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유감(有感)

기사입력 2008.07.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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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환 여래한의원장
    ·전 한의협 수석부회장
    ·전 한의신문 편집위원장

    능소화 꽃이 활짝 피었다. 황 원장은 능소화가 한창일 때 결혼을 했고, 한의원도 처음 개원을 했고, 한의대를 다닐 때 한약분쟁을 지독하게 겪으며 치과대로 진로를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이맘때니 능소화가 피는 초여름이면 감회가 남다르다.

    졸업을 하고 군대에 갔다 와서 부원장으로 3년 근무를 하다가 3년 전에 있는 돈에다 1억 빚을 내서 지방 신도시에서 개원을 했다. 그 사이 분홍색 한의사의 꿈은 시들시들 퇴색해 가는데, 큰 딸은 초등학교, 작은 딸은 유치원에 들어가고, 집안일만 하던 마누라는 아이들 교육비를 벌겠다고 이번 달부터 노인요양병원에 간호사로 취직을 했다.

    덜 쓰면서 더 벌려고 야간진료를 추가하고, 외식과 영화 구경을 금지하고, 옷을 안사고, 반찬도 줄이는 등 알뜰살뜰 살면 대충 3년이면 갚을 것 같던 빚은 기약하기가 어렵다. 전셋집은 다행히 그냥 계약을 연장했고, 월부 자동차는 처분하려 했다가 마누라 출퇴근할 때 쓰고, 부모님 집이나 처가집 갈 때 필요해서 놔두었다.

    작년 말 3000만원 적금을 탓을 때 빚을 일부라도 갚을걸, 좀 불려 보려고 친디아 펀드에 집어넣은 것이 지금은 수익률이 -29%라 근 1000만원이나 사라져 속만 끓고 있다. 개원할 때 피부와 비만을 특화로 내 걸었지만 이름만 특화일 뿐 근골격계 질환의 아줌마 환자들이 주로 온다.

    환자복도 꽤나 없는 편이다. 허리 엉덩이 다리가 쑤시고 아려서 통증클리닉에 다니다 결국 병원에서 수술을 한 환자는 수술을 하고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계속 통증이 오는데 수술한 병원에 가면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할 뿐이다. 그렇게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한의원엘 와 침과 물리치료로 호전됐다. 이 과정에서 복용한 한약은 3만원 외상을 하고는 오도가도 않고 연락마저 끊어 버렸다.

    무릎 관절 때문에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다 몸이 퉁퉁 부어 고생하던 아줌마도 침과 물리치료로 호전시켜 주었는데 한약을 권하자 그만 온다. 개원할 때 근처에 3개이던 한의원도 벌써 9개로 늘었다. 물론 양방 의원도 엄청나게 늘었다.

    종종 한의사 통신망에도 들어간다. 황 원장이 환자가 있는 날은 다른 원장들도 환자가 많은지 스코어가 뜸하다. 환자가 없는 날은 기막히게 스코어도 뻔질나다. 3:0 이니 5:1 이니 하는 스코어를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하는 위안이 되다가도 비감도 든다.

    분명 매력 있는 학문이요, 가치 있는 의술인데 툭하면 매스컴에서 한약에 독성이 있다느니, 돌팔이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봉사활동으로 미화해서 보도하는 등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회비걷어 가는 협회에서 보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황 원장은 오늘 또 다시 환자 앞으로 다가선다. 질병에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한약과 침이 최고라고 칭찬할 땐 ‘한의사’란 직업에 긍지를 갖는다.

    전에는 능소화가 줄기 마디에 흡반이 있어 다른 나무나 담장에 붙어 피해를 주는구나 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꽃이 피면 오히려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고, 긴 장마 때는 기분까지 상큼하게 바꿔주는 등 양반 꽃 또는 어사화(御史花)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서는 다시 보게 됐다. 출근길에 마주친 활짝 핀 능소화. 능소화를 보며 황 원장은 미소짓는다. “모든 일이 잘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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