바 있다. 소광섭 교수와 필자에 의해서 발견된 해부학적 실체가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인지의 여부는 아직 논란이 많다. 더 많은 학자들의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경락이 해부학적 실체가 아니라면 침과 뜸이라는 한의학의 치료방법에 대해서 과학적· 의학적 접근은 근본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의학의 다른 치료방법은 탕약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탕약의 용도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한 가지는 탕약에 담겨있는 성분들의 합이 전체적으로 인체의 무너진 밸런스를 맞추어 주는 용도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한약재에 담겨 있는 약리성분이 특정질환에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용도이다. 하지만 탕약이 인체의 무너진 밸런스를 되살려준다는 개념도 역시 현대의학의 수준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한약재에 담겨있는 약리성분에 대해서는 현대과학으로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이 부분만이 현재 한의학이 현대의 첨단 생명과학과 거부감 없이 만날 수 있는 부분이다. 약리성분의 분석과 효능에 대해서는 생명과학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살펴보았듯이 한의학은 더 큰 전체를 갖고 있다. 자칫 첨단 생명과학과의 만남이 한의학을 오히려 축소시키지 않을까 걱정되는 바도 있다.

    한의학을 현대 과학의 분석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별로 연구할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양파껍데기를 벗기고 나니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과학이, 의학이 아직 한의학의 기본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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